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ce we see] 헬로우뮤지움에서 슬라임뮤지엄을 만나다
[Place we see]에서는 Play Fund가 흥미롭게 (가) 본 공간들을 소개합니다. 미팅, 출장으로 가보았거나 호기심에 이끌려 주말에 슬쩍 찾아갔거나,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고 싶은 다양한 공간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슬라임뮤지엄@헬로우뮤지움] 한 줄 미리 보기
슬라임으로 상상 이상의 것들을 해볼 수 있는 곳
"아이들이 미술관에서 슬라임을 한다고?"
매 전시마다 헬로우뮤지움에 꼭 들르긴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나서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들르는 전시는 꼭 아이와 함께 가고 싶은 (가야 할 것 같은) 전시에만 가게 됩니다. 이번 전시는 아이를 데리고 꼭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슬라임"이라니. 아이들이 원하지만 맘껏 사다 줄 수 없는 놀잇감. 원재료가 무엇인지, 얼마나 오랫동안 쓸 수 있는지, 버리는 건 어디에 버릴 수 있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데, 아이들이 종일 손으로 주물르고 있으니 호흡기든, 피부든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슬라임뮤지엄"이라니요.
미술관은 주로 시각적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고 예상되는 곳)입니다. 어린이 미술관이라 해도 체험 요소가 포함된 시각 예술 체험 정도가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장치가 아닐까 한발 물러서 생각하게 되는데, 문방구에서 흔히 파는 놀잇감이 미술관의 주제가 된다는 것이 제법 신선하기도 하고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데리고 또 한 번 들렀습니다. 슬라임 뮤지엄이라고 하니, 36개월이 안된 아이를 데리고 가기에 부담이 덜 했습니다. 아무리 어린이 미술관이라도 비싼 작품이 걸려있다고 생각하면 아이를 데리고 움직이려면 남다른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특히 저희 딸같이 정말 하루 종일 뛰어다니는 아이를 데리고 가기엔 더 부담스러운데 이번엔 주제를 듣고 나니 괜스레 마음이 좀 놓였습니다. 그동안 미술관이 아이와 함께 가기 어렵다고 생각하셨던 분들은 이번 전시를 기회(?)로 한번 가보시면 좋겠습니다.
헬로우뮤지움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전혀 다른 세계에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느낌이랄까. 오래된 TV 안에 비현실적으로 흐르고 있는 슬라임을 보고 서있으니 더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아이는 태어나서 이런 TV를 본 적도 없겠죠. 그런데 들어가면 좋아하는 만질 것들이 가득한 공간이라는 것을 아이는 더 본능적으로 알게 된 것 같았습니다.
슬라임은 주로 만지는 감각을 상상하게 되는데 공간 곳곳에 슬라임의 물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둔 것이 보고 있지만 만지는 느낌을 갖게 했고, 그러다 보니 내내 현실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심지어 때로는 보고 있지만 냄새가 나고, 만지고 싶은데 보이지 않는 묘한 공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공간들에서 새로운 자극을 느끼고 (혹은 알던 자극이었지만 다른 환경에서 만나는) 무언가 만들어내는 건 아이들의 몫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다양한 감각을 오롯이 때론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 안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유독 각각의 존들을 오갈 때 전혀 다른 세계를 넘나드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체험기관에서 하는 경험과 미술관에서의 경험이 다른 점을 딱히 꼽기 어려웠습니다. 아이들이 즐겁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건 비슷하고 어떤 순간이든 아이가 채워가는 시간들은 각각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이 생각은 변함없지만 다른 체험과 미술관에서의 경험이 다른 건 이런 공간의 큐레이션 때문입니다. 공간의 모든 요소를 활용해 아이들이 마주할 새로운 자극들을 오롯이 느낄 수 있게 기꺼이 자원과 에너지를 들여 공간을 구성하는 일. 벽에 슬라임이 흐르는 배경을 그릴 수도 있었지만, 입체감 있게 표현하는 것. 다 같이 앉아서 패턴을 감상할 수 있지만. 누워서 볼 수 있게 하는 것. 손을 넣는 상자의 높낮이를 달리해서 상자 속 물건들에 대한 상상을 다채롭게 해 볼 수 있게 하는 것. 이런 섬세한 공간 구성이 아이들의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전시 공간 구성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츄팝의 작업실을 재현해놓은 공간이었습니다. 츄팝은 대표적 슬라임 크리에이터로 유튜브 115만 명 (전시장엔 114만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사이에 1만 명이 증가했다고 영상에서 수정해주더라고요^^)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의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의 지평을 넓힌 것도 의미 있지만, 아이들에게 크리에이터의 작업공간을 보여주는 것 또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크리에이터가 어떤 직업의 대명사처럼 쓰이지만, 크리에이션을 하기 위한 공간을 엿보는 것은, 작업 과정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츄팝이 슬라이머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기까지 아마 이 책상에서 수많은 슬라임 작품들을 만들어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어떤 공간은 아이들에겐 작품 그 이상의 경험을 가능하게 합니다.
