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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Oct 19. 2022

초등학교 때의 운동 (수영)

초등학교 때 했던 운동 중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단연 수영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근처 아파트 단지에 수영장이 생겼다. 사실 난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엄마가 먼저 수영을 다니시더니 너무 좋다며 나 보고도 배우라고 하셨다. 특별히 안 할 이유도 없어서 수영 기초반을 등록했다. 기초반(A반)에서는 한 달 동안 자유형만 배우고 매달 마지막 주에 시험을 본다. 시험을 통과하면 그다음 반인 B반으로 올라가 배영을 배운다.   


   

B반 선생님은 새로운 아이들이 올라오면 그 아이들을 위로 번쩍 들어 물속으로 냅다 던진다. 내 기억 속에선 그 모습이 항상 슬로 모션으로 재생되는데 선생님이 아이를 들면 들린 아이는 허공에서 버둥대다 물속으로 풍웅덩! 내다 꽂힌다. 그러고는 곧바로 이어지는 어푸어푸 허우적대는 소리와 움직임, 물 위로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는 아이의 머리. 선생님은 그제야 긴 막대기를 아이에게 내민다. 아이는 온 힘을 다해 막대기를 잡고 물속에서 빠져나온다. 기초반에서 배운 자유형으로 멋지게 물 밖으로 나오면 좋으련만 물에 빠진 아이 중 그런 아이는 보지 못했다. 열이면 열, 모두 막대기에 매달려 밖으로 나왔다.   


   

수영장에 간 둘째 날, 그 모습을 보고 절대 B반엔 올라가지 않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내가 물에 빠진 것도 아닌데 코에서 매운 느낌이 나는 것 같았다. 공포스러웠다. 수영 강습을 등록하자마자 그만둔다고는 할 수 없으니 절대 빨리 배우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A반에서 최대한 길게 머물자.’하고 결심했다. 그러나 괜한 다짐, 괜한 걱정이었다. 어차피 난 몸치였으니. 물에서 호흡하는 게 되지 않았다. 킥판 없이 물에 뜨는 것까지는 되는데 숨을 쉬려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순간 가라앉았다. 3개월 동안 기초반에서 습득한 건 고개를 물속에 넣고 발차기해서 앞으로 가는 것. 숨이 차면 그대로 내 수영은 끝이다. 발을 바닥에 딛고 일어서서 숨을 푸우 하고 쉬어야 한다. 


     

수영을 배운 지 딱 3개월이 되던 날. 수영 수업을 끝내고 집에 온 나에게 엄마는 “이번엔 B반으로 올라갔지?”하고 물었다. 3개월 내내 기초반에 있었는데 또 떨어졌다고 말하는 게 창피해서 난 “당연히 올라갔지.”하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엄마의 말. 

“다행이다. 쏘쏘(동생)도 다음 달부터 수영 배우기로 했거든. 네가 잘 데리고 다녀. 쏘쏘가 모르는 거 네가 좀 알려주고.”

식은땀이 났다. 난 아직 기초반인데. 그때 솔직하게 ‘사실 나 아직 기초반이야.’ 하면 됐을 텐데 그게 무슨 엄청난 비밀이라고 난 수습하기 어려운 거짓말을 했다.      



어쨌든 그 거짓말을 숨기기 위한 나만의 고군분투가 시작됐다. 우선 첫날은 그냥 기초반에 갔다. 동생을 돌봐준다는 명목으로. 하지만 동생이 내 실력을 눈치채면 안 되니까 줄을 설 때 동생 바로 뒤나 앞에 서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섰다.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는데 두 번째 날부터가 문제였다. 아무런 묘수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수영 가는 날은 다가왔고 수영 셔틀버스를 타는 시간이 됐고 어느새 난 탈의실에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있다. 이를 어쩌지.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났다. 방수가 안 되는 시계를 차고 수영장에 들어가는 거다. 그렇게 수영장에 잠깐 있다가 ‘어머나! 이거 방수가 안 되는 시계인데 차고 왔잖아! 언니밖에 나가서 시계 좀 빼고 다시 올게.’ 하는 거다. 그리고 그대로 밖으로 나오기. 
 
