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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Oct 26. 2022

"떠나지 않게만 해달라"

3-1. 400일 넘게 천막을 쳤지만 바뀐 거라곤

상인들이 천막을 친 건 2018년 12월7일이었습니다. 그 때는 이 천막이 1년 넘게 갈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홍씨는 당시 천막 농성에 참여했던 상인 중 한 명입니다. 그는 그 때를 회상하며 "우리가 무지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냥 하루아침에 300명이 쫓겨났을 때였어요. 그 때 우리는 재개발이 뭔지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어느 날 추석 명절을 쇠고 와보니 건물이 다 무너져 버린 거예요. 가게마다 막 2억원씩 압류가 들어와요. 그 다음에는 통지서를 집으로 보내요. 그럼 가족들은 난리가 나는 거예요. 나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재개발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고 그렇게 비인간적으로 하는지 몰랐던 거죠. 그렇게 막 나올 줄은 몰랐어요. 상인들은 다 울고불고…."


서울 청계천변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이 재개발에 반대하며 청계천과 충무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관수교 앞에 천막을 쳤을 때 이야기입니다. 관수교에서 청계천 남쪽으로 60~70m 정도 내려오면 그 유명한 ‘노가리 골목’이 있습니다. 우리가 서울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로 이름을 따 보통 '을지로'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이 일대에는 한국전쟁 직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공구상권이 있습니다. 건설·제조 등 산업현장에 공급되는 묵직한 장비들을 팝니다. 수십년 이어온 장사 터전을 잃게 된 상인들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천막을 쳤건만, 그 해 12월 이 소식을 전한 기사는 단 3건뿐입니다. 그마저도 지상파·종편 등 주요 방송사나 일간지는 없고 전부 군소 인터넷매체의 기사입니다. 그 중 한 기사는 상인들이 천막을 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청계천 공구상가 상인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서울시가 도심 재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대체 부지도 없이 개발을 강행하면서 약 1만여 업체 4만 명의 종사자가 거리로 나앉게 되었다는 이유에서다. 청계천 생존권사수 비상대책위원회는 26일 오후 청계천 비대위 천막 농성장이 설치된 중구 충무로 관수교 앞에서 ‘'계천 재개발 반대 전국 지지 결의대회'를 갖고 청계천 개발사업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청계천 생존권사수 비상대책위원회(아래 청계천 비대위) 강문원 위원장은 "현재 청계천은 1만개의 작은 점포에 4만의 종업원이 일하고 있으며, 여기에 딸린 20만에 달하는 어머니와 아들, 딸들이 생계를 기대고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중략)… 그 이유와 관련해서는 "힘든 업종이다 보니까 젊은 사람들은 오지를 않는다"면서 "청계천은 또한 하나의 유기체처럼 집단적으로 모여 있어야 기능을 발휘한다. 한 업소에 모든 제품을 구비할 수 없어 옆의 다른 업소에서 가져와서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고사한다"며 그 특성을 설명했다. …(중략)… 한편 현재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곳은 청계2·4가 공구상가 상인들이다. 갈등은 2006년 이 지역이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설정되면서 시작됐다. 서울시는 이 지역에 2023년까지 주상복합 아파트 등을 건설할 예정이다. 청계천 비대위는 지난 7일부터 박원순 시장과의 면담과 대체부지 마련 등을 요구하면서 철야 농성을 시작했다.1)

2018년 12월 청계천 일대 상인들이 관수교 앞 사거리에 천막을 세우고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페이스북

상인들은 412일 동안 천막 농성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끝내 재개발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철거 당한 상점들이 있었던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1, 3-4, 3-5구역에는 2023년 2월 입주를 목표로 현재 최고 27층 높이 주상복합 건물 공사가 막바지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홍씨는 천막 농성을 하면서 '교훈'을 하나 얻었습니다. "용산참사2)로 바뀐 거라고는 영업 보상비가 3개월치에서 4개월치로 늘어난 것밖에는 없더라고요." 상인들은 평생 일터를 떠난 대가라기엔 턱없이 부족한 푼돈을 받아들고 떠나야 했습니다.


홍씨의 가게는 노가리 골목 근처에 있는데, 재개발 구역과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어 다행히 그 때는 화를 면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27층에서 드리우기 시작한 재개발의 그림자는 금세 커져갔습니다. 3-1, 3-4, 3-5구역 뒤편에 있던 3-2, 3-3, 3-6, 3-7, 3-8, 3-9, 3-10구역으로 뻗어나가면서 3-2구역에 있는 1985년 문을 연 유명 노포 '을지면옥'을 집어삼키더니, 마침내 그 건너편에 홍씨의 공구가게가 있는 쪽까지 들이닥쳤습니다. 1년 넘게 끈 천막 농성을 접은 다음에도 기자회견, 토론회, 집회를 한 달에 한 번꼴로 열고, 서울시청은 물론 청와대까지 찾아가 호소해봤지만 재개발을 저지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홍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여기 계속 남아야 해요. 차라리 집이라면 그냥 떠나겠어요. 먹고 살기 위해 여기서 벌어서 자식을 길러야 하는 입장에서 쉽게 떠날 수가 없는 거잖아요. 재개발 때문에 문래동, 성수동, 파주로 떠난 사람들, 나중에 보면 거기서 폐업하고 다시 와요. 그런데 돌아와도 여긴 이제 자리가 없어요."


