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사람에게는 특유의 냄새, 체취 있다. 아기 냄새, 남편의 스킨 냄새, 남편이 씻지 않았을 때 나는 냄새, 빨아도 빨아도 사라지지 않는 묵은 냄새, 세탁기 돌린 빨래들에서 나는 비누 냄새....
누군가를 좋아하게도 때로는 멀리하게도 만드는 냄새의 힘은 강력하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반지하 냄새”라는 모티브로 사회의 계급구조의 문제를 현실적이고 상징적으로 풀어냈다.
흔히들 아기들은 엄마의 냄새를 기억한다고 한다. 그게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고 안정감을 준다고들 한다. 모유 수유 중이라면 엄마의 젖냄새가 아기를 편안하게 한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이 곳은, 한국인을 포함해 많은 외국인들이 도우미 이모 (일명 헬퍼 또는 안티)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 한달에 80만원도 되지 않는 저렴한 비용 때문에 안쓰면 바보라는 소리도 듣기도 한다. 밥, 청소, 육아, 세탁 등등 안해주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퇴근해 아이와 산책을 하는 저녁 시간이면, 헬퍼 이모들이 아기를 품에 안고 리듬감 있게 걸으며 밤잠을 재우는 풍경을 보곤 한다. 우리 아이가 아기였을 때, 나도 종종 저렇게 아기를 품에 안고 아기가 잠들 때까지 동네 한바퀴를 수없이 돌곤 했었지 하며 추억이 돋는다. 동시에, 문득 문제의식이 들었다.
저 아기는 엄마보다 도우미이모의 체취를 기억하는 거 아니야? 불안할 때 이모를 찾고 없으면 잠 못드는 아이가 되는 것 아닐까?
그나마 동양 문화권의 엄마들은 이모에게 아기를 전적으로 맡기는 경향이 적지만, 우리와 근본적 육아 개념이 다른 서양인들의 경우 도우미이모와 아기의 밀접한 애착에 큰 문제를 느끼지 않는 듯 하다. 나보다 도우미 이모를 더 좋아하는 아기를 보고도 질투심도 안드는 것일까.
우리 나라에서도 일명 똑게육아 등과 같이 엄마의 시간과 자유를 우선시하는 서양식 육아방식에 근접한 다양한 방법론이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나 역시 처음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육아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다양한 방법론들을 공부했다. 나름 워킹맘에 진보적인 신세대 엄마라고 생각했던 나는 사실 꾀나 보수적였다. 나에겐 너무 자명했다. 아기가 엄마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시간은 고작 1-2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시기에 형성될 엄마와 아기의 애착, 엄마와 아기의 교감, 서로 기억하는 냄새, 나는 엄마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들을 스스로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런 저런 정당화하는 얘기들이 많다. 어린 시절 좀 울려도 괜찮다, 혼자 자는게 아기가 푹자고 결국 아기에게 좋다 등등. 아기가 아침에 깨어서 울어도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안되었으니 엄빠는 방문을 열지 않는단다. 아기가 울어도 잠들 때까지 혼자 내버려둔단다. 정말 아기를 위한 것인지 부모를 위한 것인지, 나는 정말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도 안다 내가 지나친 보수주의자이자 딸바보인 것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내 아기에게 내 땀 냄새, 잠옷에서 풀풀 나는 묵은 냄새 등등 마구마구 느끼게 해주고 싶다. 잠들기 전 아기와 함께 뒹굴뒹굴 거리고 싶다. 이런 엄마의 마음 누가 알까. 그 시간들이 나에겐 행복이었다. 우리 아기도 엄마와의 충분한 시간과 교감으로 사랑받아 행복했다고 믿는다. 그 덕분에 엄마의 긴 출장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끈덕진 애착으로 우리는 연결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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