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어야 하는데 가을 기운을 벗질 못했지. 하이드 파크가 갈잿빛 투성이가 된 이유가 바로 그거야. 갈잿빛의 정점을 찍는 건 버킹엄 궁 정문 앞에 있는 호수지. 행색을 보면 차라리 웅덩이라 불리는 편이 나아 보이는 호수야. 그 위에는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헤엄치는 새가 있어. 백조는 아니지만 날개옷을 흐트러짐 없이 관리하는 녀석이야. 말쑥하지. 부리가 특히 날카로워. 검은 잉크가 잔뜩 새어 나온 만년필 촉을 쏙 빼닮았지. 난 겨울마다 여기 와서 앉아서 그 새를 봐. 저 부리를 손에 쥐고 하얀 메모장 위에서 스케이트를 탄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상상하지. 부리를 만져보기도 전에 새가 눈치를 채고 날아오를 거라는 건 알지만 상상은 자유잖아. 비상하는 생명을 손에 쥔다면 두 발이 땅에 붙어 있더라도 나는 기분이 들 거야 분명. 오래 저 녀석을 관찰하다 보면 많이 놀라. 어쩜 물결 파동 하나 호수 표면 위로 흘려보내는 법이 없어. 고난도 헤엄이야. 발재간이 좋은 게지. 날개만 안 폈지 저게 비행이 아니고서야 뭐겠어."
[하이드 파크의 새들은 모두 런던 산림청의 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뒤뚱거리는 비둘기들은 예외입니다. 발목에 감아 놓은 이름표가 떨어진 걸 목격하신 분은 가까운 곳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근위병 B-48에게 신고 바랍니다.]
"난 신고하지 않을 거야. 지금껏 감시받고 있는 녀석들이 제대로 날아올랐던 적이 있었겠냐고. 내가 손에 쥐지도 못할 부리라면, (어차피 그렇게 되겠지), 녀석이 여길 벗어나는 게 낫다고 봐. 사람도, 새도, 하늘로 뛰어들면 좀 좋아."
호디 아저씨는 말을 멈추고선 담뱃불을 껐다. 그리고 웅덩이를 닮은 호수 앞으로 걸어갔다. 때아닌 물가 쪽에선 꽤액 하는 소리가 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 사십 오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