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대학 병원 진료, 그리고 정규직 전환 결과
세 번째 회사 : 중소기업 C사(2)
한 달이란 긴 기다림이 끝났다. 예약 날, 오전 반차를 내고 대학 병원으로 갔다. 예약 시간이 되자 담당 교수님 진료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드디어 진찰받는다는 기쁨을 온전히 느낄 새도 없이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되었다.
"종양이 혈관을 타고 들어가서 수술 못 해요. 잘못 건드리면 좀 위험한 위치거든요. 우선 약이 잘 듣기를 바라보죠.“
한 달을 기다리면서 나름 여러 가지 내용을 상상했고 답할 거리를 미리 생각해냈다.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말하면 나는 C사 인턴생활이 끝날 때까지 미루겠노라 답할 생각이었다. 혹은 수술 진행 방식에 대하여 의견을 묻는다면 내시경 수술로 진행하고 싶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수술을 못 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돌연 뒤통수에 한 대를 얻어맞은 듯했다.
충격에 아무런 반응 없이 앉아만 있었더니, 교수님은 뇌하수체 종양은 어차피 약이 잘 듣는 질병이니 벌써 걱정할 필요가 없단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런 긍정적인 말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머릿속에는 '위치가 안 좋다고? 그래서 수술이 안 된다고?'란 생각만 도돌이표처럼 맴돌았다.
그 후 약국에 가서 커버락틴이라는 약을 처방받았다. 양은 총 3개월 치였다. 3개월 뒤에 효과 유무를 살피고자 다시 진료를 보기로 했다.
어느덧 반차를 낸 시간이 다 되어갔다. 나는 병원 1층에 있는 제과점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서 회사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휙휙 바뀌는 바깥 풍경을 물끄러미 관찰했다. 어쩐지 B사를 다니던 때가 생각이 났다. 정신과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은 지금과 같이 날씨가 화창했고 하늘이 푸르렀다. 다만, 생각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그때는 자동차 바퀴를 바라보며 현실도피를 하려 했다면, 또는 모든 인내심을 끌어올려 현실을 이겨내려 했다면, 지금은 내 마음속을 들여 보기만 했다. 머릿속이 지끈거릴 때까지 나와 관련된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있었다.
내가 해야 할 바는 무엇일까? 이건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될 만큼 명확했다. 남은 2개월 동안 C사 업무를 누구보다도 잘 수행하는 것, 주어진 인턴 과제도 잘 끝마치는 것. 그로 인해 정규직이 되는 것.
반면 내가 하고 싶은 바는 무엇일까? 이건 명확하지 않았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하고 싶은 일들을 줄줄 써내려갈 수 있긴 했다.
온전히 내 힘으로만 자립 생활을 이어가기, 야근하지 않고 편하게 살아가기, 맛있는 걸 먹고 다니기, 창작 활동을 해보기,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보기, 내가 하고 싶은 업무만 받고 살기, 예쁜 옷을 입고 돌아다니기, 집 안 인테리어를 새로 하기 등이 있겠다.
쓰라면 더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자문은 공상과도 같지 않은가. 마치 어린아이가 제 장래희망을 공룡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사회에 나온 성인이었고, 장래 희망란에는 생계를 책임질 직업명을 또박또박 적어야 할 나이였다.
그걸 알면서도 다른 인턴들을 제칠만한 노력을 쏟지 않았다. 주어진 업무는 성실히 수행하긴 했다. 빠듯한 마감 일정을 어떻게든 맞추기 위해 야근을 꾸준히 해왔고 주말에도 빈번히 일했다. 업무 때문에 새벽에 잠을 자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한 열정일 것이다. 다른 인턴들에 비해서.
대다수 인턴들은 몇 명만 살아남는 이 경쟁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C사에서 요구하는 역량 그 이상을 선보이려 들었다. 회사가 1을 요구하면 다들 2를 가져왔고, 3을 요구하면 5를 가져오는 식이었다. 가히 뼈를 깎는 노력이라 할 수 있었다. 비단 업무뿐만이 아니라 태도에서까지도 그들을 애를 썼다.
사내 행사로 인해 인턴을 포함한 C사의 임직원들이 라운지에 모인 날이 있었다. 한창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도중, 인턴 동기 '박'이 돌연 이런 말을 꺼냈다.
“C사 분위기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저와 엄청나게 잘 맞아요! 오래 다니고 싶다니까요.”
