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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끄적거리는 버릇이 있다.
대부분 떠오르는 대로 단절된 단어들을 뱉어내는 식이다.
그렇게 펜으로 감정들을 갈겨대고 나면 매번 상처 난 마음이 덧났다.
생각을 토해냈으니 속이 시원하면 좋을텐데 덮어두었던 감정을 건드려서 더 어수선하기 일쑤였다.
겨우 가라앉은 감정의 모래들을 미꾸라지 한 마리가 들어가서 다 흩어 흙탕물을 만들어놓는 꼴이라고나 할까.
끄적임은 언제나 큰 도움이 못되었다.
2달 전 브런치 심사를 통과하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글을 쓴다고 말하는 게 아직 낯간지러운 작가 초심자지만 매일 읽고, 생각하고, 쓰고 있다.
(고작 브런치 작가 2달 지났다고 똥폼 잡는다 여길 수 있으나 난 사뭇 진지하다. 브런치에 궁서체가 없어서 아쉽다.)
그동안 여러 끄적임이 글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글이 내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끄적임이 글이 되면서 생긴 첫 번째 변화는
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글이 쓰는 것이니 앞선 끄적임과 달라야 한다.
의미 없이 끄집어 내놓은 단어들 간의 연결 고리를 찾아 완성된 문장으로 이어줘야 했다.
끄적이던 시절에는 두서없이, 떠오르는 대로 내뱉기만 했었다.
그것들을 글로 엮기 위해 뱉어놓은 단어들의 상관 관계를 찾아 마음을 세심하게 더듬게 되었다.
왜 이런 단어가 떠오른 것일까?
단순하게 짜증이라고 뭉개진 감정의 제대로 된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 보면 조금씩 본질에 가 닿는다.
그리고 내 마음 속 감정의 파편들이 완성된 퍼즐이 되어 제대로 읽힌다.
끄적임이 글이 되어갈수록 내 마음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끄적임이 글이 되면서 생긴 두 번째 변화는
한 가지 생각에 오래 머물게 된 것이다.
잡생각은 늘상 넘친다.
하지만 다 뜬구름처럼 머물지 않고 바람 따라 흘러가고 남겨진 형체는 없었다.
종일 보고 듣는 수많은 것에 대해 생각한다.
수없이 구시렁거리면서도 늘 연기처럼 사라진다.
돌이켜보면 이렇게 금세 잊히고 감정인데 그 순간에는 쓸데없이 엄청난 감정을 소모한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갖고 있는 생각을 붙잡으려고 메모한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붙들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정의되지 않은 애매 모호한 감정의 본질에 닿기 위해 며칠이고 매달린다.
두서없이 키보드를 두들겨보기도 하고, 단어를 잡아 검색을 해보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생각을 나눠보기도 하다보면 그 속에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그러다가 맞춤 맞는 결론에 도달하면 기대 이상 상쾌하다.
글쓰기를 통해 생각의 끝맺음을 짓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다.
끄적임이 글이 되면서 생긴 세 번째 변화는
내 삶에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삶이 무늬로워졌다.
1n년째 같은 직업, 집에서는 아이들과의 반복되는 루틴으로 살아간다.
평화롭지만 단조롭다.
그래서 때때로 무료했다.
그러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매일 되풀이되던 삶의 단면을 글로 옮기는 경우가 생긴다.
처음에는 기록에 가깝지만, 점차 생각하게 되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 짜릿하다.
불만스럽만 하던 아이들의 닌텐도 게임에서도 교육의 의미를 발견했을 때 짜릿했다.
허벅지에 생긴 멍을 몇날 며칠 바라보다가 문뜩 철들지 말아야지 하는 엉뚱한 결론에 닿았을 때도 낯선 흥분을 경험했다.
글을 쓰면서 단조롭던 나의 삶은 제법 무늬로워지고 있다.
허나 글솜씨는 여적 늘지 않았다.
매일 쓰며 노력중이다. (매일쓰지만 몇날을 두고 고쳐야 하기에 매일 발행하지는 않는다)
내 삶에 무늬를 새겨준 브런치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