 계획대로 시계를 차고 수영장에 들어갔다. 유아 풀장에서 동생과 장난을 치다가 준비운동을 한 후, 바로 준비한 대사를 했다. “어머!” 하면서. 당연히 동생은 의심하지 않았고 난 그대로 나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다음엔 좀 더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수영복에 물을 묻히고 들어가야 한다. 그 시간 샤워실은 수영을 마치고 샤워를 하려는 사람들과 이제 수영을 하려고 몸을 적시려는 사람이 마구 섞여 복잡하다. 난 동생이 먼저 몸에 물을 적시게 도운 후, “먼저 들어가. 언니는 샤워기 자리 나면 천천히 몸 적시고 들어갈게.”라고 했다. 그러고 자리가 나면 난 이미 수영을 한 사람인 양 수영복을 벗고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몇 번을 했는데 샤워장에 있는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내가 수영을 하지 않고 그냥 샤워만 하고 나가는 걸 알았나?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알았지?’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만 신경을 쓰니 금방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수영하기 전엔 수영복이 젖어있지 않고 말라 있어서 사람들이 어서 몸을 적시고 수영장에 들어가라고 샤워기를 양보해 준다. 그런데 몸만 적시라고 샤워기를 양보했는데 그 사람이 몸을 적시기는커녕 갑자기 방금 입은 것 같은 수영복을 벗고 샤워를 하는 거다. 샤워기를 양보해 준 사람은 이 상황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더 이상 예전 방법을 쓸 수는 없다. 수영복이 젖어야 하니 우선은 수영장에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 그래서 그다음 번엔 동생과 같이 수영장에 들어갔다. 내 실력으로 다른 반에 갈 수는 없으니 동생과 멀리 떨어져 기초반에 줄을 섰다. 그런데 동생에게 들켰다. 

“언니! 왜 여기 있어?”

난 동생을 보고 씩 웃으며 바로 옆 반으로 가서 줄을 섰다. 그런데 줄을 선 곳은 B반도 아닌 무려 C반이었다. 다행히 레벨이 높은 반도 처음에는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며 몸을 푼다. 킥판 발차기는 나도 할 수 있다. 수영장 레인을 그렇게 한 바퀴 돌고 그다음엔 킥판 잡고 팔 돌리기. 다행히 이것도 할 수 있다. 선생님은 수강생의 얼굴을 다 기억하지 못하시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내 팔 동작을 교정해 주신다. 걸릴까 봐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그래, 오늘은 수영장 레인을 두 바퀴나 돌았어. 이 정도면 충분하지.’ 난 뿌듯한 마음으로 수영장 밖으로 나와 샤워실로 갔다.      



그렇게 두 번 정도 더 했나. 드디어 한 달이 지났다. 같은 곳에서 버스를 타는 한 살 많은 오빠가 마지막 레슨이 끝나는 날, 버스에서 나에게 물었다. 

“너 수영 엄청 잘하지?”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일까. 비웃는 질문이라고 여기기엔 너무 진지한 표정이다. 난 어깨를 으쓱했다. 이건 잘난 척하는 으쓱이 아니라 정말 무슨 말인지 몰라서 하는 으쓱이었다. 그 오빠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내 동생에게 물었다. 

“너네 언니 수영 디개 잘하지?”

내 동생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동생은 내가 수영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 오빠는 다시 날 보며 말했다. 

“너 기초반부터 고급반까지 돌아다니면서 수영하더라. 대단해! 엄청 잘하나 봐.”

어머.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겠구나. 마지막 날 내 거짓말이 들통날까 가슴이 철렁했는데 다행이었다. 이렇게 머리가 아팠던 한 달이 지났고 난 무슨 이유를 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수영을 그만두었다. 얼마나 가뿐했던지. 지금 생각하면 수영 갈 때마다 느꼈을 엄청난 스트레스를 어떻게 견뎠을까 싶다. 그렇게까지 거짓말을 했어야 했을까. 그때의 나는 꼭 지금의 내가 아닌 것 같다. 


     

운동은 좋아하지만 운동을 못 한다고 말하기 자존심 상했던 내가 보통 사람과 비슷해지는 방법은 거짓말뿐이었을까. 아슬아슬 거짓말에 기대 수영장에 다녔던 한 달이 지났고 난 그 뒤로 20년 넘게, 신혼여행의 멋진 수영장에 가서까지 물에 고개를 넣고 발차기만 하는 수영 같지도 않은 수영밖에 하질 못했다.      



운동은 배우고 싶고 하기 전엔 정말 잘할 것 같은데 막상 하면 너무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창피해서 그만두고 싶은데, 바로 그만둘 수는 없으니 그만둘 때까지 엄마에게 이런저런 거짓말을 한다. 이 패턴은 중학교 때도 이어진다. 거짓말과 함께 가는 몸치의 운동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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