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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Oct 26. 2022

신림 반지하와 종로 고시원

2-4. 비극, 그럼에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집

제가 만났던 행당동 노인은 살던 동네가 폐허가 될 때까지 버티고서도 겨우 옆동네로 옮겨 갔습니다. 그의 좁은 이주 반경을 두고 좁은 시야를 탓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 노인에게는 익숙한 일거리를 유지하면서 몸이 불편한 남편, 출퇴근하는 손녀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겁니다. 딱 그 정도가 그 노인이 옴치고 뛸 수 있는 세상의 전부였던 셈입니다. 노인이 살던 동네는 지금과 같은 아파트로 변신하는 '주거환경개선'을 추구하며 기존 터전을 싹 갈아엎었습니다. 하지만 노인처럼 그 결과물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권리 없는 세입자는 물론, 녹번동 재개발처럼 10%도 안 되는 원주민 재정착률을 고려하면 재개발의 혜택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습니다.


이 동네 반지하에서 저 동네 반지하로 옮겨간 노인의 궤적은 도시 주거의 '음지'와 '양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아무리 많은 재개발로 빛나는 도시를 꿈꾸더라도 그 도시에는 상대적으로 어두운 공간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뉴욕, 런던, 파리, 도쿄, 베이징, 그 어떤 도시를 떠올려도 '슬럼(slum)'이라고 부르는 허름한 주거지는 존재합니다. 그리고, 도시에는 그런 집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누군가는 길이 가파르고 집이 볼품없기 때문에 재개발을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길이 가파르고 집이 볼품없기 때문에 집세가 싼 집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행당동 노인의 생업이었던 폐지 수거는 종이를 대규모로 사용하고 버리는 도시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럼 도시에는 폐지 1㎏을 모아 몇십원을 받는 수입으로 살 수 있는 집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쏟아지는 폐지를 모아서 재활용하거나 버리는 일처럼 도시의 하부구조를 지탱하는 노동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런 동네를 재개발로 하나씩 없애는 건 어쩌면 그 하부구조를 스스로 야금야금 갉아먹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NK Lee(https://unsplash.com/)

우리는 2022년 8월 폭우 속에 벌어진 '신림동 반지하 참사'1)에서 그 징후를 읽었습니다. 비극이 일어난 후 며칠 뒤 서울시는 갑자기 반지하집을 모두 없애겠다는 계획을 발표합니다.2) 반지하는 수해에도 취약하지만 사생활 보호 측면이나 주거 환경으로서도 썩 좋지는 않으니 더 이상 새로 만들지 말자거나 현재 있는 걸 없애자는 구상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오히려 서울시의 발표는 반지하 거주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당장 "그럼 어디 가서 살라는 말이냐"는 비판이 나왔습니다.3)


사실 당시 비극을 맞은 그 가정이 반지하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잘 보여줬습니다. 반지하이지만 도심에 있고, 반지하이지만 자녀에게 따로 방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넓고, 반지하이지만 임차하지 않고 보유해서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 가정의 입장에서는 서울을 벗어나 있거나, 비좁거나, 일정 기간마다 임대차 계약을 맺으며 이사 다녀야 하는 집들과 비교해서 내린 매우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결정, 아주 고심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겁니다. 한국도시연구소 보고서4)에 따르면, 지하 자가가구 주택 가격은 1억3821만원, 지하 전세가구 보증금은 6527만원으로 서울의 자가가구 주택 가격 6억8575만원, 전세가구 보증금 2억3835만원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도림천 근처는 저지대라 수해에 취약한 지역이었지만 이들에게 '반지하'는 위험이 아니라 적은 돈으로 방 세 칸을 마련할 기회로 보였다고 한다. 게다가 큰딸이 다닐 수 있는 복지관이 가까웠다.5)


이런 맥락을 다 제거하고 덜렁 "반지하를 없애자"라는 선언만 행정당국에서 나왔으니,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반발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국토교통부 장관까지도 서울시에 쓴소리를 했습니다. "반지하도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반지하를 없애면, 그분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6) 참사를 당한 가정 입장에서 질문을 바꾸면 이런 게 될 겁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돈으로 도심에 있으면서 이만큼 넓고 자가로 소유할 수 있는 집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장관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산동네, 달동네를 없애는 바람에 많은 분들이 반지하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되풀이할 수는 없습니다."7) 재개발 때문에 반지하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의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열악한 주거 형태를 싸잡아 부르는 '지(하방)옥(탑방)고(시원)' 혹은 쪽방, 컨테이너, 비닐하우스, 고시원, 여관 등 비정적 주거(주택 이외의 거처)는 2010~2015년 급증했습니다.8) 뉴타운이란 이름으로 재개발 사업이 수도권을 휩쓸던 시기와 일치합니다. 산기슭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달동네가 흉물스럽다며 싹 밀고 뉴타운을 만들었으니 그 많은 사람들이 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요? 재개발 후 원주민 재정착률이 10%나 되면, 또 새로 짓는 집의 10%라도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면 다행인 도시에서 말입니다. 결국 도심 틈새에 이끼처럼 번식한 비적정 주거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하(반지하), 옥상(옥탑방), 주택 이외의 거처(고시원·비닐하우스 등) 통계. ⓒ<생명권과 건강권을 위협받고 있는 지옥고 실태와 대응 방안>(2022), 5쪽 재구성