왜 헬로우뮤지움이 전시의 주제를 '슬라임'으로 잡았는지는 헬로우뮤지움 김이삭 관장님이 쓰신 포스트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링크: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7527413&memberNo=30633406
헬로우뮤지움에선 항상 아이들이 관심 있어하는 것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합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또 다른 경험의 재료들을 던집니다. 때론 교육적 메시지일 때도 있지만 언제나 그 메시지를 완성하는 건 아이들 몫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장치들입니다. 아이들이 슬라임에서 좋아하는 것들은 화려하고 반짝이는 팟츠들입니다. 미술관에서는 이 반짝이는 것들을 모아서 색다른 작품으로 보여주는 용도로 활용하고 대신 친환경적인 곡식을 활용한 팟츠와 다양한 색톤의 파스텔을 갈아서 만드는 슬라임으로 색다른 슬라임 제작의 세계로 안내하기도 합니다. 또 항상 마르기 전 단계의 슬라임만을 생각했던 아이들에게 마른 후의 작품을 은하계 등의 모습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그 김에 마른 다음에 슬라임을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까지 생각해볼 수 있게 하죠. 슬라임의 원재료가 되는 것들에 대해 미리 공부해서 화학적 반응을 함께 관찰해보게 하기도 하고요. 슬라임을 재료로 활동하는 작가의 영상을, 작가의 작업실을 만나게 하기도 합니다. 아이가 크리에이터로서 유튜브에서 봐왔던 장면들과는 또 다른 장면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아이가 공간에서 하게 되는 경험의 재료들은 아이들이 열광하는 것들을 충분히 고민하고 실험한 후 새로운 방식으로 제안된 것들입니다. 제안을 받은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또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게 하기도 하지만, 미술관에서의 경험이 풍부해지는 건 이런 접근 방식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는 이번에 슬라임을 처음 만져보았습니다. 아직 끈덕진 느낌에 익숙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슬라임을 만져본 아이의 반응도 재밌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이 장면이었습니다. 아이가 파스텔을 갈아 색깔을 입히는데, 색에 집중하기보다 파스텔이 갈리는 소리를 유심히 듣고 있던 장면입니다. 파스텔이 사각사각 갈리는 소리, 파스텔을 만졌던 부드러운 질감, 오렌지색으로 눈처럼 투명한 슬라임 위에 내려앉는 모습, 파스텔이 스테인레스 쟁반에 부딪혀 내는 소리. 이런 것들은 아이가 태어나 생애 처음 만난 자극 들이었을 겁니다. 아마 다음번에 가면 이런 자극들이 새롭진 않겠지만 미술관 곳곳에 또 새로운 경험을 할 곳이 (많이) 남아있으니까 안심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미술관의 이런 장치들 위에서 본인의 경험을 켜켜이 쌓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엔 조금 더 슬라임을 주물럭 거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땐 또 어떤 표정을 보게 될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아이들이 열광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이끌고,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전시는 아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극을 접하고 경험으로 완성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번 전시가 또 재미있었던 것은 전시장 곳곳의 슬라이머들이었습니다. 아트동동(체험관람전시)을 신청하면 에듀케이터와 함께 전시를 관람하게 되는데, 일반관람을 할 땐 도슨트의 도움을 받아 전시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됩니다. 이번엔 도슨트 대신 슬라이머라 불리는, 슬라임을 좋아하는 어른이 있었습니다. 이 분들은 아이들과 같이 바풍을 만들기도 하는 본인들도 슬라임을 좋아하는 분들입니다. 아이가 방문하던 날, 슬라이머가 슬라임을 정말 좋아해서 창원에서부터 온 친구와 함께 바풍을 만들었는데, 슬라이머가 더 신나서 바풍의 크기에 집착하는 모습을 봤을 때 재밌기도 했습니다.
슬라임뮤지엄 전시를 하면서 미술관에 있는 어른들은 아이들의 친구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슬라임 재료의 특성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훨씬 더 잘할 수밖에 없는) 설명 대신 함께하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자유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바풍을 어떻게 하는지 세세히 설명하는 어른이 있었다면 아이들은 바풍존에 앉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헬로우뮤지움에 들어서면서, 실컷 만져보게 하고 와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만지고 보고 듣고 생각하는 다양한 자극을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극을 통해 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죠. 촉각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이 총동원되는 전시였습니다. 시각 전시 위주인 곳이 미술관이라고 생각했는데, 촉각을 연상시키는 전시인 것도 예상 밖이 었는데, 온 감각을 쓸 수 있는 곳이라니. 생각보다 아이들의 온 감각을 깨워주는 공간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자체로도 고마운 전시였습니다.
검색해보면 전시 후기들이 조금씩 다른데, 그만큼 헬로우뮤지움 안에서 아이들이 하는 경험도, 부모가 느낀 점도 제 각각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일인데, 아이들과 함께 가는 공간들에서 아이들이 하는 경험은 비슷하다는 게 또 의아합니다. 아이들의 경험을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다양한 자극과 장치들로 아이들 각자가 서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그런 여지를 두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공간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건 아이들은 언제나 상상 이상의 것들을 생각하니까요. 그런 상상 이상의 것들이 맘껏 펼쳐질 수 있는 기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슬라임뮤지엄 전시를 통해 또 한 번 미술관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경험의 범주가 갱신되었습니다. 물론 저희 아이는 아직 사각사각 소리를 듣고 따라 하는 정도지만요^^ 다음번엔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혹시 미술관이 여전히 어렵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하셨던 분들은, 이번 전시에 슬쩍 들려보시길 권해봅니다. 슬라임이어서 다가가기 쉽지만, 기대 이상의 장면들을 마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헬로우뮤지움 찾아가기
서울시 성동구 금호로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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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 아니라 물건뜯어보기체험전, 그림책을 좋아하는 모두를 위한 열린 공간, 서울시립과학관, 넥슨컴퓨터박물관, 서울숲 놀이터, 북서울 꿈의 숲 등 아이와 함께 가보면 좋을 공간이나 읽어보면 좋을 흥미로운 콘텐츠가 매주 목요일 여러분의 메일함으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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