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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 SAW Feb 25. 2019

물건뜯어보기체험전, 그 뒷이야기

[People we see] 물건뜯어보기체험전을 기획, 운영한 사람들

[People we see]에서는 Play Fund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함께 나눈 대화를 전합니다. 일상적으로, 업무 차원에서, 사적으로, 혹은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함께 나눈 생각과 순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모든 시도가 작품이 되는 "물건뜯어보기체험전", 기억하시나요?


눈치 볼 필요 없이 마음껏 기계를 분해하고 자르고 붙이는 특별한 전시였는데요. 모두의 로망이던 '물건 뜯어보기'를 전시로 구현해낸 사람들이 누구일지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생각으로 전시를 만들었는지, 전시를 준비하고 운영하면서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전시에 다 담기 어려웠던 숨겨진 뒷이야기를 듣고자 찾아갔습니다.



전시를 만든 사람들


물건뜯어보기체험전을 기획하고 운영하신 릴리쿰의 호랑님, 무규칙 이종결합 공작터 용도변경의 성수님, [수리할 권리]의 상호님을 릴리쿰스테이지에서 만났습니다.


왼쪽부터 릴리쿰 호랑님, 용도변경 성수님, 수리할 권리 상호님


Q. 어떻게 이런 전시를 만들게 되셨나요?

호랑님: 국립과천과학관 유만선 연구관님과 성수님께서 기획했던 '수장고를 부탁해'라는 행사가 있었어요. 과학관 지하 수장고에 전시가 끝난 전시물들을 폐기하기 전까지 몇 년간 보관하거든요. 성수님께서 메이커들이 모여 수장고 전시물을 개조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내셔서 14개 메이커 팀이 1박 2일 동안 실제로 개조하는 행사를 했어요. 그 행사의 결과물을 전시하려고 준비하다가 분해를 직접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성수님, 릴리쿰, 아티스트 현박작가, [수리할 권리]가 모두 함께 협업해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광장과도 같은 전시장에서 전시 경험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직접 사람들이 와서 뜯어보는 일을 해볼 수 있도록, 이 공간이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잘 보이게 하는데 최대한 집중했습니다.

 

"사물의 조리를 들여다보는 손" 코너와 "기계 최후의 날" 코너의 모습


Q. 각각 어떤 공간을 맡으셨나요?  

호랑님: 체험 공간이 크게 세 가지였는데요. 먼저 "사물의 조리를 들여다보는 손"은 [수리할 권리]팀에서 어린 친구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쉽게 뜯어볼 수 있는 마우스, 키보드 등을 직접 분해해보고 들여다보고 새로운 작품으로 표현까지 해보도록 유도했어요. 다른 하나는 세탁기, 냉장고처럼 좀 더 큰 기계들을 뜯어볼 수 있는 "기계 최후의 날"인데요. 성수님과 현박 작가가 돌아가면서 진행했는데, 오늘 끝장을 보자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분해만 하는 코너로 참여 연령대가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다양했어요. 마지막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자율체험" 공간인데요. 재료를 늘어놓고 마음대로 가져와서 쓰게끔 세팅했으니 마음대로 쓰되 자기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범위 한에서 창작하도록 해보자는 생각으로 공간을 만들었어요.



물건뜯어보기체험전, 그 뒷이야기


Q. 전시장을 구성할 때 특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요?

호랑님: 과학관 입구에서 입장하면 전시를 쓰윽 지나가도 알 수 있도록 들어오는 입구부터 제목, 의도가 잘 보이도록 신경 썼어요.  "수장고를 부탁해" 전시물을 전시의 시작 느낌으로 도입부에 전시하고 자유롭게 만져볼 수 있도록 했죠. 그 옆에는 분해하기 전의 물건들을 쌓아둬서 "이게 뭐지?" 하며 시선을 모을 수 있도록 만들고 그 옆에 바로 물건들이 뜯어져 있는 재료바를 세팅하고 그다음에 워크숍 존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도록 동선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한 바퀴 돌면서 다른 참여자들의 작품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1층 로비, 광장 같은 곳에서 열렸던 물건뜯어보기체험전


Q. 폐모니터 등 물건부터 부품까지, 재료는 어떻게 구하셨어요?

성수님: 디지털 제품 재제조, IT 자산 일괄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인 리맨의 대표님께서 재료 준비를 도와주셨어요. 중고 컴퓨터, 프린터, 키보드, 마우스 등이 다량으로 있었어요. 정말 다행이었죠. 키보드만 600개, 마우스도 수백 개 필요했고 그 분량이 전시장에 계속 있는 게 아니라 치워지고 쌓이고 리필되고.. 만약 고물상에 가서 일일이 사 왔어야 했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재활용 센터에 가더라도 쓸 수 있는 것들을 사다가 부숴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전시가 시작하고 나서는 집에 있는 물건을 가져오신 분들께 우선 체험 기회를 드렸더니 밥솥, 청소기, 저울까지 정말 다양한 물건을 가져오셔서 그것도 재밌었어요.


