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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키승 Feb 24. 2024

공무원 할래?(인터스텔라)

열두 번째 꼰무원들

문득 내가 공무원이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내 인생인데  평생직업을 선택한 이유를 모른다니 웃기지 않은가  


어릴 때부터 나는 몸이 약한 아이였다. 몸이 차갑고 소화기관이 약해서 매일 배탈이 났다. 기침도 잦아서 보약도 자주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였을까 다 커서 몸도 건강해지고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었지만 엄마도 나도 '러키승은 약한 아이'라고 당연하게 여겼다


수능을 보고 대학을 선택할 때부터 엄마는 몸이 약한 나에게 공무원이 되라고 하셨다. 나는 사실 언어를 전공해서 미국이나 일본, 중국으로 나가서 살고 싶었다. (언어를 전공하면 외국 나가서 살 수 있는 줄 알았다) 근데 원서를 넣은 언어학과는 똑 떨어지고 엄마의 pick으로 넣은 행정학과 하나만 딸랑 붙었다. 이건 나의 운명인 건가.....


10여 년 전 당시 공무원은 인기직업이었다.

'여자직업으로 공무원이 최고다.'

'편하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 '

'몇 년만 버티면 월급도 괜찮다. '

'공무원 부부는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다. '


공무원으로 입직하고 지겹도록 들은 말이다. 대부분 어르신 공무원들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매월 하루의 오차 없이 통장에 찍히는 월급은 심적인 안정감을 준다. 어딜 가도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할 필요가 없었다. 비록 코딱지만큼 적지만, 내 몸으로 번 나의 근로소득으로 스스로를 케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의 직업은 편하고 안정적이고 여자라서 꿀리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공무원 부부도 진짜 많았다. 그냥 다 공무원 부부였다. 공무원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서로가 서로를 소개해주고, 젊은 직원들은 공무원이랑 결혼하는 게 목표이자 부러움이었다. 공무원 신혼부부라면 연봉이 7,000만 원 정도 될 텐데 몇 년 전만 해도 저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한 거지. 지금은 아니지만.


엄마의 pick과 시대의 유행으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직업을 선택했다. 너무 어렸을까. 20대 때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던 것이 후회된다. 다양한 일을 경험해보고 다른 길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의 성향을 알고 나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물론 아직도 나에게 경험과 기회는 열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지나간 결정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무지함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고 해두자.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나에게 많은 걸 배우게 해 주었기에 (이건 나중에 글로 써보려 한다) 땅을 치고 울지는 않는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내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10년 전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고 있을 나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S... T... A... Y.... 가지 마!!!......         

S T A Y.... 가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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