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된 나는 종종 이런 소리를 들었다.
“참 별나, 이상한 구석이 있어.”
당시 나는 말 없고 조용했으며, 어딘지 어두웠다. 하고 싶은 것을 물으면 ‘집에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나는 거북이나 달팽이가 되고 싶었다. 내 집을 몸에 둘러매고 잠시 나갔다가 괴로운 순간엔 서둘러 집에 들어가 버리고 싶었다.
나는 타인의 입으로 이렇게 소개되었다. 참 별나요. 참 이상한 구석이 있어요.
‘아 나는 참 별나고 이상한 사람이구나.’
나는 나를 그렇게 정의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정말 그런 것도 같았다. 사람들보단 어두운 방구석이 좋으니 그게 이상하지 않으면 어떤 게 이상한 것이란 말인가.
언젠가 나는 가족들에게 물었다.
“나 우울증 아닐까?”
“네가 무슨 우울증이야?”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 길,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대로변을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검었다. 나는 또다시 이상함이라는 감옥에 갇힌 것 같았다.
실은 나는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닌, 다른 어떤 문제가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 뭐가 문제야?”
나는 이 한마디를 간절히 바라왔던 것일지 모른다. 나는 나를 이해받고 싶었다.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나 자신을 이해받고 싶었다.
나는 왜 누군가와 평범하게 대화를 못하지? 왜 매번 절벽 끝에 내몰린 사람처럼 불안할까. 내 마음엔 물음표만이 가득했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만 같아 집 밖을 나서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 모든 문제들을 나는 ‘나는 참 별나, 이상한 사람이야. 평범하게 행동하지 못하면 안 돼.’ 애를 쓰고 애를 써서 평범이라는 궤도에 올라서기 위해 노력했다. 이해받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성인이 되고 한참 지나 내가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 누군가 말했다.
“새싹씨는 자신이 상처받은 그 말을 그대로 본인에게 하고 있네요.”
“네?”
“이상한 사람이라는 그 말, 새싹씨가 본인에게 하고 있어요. 새싹씨는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그 말에 묘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처 입었던 말이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었다. 그것도 나의 목소리로 나를 상처 주고 있었다.
“새싹씨는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그 말을 듣고 ‘그렇죠.’하며 웃어넘겼으나 집에 돌아와 일기장 앞에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나는 수긍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서툴렀고 예민했다. 그리고 나를 돌봐줄 어른을 기대했으나 형편상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우울했다. 불안 장애가 있었다. 그것을 이젠 ‘이상함’으로 묶을 필요가 없다.
‘나는 전혀 이상하지 않아.’
일기장에 그리 적었다. 이제껏 이해받지 못한 한 사람을 위해서 정성스레 적었다. 그리고 이젠 이해해 줄 어른이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 ‘나’라는 이해자가 있다. ‘나’라고 하는 이해해 줄 어른이 있다.
새싹씨는 이상하지 않아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