상인들은 왜 떠나지 못하며, 또 왜 떠나고서도 다시 돌아온다는 걸까요? 혹시 앞서 창신동 봉제산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나왔던 '산업 생태계'란 말을 기억하시나요? 여기에서도 그 개념이 다시 소환됩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일대에는 2017년 기준 8,562개 사업체가 있습니다. 거의 모두 2~3명 정도 고용하고 있는 소규모 업체들입니다. 대략 2만명 이상이 일하고 있는 겁니다.3) 이 지역에 이렇게 많은 회사들이 있는 줄 몰랐다고요? 대부분 공장에 가까운 회사들입니다.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업력이 20년 안팎에 이릅니다. 뭔가를 만드는 곳이자 가르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75% 정도가 사업장에서 기술을 배워 일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중심에 있는 세운상가에는 요즘 젊은이들이 줄서서 사먹는 '빠우'란 도넛가게에 그 단서가 있습니다. 발음이 재미난 이름인데, 사실 'Buff(연마하다)'의 일본식 발음입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곳곳에는 '○○빠우'란 이름을 가진 가게들이 있습니다. 빠우가게에선 종일 금속을 갈고 닦는(Buff) 날카로운 소리가 납니다. 근처를 다니다 보면 이 소리가 바로 이 지역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소리가 나는 가게들엔 대개 '○○정밀', '○○금속', '○○공업' 같은 상호가 달려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여기는 서울 도심의 제조업 지대입니다. 가게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금속을 정밀하게 가공하는 일뿐만 아니라 아크릴 제작, 인쇄, 공구·부품·조명 도소매, 그리고 세운상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기·전자제품 제조까지, 여기에는 아직 산업이 살아 숨쉽니다.

세운상가 일대 가게들에선 종일 금속을 깎고 다듬는 소리가 들린다. 종이처럼 잘게 찢어진 금속 찌꺼기를 하루에도 몇번씩 수거하는 차량이 들락거린다. ⓒ허남설

이들은 각기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A업체가 발주하고, B업체가 재료를 대고, C업체가 제품을 가공하는 사슬로 얽혀있습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의 도소매 업체들에게 물었더니 28.6%는 '주변 제조업체에서 제작한 완제품을 판매’'한다고 했고, 24.4%는 '제품의 수리, 조립, 가공, 설치를 위해 의뢰'한다고 했으며, 27.7%는 '주변 제조업체로부터 주문을 받아 납품'한다고 했습니다.4) 80% 이상이 주변과 어떻게든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또 제조업체의 41.8%, 인쇄업체의 81.7%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안에 주로 하청을 주고 있었고, 특히 인쇄업체의 76.2%는 모든 공정을 그 안에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원자재도 제조업체의 60.3%, 인쇄업체의 83.3%가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일대에서 조달했습니다.5)


우리는 이러한 산업 생태계를 억지로 끊어낸 결과를 똑똑히 목격한 바 있습니다. 홍씨는 그 일을 '가든파이브의 상처'라고 부릅니다. 2003~2005년 청계천 복원 공사를 하면서 당시 수많은 기계·공구 상인들이 송파구 가든파이브로 이주했다가 실패한 기억입니다. 가든파이브 건설에는 동남권 물류·유통 거점을 만든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장사 터전을 잃은 청계천 상인들에게 대체상가를 준다는 성격도 있었습니다. 여러 동으로 구성된 건물에 '웍스(Works)'와 '툴(Tool)' 등 청계천 상인들의 기계·공구 판매 등 업태를 반영한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든파이브가 문을 열고 보니 어땠습니까. 2010년대 중반까지 80~90%가 공실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텅텅 비어 '유령 상가'라고 불렸습니다. 지금은 쇼핑몰이나 백화점, 대형 물류회사 창고가 들어와 조금 낫지만, 여전히 공실이 적지 않습니다. 2008년 완공 직후 이미 높은 공실률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나온 한 기사는 어떤 상인의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합니다. "상권이라는 것이 인위적으로 만든다고 해서 바로 형성되는 게 아니거든."6) 이 악몽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고 들었을 홍씨 같은 청계천, 세운상가 상인들이 재개발에 거부감이 강한 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미 오랜 세월을 거치며 형성된 산업 생태계는 한 번 그 사슬이 깨지면 다시는 복원되기 어렵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세운상가 옥상에서 바라본 세운지구. 금속·아크릴 가공 등 제조업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허남설

1) 추광규·김용숙, 2018년 12월26일, <"피맛골 없애더니 이제는 청계천 공구상가마저">, 오마이뉴스

2) 2009년 1월20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세입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 회원들이 진압을 시도하던 경찰·용역직원들과 충돌하다가 화재가 발생해 세입자 2명, 전철연 회원 2명, 경찰 1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3) 강우원·황지은·심한별·안채원, 2020년 9월, <세운일대 산업 특성 조사 보고서>, 서울특별시, 5쪽

4) 3)의 글, 33쪽

5) 3)의 글, 51쪽

6) 지영호, 2008년 11월25일, <청계천 '쇠꾼들' 길을 잃다>, 머니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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