면접장도 아닌데 애사심을 뿜어내는 인턴을 향해서 사람들은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가 왜 본인과 잘 맞는 거 같으냐고 묻자 그녀는 자연스럽게 C사의 강점과 자신의 강점을 엮어 대답했다. 대단한 달변이었다.
순간, 나도 뭐라도 내세워야 하나 싶어 입술을 벙긋거렸지만 이내 다물었다. 별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좀 피곤했을 뿐이었다. B사를 다녔을 때의 나라면 아마 바로 말을 꺼냈을 텐데, 그런 생각이 짧게 스쳐 지나갔다.
다른 이들에 비해 확실히 몇 도는 낮을 내 열정을 C사의 직원들이 못 알아차릴 리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떨어졌음을 직감했다. 정규직 전환 결과는 인턴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 일주일 전에 나온다고 들었지만 나는 내 탈락을 빠르게 예견할 수 있었다. 인턴 동기들에 비해 주요 프로젝트 참여 비중은 줄고, 잡일을 하는 업무가 점점 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업무가 하나둘씩 늘 때마다 나 역시 미리 사무실의 짐을 하나둘씩 정리하여 회사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추운 겨울에 의자에 놓았던 방석과 담요를 들고 왔고 건조한 계절을 이기기 위해 책상 위에 두었던 가습기를 들고 왔다. 서랍 속에 고이 쟁여두던 마스크도 챙겨 왔다.
[C사 정규직 전환 대상에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불합격 결과 메일을 받은 당일에는 꽤 담담하게 굴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내 탈락을 더 슬퍼해 주는 이를 위로할 만큼 말이다.
“괜찮아요. 탈락 예상했거든요.”
“아뇨. 전 예상 못 했어요. 어떻게 이래요? 이건 말도 안 돼요! 사람 갖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계속해서 분개를 터트리는 그녀는 나와 같은 팀에 속한 인턴이자 정규직 전환이 된 합격자였다. 이제 본인 소속의 회사인데도 나를 위해 C사를 실컷 욕해주는 그녀의 배려가 고마웠다.
다른 인턴들 모두가 그녀 같지는 않았다. 상반된 반응을 보인 이도 있었다.
“이 정도면 많이 붙은 거죠. 솔직히 이렇게 전환율 높은 회사도 어디 없을걸요?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많은 신입을 뽑는 곳도 어디 없고요.”
그렇게 말하는 그 역시 정규직 전환 합격자였다. 그는 벌써 C사의 임원이 된 것처럼 굴고 있었다. 참고로 내가 속한 팀의 정규직 전환율은 약 50%를 기록했다.
사내 행사 날, 자신의 존재감을 톡톡히 드러냈던 인턴 박도 붙었다. 그녀는 합격 메일을 받은 직후 화장실 칸에 들어가 남몰래 눈물을 찔끔 흘렸다고 했다. 속사정을 왜 이리 자세히 알고 있느냐면 그녀가 내게 직접 밝혔기 때문이었다.
“여기 못 붙었으면 정말 전 큰일 났을 거예요. 이제 와서 어떻게 또 구직하겠어요?”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합격 소감을 밝혔다. 나도 그냥 따라 웃었다. 내 미소에는 씁쓸함이 감돌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게 말입니다. 저는 언제 어떻게 또 취업 준비를 해야 할까요.’라는 말은 삼켰다.
최종 발표가 난 이후 C사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합격한 인턴과 불합격한 인턴이 여전히 한 사무실에서 함께 일을 하고 있으니 그럴 법했다. 혼란이 가중되든 말든 시간은 빠르게 흘러 C사 근무 막바지에 다다랐다.
C사 퇴사 전날이었다. 나는 디자인 작업 파일을 한 폴더에 모아두고 있었다. 다음 기수에 뽑힐 인턴을 위해서였다. 사무실 짐을 이미 다 챙겨두어 따로 정리할 것은 없었다. 그때, 팀장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날라 왔다.
[잠깐 휴게실에서 이야기하실래요?]
나는 약간 민망하고 겸연쩍은 감정을 가지며 일어났다. 퇴사 전 의례 하는 그간 수고했단 인사말을 건넬 줄 알았고 나 역시 그간 감사했다는, 다소 뻔하지만 진심을 담은 말을 팀장님한테 전하고자 했다. 그러나 팀장님 입에서는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 튀어나왔다.
"죄송해요. 사실 제가 진우 씨 평가를 안 좋게 드렸어요."
내가 멍하게 있는 사이, 팀장님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다음 말을 꺼냈다.
“그것 때문에 떨어졌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