집에서 가져온 프린터를 뜯기 시작하는 아이의 모습


Q. 전시장에서 아이들을 도와주는 현장 스태프들의 역할을 무엇이라고 보셨나요?

상호님: 감당 가능한 실패를 해볼 수 있도록 최대한 만들어줬어요. 문제가 생기면 해주기보다 스스로 하게 했죠. 기본적으로 분해는 스스로 해야 재밌거든요. 해준다는 생각 자체가 말이 안 되는, 당연히 아이들이 직접 해봐야 하는 행사였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몇 마디만 해줬죠. 도움을 주면 스태프가 수리공이나 마찬가지인거니까 아이폰 자가 수리 워크숍 할 때처럼 고치든 못 고치든, 끝내든 아니든 너의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어요.


성수님: 하나 하나 따라 하는 식의 워크숍이 전혀 필요 없는 건 아니에요. 맨땅에서 처음부터 창의력을 발휘하기는 힘들거든요. 아직 손으로 만드는 게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하나씩 따라 하면서 기술을 익히고 조합하는 연습이 의미가 있어요. 기존에 있는 것을 따라 만들어도 충분히 재밌거든요. 재미있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재밌어야 많이 참여하고 계속 참여할 테니까요.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호랑님: 재료바를 구성할 때 싱크대를 활용했는데 그것도 사실 수장고를 턴 것이에요. 사전에 현장 조사하러 갔을 때 하역장도 봤는데 싱크대가 프레임 째로 쌓여있더라고요. 마침 공간의 컨셉을 구상할 때 야채나 수산물 시장처럼 누구나 들어와서 쓱 들어와서 보고 고를 수 있는 느낌이었으면 했거든요. 그래서 싱크대가 잘 맞을 것 같아서 하역장에 있던 것을 다 옮겨서 뜯고 씻어서 설치했어요.


싱크대로 만든 재료바에서 시장에서 물건 고르듯 자연스럽게 재료를 고르는 아이들의 모습


성수님: 아, 저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 하나 있어요. 아침 9시 30분쯤인가 과학관에 가고 있는데 여자아이 3명이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전력질주로 막 뛰어가더라고요. 설마 전시장에 가나? 했는데 그 아이들이 워크숍 신청 접수를 하고 있었어요. 3일째 온 아이들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인가 생각이 들면서도 뿌듯했어요.


호랑님: 맞아요. 한번 왔던 애들이 재밌으니까 또 오는 경우가 많아서 재참여율도 높았어요. 어떤 초등학생 친구는 오토바이 뜯는 게 너무 재밌었는지 자기 직업을 찾았다며 기계 뜯는 사람이 될 거라고 외치더라고요.



Q. 그럼 혹시 전시에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호랑님: 사소한 부분이긴 하지만 공간을 디자인할 때 분해를 해보고 전시대에 전시하고 나머지 남은 부품들을 분류하도록 해보는 게 목적이었어요. 분류하면서 재질이 뭔지, 부품 이름이 뭔지 알아보고 다음 사람을 위해 재료를 정리하도록 하는 순환 구조를 생각했는데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게 아쉬워요.


상호님: 맞아요. 분해를 하고 그 안에 있는 것을 탐구하길, 내부를 보기를 원했는데 너무 보이는 것, 만지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어떤 것을 알아보도록 유도하기는 어려웠어요.



분해와 만들기의 즐거움


Q. 분해해보는 경험은 왜 중요할까요?

성수님: 전시를 하면서 나의 시작은 뜯는 것이었구나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어요. 어릴 때엔 뜯는 일을 정말 많이 했었는데 최근엔 뜯는 것을 너무 잊고 있었더라고요. 메이킹하면 보통 창의력을 떠올리는데 그러려면 레고 블록 같은 것이 필요해요. 기존 기술에 대한 지식이 레고 블록이고 이를 조립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창의력의 산물인거죠. 결국 레고 블럭이 있어야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거예요. 그래서 이번 전시처럼 기존 기술의 메커니즘을 볼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기존 지식, 레고 블록을 흡수하는 시간, 예를 들면 부담 없이 따라 만들어보는 시간, 남들이 만든 것을 분해해보는 시간이 있어야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거든요. 시작부터 창의적으로 새롭게 만들기는 부담스럽지만, 분해해보면서 시작해보는 건 가볍게 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호랑님: 사실 분해라는 것이 결과물에 대한 기대를 덜하게 만드는 액션이잖아요. 본질적으로 아무도 결과물을 기대할 수 없어요. 그런데도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을 보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하는 게 많았거든요. 혹자가 말하듯 모든 아이들은 이미 창의적인 것 같아요. 창의성을 "길러준다"는 생각 자체가 오히려 창의성을 망칠 수 있죠. 이번 전시처럼 아이들이 부품을 처음 보더라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다른 시각을 대입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시에 오셨던 정말 많은 부모님들이 입을 모아 "너무 좋은 행사예요. 집에선 못해보잖아요"라고 하셨어요. 너무나 당연하게 집에서 못해본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사실 집에서도 할 수 있거든요. 이번 전시가 "그러지 않을 수 있다" "해보면 된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마우스 부품으로 다른 상상을 하는 아이들

