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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 SAW Mar 07. 2019

'직접' 내 삶의 우주를 만드는 일: 손의 모험

[Things we watch] 릴리쿰이 지은 '손의 모험'을 읽고. 

[Things we watch]에서는 Play Fund가 흥미롭게 본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영화, 다큐멘터리나 책일 수도 있고 공연일 수도 있고 재밌게 들었던 팟캐스트, 영상 클립일 수도 있습니다. 콘텐츠를 보고 나서 꼭꼭 씹어 소화하고 싶고 콘텐츠에 대해 대화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글은 릴리쿰이 지은 '손의 모험' 책을 읽고 쓴 글입니다. 이 책은 손으로 직접 무언가 만드는 행위를 통해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고, 실패를 면면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며,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나아가 함께 만들자고 손을 내미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모두가 삶의 주체자로서 각자의 "손의 모험" 을 시작할 수 있게 되길, 혹은 모험까진 아니더라도 "손의 작당"을 시작해볼 수 있길 바랍니다.



만들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훨훨 하늘을 나는 고무 동력기를 갖고 싶었습니다. ㅠㅠ(출처: 다나와 고무동력기)


어렸을 때 고무동력기를 만들던 때가 생각납니다. 학교에서 하는 다양한 활동은 웬만하면 좋아했었는데, 유독 고무 동력기는 저를 좌절시켰습니다. 고무 동력기를 만드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이유인즉, 어떻게 만들어도 잘 날지 않았기 때문입니다(ㅠㅠ). 한번 실패하니까, 다시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고무 동력기는 어떤 원리 때문에 날게 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만들면 더 오래 나는지 알아보고 탐구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날지 않는다면 왜 안 나는지 생각해보고 다시 만들어보고 손으로 익히는 과정을 즐기지 못했습니다. 저는 잘 나는 고무동력기를 그냥 갖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은 어떠셨나 궁금합니다. 


그때의 저는 만들기보다 만들어진 결과물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단계보다 만들어진 후 결과물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결과물을 보고 나니 이 경쟁에선 안 되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죠. 그렇게 한번, 두 번 만들기를 포기하면서 저는 스스로를 곰손이라 여기고 만드는 일을 제가 사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만드는 행위를 멀리하면서 모르는 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커졌고,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 같은 모호한 기회들은 그냥 흘려보내는 일도 생겼습니다. 실패는 점점 두려워졌고요. 


그런데, 기술은 매 순간 발전하고 있고, 자신 있게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기회들은 많지 않으며 실패를 감수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순간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조금 더 만드는 일에 용기를 내었다면 지금의 내 삶은 조금 달라졌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다보면 결국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환경과 상품으로 내 삶을 채우는 일들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만족스럽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삶에 놓이는 것. (거창해지고 싶지 않지만)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삶의 여러 장면과 쉽게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손의 모험이란 책에선, 이 이야기들을 릴리쿰의 여정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읽는 내내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가득했던 손의 모험 책



손을 쓴다는 것: 내가 직접 예상치 못한 길에 발을 딛는 기회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 미리 설명하지 않고, 재료와 도구부터 건네준다. 그러고는 직접 재료와 도구를 만지면서 무엇을 만들면 좋을지 구상해보라고 한다. '만든다'는 경험이 거의 없기에 어렵게 느낄까 싶지만 아이들은 재료를 가지고 즐겁게 놀면서 '제작'을 시작한다. 팅커링은 직관, 상상, 호기심을 주인공으로 만든다. 그리고 새 주인공들은 종종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p24


'만들기 프로그램이 없는' 아이들의 작업실, 이문238에서 만났던 아이들은 각자의 속도와 생각대로 작업을 합니다. 매번 비슷한 걸 만드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결과물을 만들기도 하고, 다른 것 같지만 지난번 작품과 묘하게 연관성 있기도 합니다. 하던 작업에 새로운 재료를 얹히고, 쓰지 않던 도구를 시도하면서 조금씩 상상하지 않았던 작업의 길로 가기도 하죠. 상상했다 하더라도 만들면서 표현해내는 결과물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새로운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도 결과물의 예시가 없는 만들기는 생각보다 낯선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금방 손을 쓰는 일에 적응합니다. 


주어진 과정 없이, 정해진 절차 없이 손의 감각으로 다음 단계로 가본다는 건 예상치 못한 길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인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만들게 되기도 합니다. 미끄럼틀을 만들던 친구가 종이로 슬라이드를 만들다가, 만들다 보니 미끄럼틀이 더 높아지려면 슬라이드끼리 연결하는 접합을 잘해야 할 것 같다는 것, 이왕이면 떨어지는 곳은 수영장이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게 되는 것, 수영장의 적절한 크기를 생각해보고 슬라이드의 손잡이 부분과 높이를 맞춰보는 것. 예상치 못한 길에 발을 내딛고, 발을 딛으며 여러 사항을 고려하다보니 그 길이 마음에 들 가능성도 높아지는 일. 손을 쓰는 일은 그런 일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작업실 이문 238에 잠시 들렀다가, 수영장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드를 '후딱' 만들어낸 친구의 작품



직접 만든다는 것: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힘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떠올리고, 어떻게 만들지 계획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탐색하고, 마침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원했던 사물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중략) 무엇보다 스스로 체득한 가치는 이러한 허상이 가득한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균형을 잡는 힘이 되어준다.  p133
릴리쿰 스테이지 인스타그램에서 가져온 신기했던 니팅 머신 (출처: reliquum.stage instagram)