물론, 한 세대당 필요한 주차공간을 늘려 반지하 대신 주차장을 만들 수밖에 없게 된 제도 변경9) 등 영향으로 같은 기간 반지하는 대폭 줄었습니다. 국토부 장관이 가리킨 '과거'가 이 시기를 말하는 것인지도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적어도 반지하 같은 열악한 주거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맥락만큼은 정확히 짚었다고 봐야 합니다. 반지하 논쟁을 벌인 서울시장과 국토부 장관은 모두 변호사 출신인데, 그들이 사법고시 공부를 할 때만 해도 고시원이 지금처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공간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악착같이 도시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 돼있든 그런 비적정 주거를 찾아 비집고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종로 고시원 참사'에서도 목격했습니다. '신림동 반지하 참사'처럼 비적정 주거에서 일어난 또 다른 비극입니다. 2018년 11월9일 새벽 5시경, 서울 청계천 근처에 있는 국일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죽고 11명이 다쳤습니다. 사상자는 역시 고시생이 아니라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집을 잃었습니다. 다행히 정부가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고시원에서 살아남은 32명에게 서울 은평구 등 강북지역에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국일고시원 이야기는 '새 집에 들어가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당시 실제로 입주한 사람이 10명에 그치고 나머지는 그냥 뿔뿔이 흩어졌다는 겁니다.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다른 고시원이나 여인숙 등 저렴하게 장기 투숙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갔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국일고시원 거주자 대다수는 40~60대 일용직 근로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이재민에게 제시한 임대주택은 ‘인력 시장’과 거리가 떨어진 은평구, 성북구, 중랑구 등에 집중되어 있다. 국일고시원 입주자들은 종로, 서울역의 인력 사무소에 나가기 위해 대부분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은평, 중랑, 성북 등지에서 인력사무소까지 가려면 새벽 첫 차를 타고 30분 이상 와야 한다. 월 10만원 안팎의 적지 않은 교통비가 드는 데다, 자칫 늦으면 일감을 구하지 못할 우려도 있다.10)


국일고시원 이야기는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용역과 재화에 대한 접근성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가난은 버스 요금 100원에 그 누구보다 민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시 외곽으로 가면 조금 더 넓은 방을 구할 수 있어도 굳이 도심에 있는 고시원이나 여인숙, 반지하를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경제학과 교수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그의 명저 <도시의 승리>에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로테르담에 이르기까지 도시에 존재하는 가난은 도시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을 드러내 준다"라며 "사실상 우리는 가난이 눈에 안 띄는 장소들을 더 걱정해야 한다. 무슨 이유로 그런 곳들은 불행한 상황의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것일까?"라고 묻습니다.11) 가난한 사람들이 도심에 있는 경제 중심으로 몰려들어 기회를 얻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그런 가난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도시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그 문제를 찾자면, 그것은 그런 사람들이 살만한 집들을 도시에서 자꾸 몰아냈다는 점입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가난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몰려든 도시의 대표적 사례로 뭄바이를 꼽는다. ⓒAlfarnas Solkar(https://unsplash.com/)

1) 2022년 8월8일 호우가 내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들이 여럿 침수됐다. 한 집에서는 한 40대 여성과 10대 딸, 또 이 40대 여성의 언니가 물에 잠겨 숨을 거뒀다. 이 가족은 반지하집 문 앞에 급속히 빗물이 들어차 수압 때문에 문을 열 수 없어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당일 서울 강남구, 서초구 , 동작구 등 한강 이남지역에 일제히 물난리가 나 112, 119 등에 신고가 폭주해 구조 요청 또한 쉽지 않았다고 한다. 숨진 가족 중 언니는 발달장애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2) 서울특별시, 2022년 8월10일, <서울시, 시민 안전 위협하는 '반지하 주택' 없애 나간다>, 보도자료

3) 유엄식·이민하·이소은, 2022년 8월12일<반지하방 없앤다…"이 돈으로 어딜" 갈 곳 없는 20만가구>, 머니투데이

4) 한국도시연구소, 2022년 8월, <생명권과 건강권을 위협받고 있는 지옥고 실태와 대응 방안>, 심상정 의원실 연구보고서, 23쪽

5) 이수민, 2022년 8월10일, <"엄마 문 안열려" 이게 마지막이었다…신림 반지하 비극>, 중앙일보

6)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2022년 8월12일, 페이스북 글

7) 6)의 글

8) 4)의 글

9) 2000년 주차장법을 개정해 주차장 설치 기준을 세대당 '0.7대 이상'에서 '1.0대 이상'으로 강화하고, 건축법도 개정해 주택 1층을 주차장으로 쓰도록 필로티 구조(기둥만 있고 벽이 없는 구조)를 만든 경우, 1층은 건물 연면적에서 빼고 1개 층을 더 높게 지을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해서 한 세대당 필요한 주차 공간이 늘어난 데다, 전체 세대수에 변함없이 주차장을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1층 혹은 반지하층을 유인이 사라졌다.

10) 손덕호, 2018년 11월27일, <공무원 탁상공론이 빚은 '그림의 떡', 일용직 노동자들은 외면했다>, 조선일보

11) 에드워드 글레이저, 2011년, <도시의 승리>, 해냄출판사, 138~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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