Q. 만들기는 왜 즐거울까요?

성수님: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만들기를 그냥 너무 좋아했어요. 어떤 직업을 가질지 고민해본 적도 없죠. 만들기에선 다른 사람에게 밀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컸고.. 왜 즐겁냐는 질문에 답을 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상호님: 저 같은 경우엔 고치는 것에 능숙하지 않았고 기계를 접한 것도 대학교 때 전공을 선택하면서에요. 졸업 후엔 큰 회사를 들어갔는데 하나의 부속품이 된 것 같아 그만두고 창업을 했거든요.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언가 만들 수 있는 게 없으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겠구나를 거꾸로 느꼈어요. 원초적으로 내가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게 뭘까하는 궁금증으로 시작했는데 즐겁지만 어려웠어요.

 

호랑님: 제 개인적으로 만들기가 왜 즐거운지를 말씀드리면 자기표현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글, 그림을 좋아하는 것처럼 만들기도 다 나름의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그런 행위라고 생각해요. 만들기라는 행위 안에서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확장될 때의 기쁨이나 내가 온전히 알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 그 세계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무궁무진하거든요. 릴리쿰스테이지라는 공간도 자기표현을 좀 더 해볼 수 있는 활동들로 채워가고 싶어요. 만들기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자기 언어를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 말이죠.


알아가는 것의 기쁨이 가득한, 릴리쿰스테이지 서가의 과학그림책


Q. 물건뜯어보기체험전과 같은 경험을 일상에서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성수님: 재료를 수급하는 재활용 프로세스까지 포함해서 독자적인 체험장을 만들면 가장 좋겠죠. 대형 마트 같은 곳에 각자 집에 있는 것을 기증할 수 있도록 하고 그걸 뜯거나 만들어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겠어요. 만약 집에서 하고 싶다면 일단 드라이버 몇 개만 더 사도 할 수 있어요. 뜯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거창하지 않더라도 고장 난 것을 구해주고 자기가 하고 싶다는 대로 해볼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호님: [수리할 권리]는 아이폰을 수리하는 워크숍을 하면서 아이폰을 못 고쳐도 된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장례식을 치러주는 의식을 해요. 아이폰에 맞는 관도 만들었어요. 처음부터 아예 포기를 하고 못 고칠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수리를 하면 더 잘하거든요.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을 없애는 게 분해, 수리의 시작인 것 같아요. 특히 만들기에 초점이 맞춰지면 부담이 되거든요. 결과치에 대한 부담이 적어야 해요. 만드는 것에 자극을 준다는 정도의 마음으로 단계별로 적절한 자극을 제시해주는 정도만 해줘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인터뷰를 하기 전 릴리쿰스테이지를 둘러보면서, 그리고 인터뷰를 하는 내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뿐이었습니다.


해볼 수 있겠다. 멋지다. 쿨하다. 나도 해보고 싶다.


물건뜯어보기체험전에서 손을 쓰는, 손으로 뜯는 행위를 보면서 일탈의 감정을 느꼈다면 세 분과 인터뷰를 하면서는 나만의 "손의 모험"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샘솟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만년필을 사서 이름을 새기듯, 저만의 전용 드라이버를 사서 이름을 새기고 싶어졌습니다. 올해는 "만들기"라는 언어를 하나 더 배워보는 건 어떨까요?


손으로 모험해볼 수 있는 기계와 재료가 가득했던 릴리쿰 스테이지



<물건뜯어보기체험전, 그 뒷이야기> 글 어떠셨나요?


국립 과천과학관 물건뜯어보기체험전,  놀이터까지 재밌는 국립과천과학관, 현대어린이책미술관, 그림책여행센터 이담, SEE SAW가 선택한 그림책 이야기 1편, 2편 등 아이와 함께 가보면 좋을 공간이나 읽어보면 좋을 흥미로운 콘텐츠가 매주 목요일 여러분의 메일함으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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