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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Mar 02. 2024

예술가형 기획자

취향을 파는 사람

예술가형 기획자로 살아남으려면 마음가는 대로 만든 게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돈을 주고 사고 싶을 정도로. 다시 말해 자신의 취향을 팔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 취향을 드러낼 상품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지난 10년 간 만들어 온 IT 서비스가 되어야 할까.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다. 앱/웹 프로덕트를 만드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내 영혼이 담긴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IT 매체는 시대를 탄다는 인상이 강하다. 피처폰의 시대가 한순간에 저무는 걸 두 눈으로 목격했다. 지금은 우리의 손을 떠나지 않는 스마트폰의 시대도 언젠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다.


시간이 흘러도 가치를 보존하는 매체에 내 취향을 담고 싶었다. 내게는 그게 글과 공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두 매체는 오랜 시간 우리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했다. 매체계의 클래식인 셈이다.


평생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질 내 취향을 담기엔 글과 공간이 제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글과 공간에 깃든 나의 취향은 이사 걱정하지 않고 아늑하게 세월을 머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글과 공간에 어떻게 취향을 녹일 것인가. 답은 단순했다. 둘 다 좋아하니 글쓰기와 관련된 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다. 두 매체가 한 곳에 어우러져 화학 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내가 공간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공간 기획을 해 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새롭게 도전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도 많았고 투입해야 할 자금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공간에 자꾸만 마음이 갔다. 특히 공간의 매체적 특성에 끌렸다. 공간만큼 한 사람의 취향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매체가 있을까.


예를 들어, 유튜브 자취방 콘텐츠를 보면 대부분 비슷한 모양의 방에 살지만 각기 개성이 넘친다. 친구를 초대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원형 테이블이 집의 중심이다. 혼자 작업을 많이 하는 사람은 책상이 집의 중심이다.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들이는 가구와 그것들의 배치가 달라진다. 공간의 한정된 크기 때문에 한 사람의 우선순위가 드러나고 취향 또한 함께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이런 장점을 놓치고 싶지 않아 결국 공간 기획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하기로 했다. 장기 프로젝트를 각오하며 의지를 다졌다.


내 취향, 그 중 특히 글쓰기가 온전히 담긴 장소를 만들고 그곳을 팔아 보자!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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