직접 만드는 일은 내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는데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니트 옷'을 살 때를 떠올려보면, 어떤 색의 어떤 모양의 옷인지 고른 후 입어보고 어울리는 것 같으면 바로 구매하게 됩니다. (때론 이런 절차조차 거치지 않는 구매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든다고 생각해보니 훨씬 더 많은 요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실로, 어떤 짜임으로, 소매 부분은 어떻게 마무리가 되어야하며,  A라인으로 떨어지는 니트가 좋을지 몸에 적당히 붙는 니트가 편안하게 느껴질지 등 세심하게 내가 원하는 니트에 대해 꼼꼼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릴리쿰 스테이지에 방문했을 때, 니트를 만드는 머신 앞에 서서 그 옆 촉감이 좋았던 노란색 실을 집어 들기만 했을 뿐인데도 이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이 머신을 이용해서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 조차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고무적입니다^^:)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수많은 자극들 속에서 나를 중심에 둘 수 있다는 것이 무언가 만드는 행위에서 오는 힘인 것 같습니다. 



기꺼이 실패할 수 있는 것 : 진솔해질 수 있는 힘


지난 시간들을 회고하며 '실패'의 면들을 돌아보고 공유하는 이유는 이것이 가장 진솔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작활동이 갖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쳐 작품 (혹은 물건) 이라는 꽃을 피우는 행위이듯, 우리의 자립을 위한 '만들기'를 통해 다른 방식의 삶을 살기 위한 실험들도 화려한 실패의 역사 속에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p207 

 

기꺼이 실패를 감수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무수히 많은 글을 만나고, 매번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실패를 '기꺼이' 감수하며 일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실패를 마주하기도 쉽지 않은데 공유까지한다는 건 실패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다는 이야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패의 면면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은 어쩌면 원하던 상에 도달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정석인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답노트를 쓰듯, 실패를 통해 다음단계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드는 과정은 조금은 덜 두려워하며 실패와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삶의 축소판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패는 여전히 두렵고, 낯설지만 크고 작은 실패를 통해 지금 보다 나은 다음 단계를 만들 수 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다만, 연습이 잘 되지 않을 뿐입니다. 이 글을 통해 실패를 감수하는 실험을 계속 하는 용기, 실패를 했다하더라도 면면을 제대로 들여볼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연습해보겠다고 다짐합니다. 저도 저의 삶에 진솔해지고 싶으니까요. 



제작 공동체가 된다는 것: 고독한 만들기를 함께 하는 힘 


함께 만드는 행위는 관계를 낳는다. 또 그 관계 덕에 만드는 행위는 더 자라고, 또 다른 행위로 이어진다. 밀착되어 있고 느슨하게 이어져있곤, 함께 한 가지 프로젝트를 하건 각자 만들되 공유를 하건, 제작 공동체라는 존재는 고립되지 않고 서로 귀 기울이며 살아가는 힘이 된다. p173


책 전반적으로 만드는 행위와 이 행위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드는 것이 고독할 수밖에 없는 활동으로서 나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일이라면 이 활동을 바라봐주는 관객이 서로에게 필요하고, 그런 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작업하는 과정이든 작업의 결과물이든 같이 즐겨줄 수 있는 공동체. 책을 통해 만난 릴리쿰의 많은 활동은 그 활동을 이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새롭게 운영하고 있는 공간도 '만들고 싶은, 만들고자 하는, 만들 수 있는 '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서로에게 영감을 받기도 하고, 용기도 위로도 함께 할 수 있는 느슨한 연결고리. 이런 연결고리를 통해 릴리쿰의 표현을 빌자면 " 골방 속 실험이 아니라 함께 뛰노는 축제"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작업실 이문238의 아이들도, 처음엔 혼자서 작업을 하다가 어떤 날은 옆 친구가 하던 작업을 그대로 따라 해보기도 하고, 옆 친구가 한 작업에 본인이 한 작업을 넣어보기도 하고, 어떤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함께 만들기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때론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는 매니저들이 만들 포스터나 안내문을 대신 만들기도 했죠. 이런 관계 속에 아이들은 '작업'할 거리들을 찾아내고 작업을 하고 그 작업의 결과물로 또 다른 관계를 맺어갔습니다.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만들기를 해야 한다고 느껴지기보다, 만들기를 통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작업실 이문238에서 친구와 함께 '무대(?)'를 만들고 있던 아이들




이렇게 글까지 써놓고 보니, 만들기를 모르던 제가 만들기 전도사가 된 느낌입니다. 책을 읽고 확신할 수 있게 된 건, 손으로 무언가 만들어보는 행위를 통해 '나'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고 주체적으로 내 삶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 되며, 반대로 전혀 예상치 못한 길에도 들어서 새로운 기회를 마주 하게 되기도 한다는 것, 나아가 느슨하게 그러나 끈끈하게 서로의 관객이자 영감이 되어주는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들기에 대한 호랑님의 이야기 말미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동의할 수 없음에도 너무나 견고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순응해야 하는
세계가 아니라, 작은 틈을 벌려서라도 직접 내 삶의 우주를 만들고 싶다.


누군가에게 이끌려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기보다 직접 만들어보는 행위를 통해, 작은 틈을 벌려서라도 직접 삶의 우주를 만드는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저도 쉬운 것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오늘부터 곰손 안녕. 



<'직접' 내 삶의 우주를 만드는 일: 손의 모험> 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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