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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Nov 24. 2020

나에게 베푸는 작고 확실한 사치

우리를 비옥하게 하는 풍부한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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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써본 사람이 제대로 쓴다. 나는 소심하고 절약이 몸이 밴 사람이라 멋있게 돈을 쓰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한턱 쏠 때도 모양을 내며 과감하게 질러야 하는데 늘 조심스럽고 오히려 눈치를 본다. 가성비를 따지다 보니 항상 저렴하면서 오래가는 물건을 산다. 옷이나 가방도 한 번 사면 유행을 타지 않는 것으로 사서 낡을 때까지 사용한다. 그러니 흔하디흔한 명품 가방 사본 적도 없고, 사실 뭐가 명품인지 브랜드조차 모른다. 백화점은 선물을 사기 위한 곳이지 내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다. 


이런 나의 취향은 엄마라는 역할을 가지며 극에 달했다. 회사에서 브랜드 옷을 선물 받아도, 값진 기념품을 받아도 늘 아이들의 몫이다. 왠지 내가 쓰기엔 아깝고 죄책감이 느껴진다. 나를 위해, 오직 나만을 위한 사치는 거의 없었고 익숙하지 않으니까. 


"창조성을 갈망하면서도 내면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지 않고 있는, 그래서 더욱더 궁핍해지는 사람들에게 작지만 확실한 사치는 큰 효과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확실한 사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팽창 속에서, 충분한 공급에 대한 확신 속에서 탄생하기 때문에 우리를 비옥하게 하는 풍부한 감성을 한껏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 《아티스트 웨이》 중에서


이 문장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작지만 확실한 사치", 나와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 얼마 전 인문학 강좌에서 강사가 물었다. 


"당장 여러분이 갖고 싶은 게 뭔가요? 뭘 사고 싶나요?"


비싼 아파트, 외제 자동차라고 옆 사람이 말하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은 뭔가를 보면 가지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는 설명을 하려 질문했다. 흠 난 뭘 사고 싶은 거지? 난 봐도 별로 갖고 싶은 게 없는데. 나에게 필요한 게 뭐지?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해줄까? 나에게 어떤 선물을 할까? 최근 내가 돈을 지불한 곳을 떠올려 보았다. 그렇다. 바로 그곳, 서점이다.


"저는 책이 지니는 가치를 시간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책을 살 때 우리는 돈이라는 재화를 지불하지만 그 책을 실제로 소비할 때, 그러니까 읽을 때는 시간이라는 재화를 지불하게 되죠." 

- 《창작과 비평 여름 2020》 중에서


나는 책에 작지만 확실한 사치를 부리는구나. 돈이라는 재화는 서점에서 지불하고 시간이라는 더 소중한 재화를 책에 투자하니까. 책을 사서 읽기도 하지만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기도 한다. 하루에 최소 30분 많게는 4시간 이상 독서를 하니, 독서가 가장 큰 사치다.


그렇게 따지면 두 번째로 "작지만 확실한 사치"는 산책이다. 내 삶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물론 물질적인 돈이 들지 않지만 역시 시간이라는 투자가 크다. 나에겐 돈보다 시간이 더 소중하지만, 건강을 위해 사치를 부린다. 의도적인 산책이든, 이동을 위한 걷기든, 내 삶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평소 누리는 것을 제외하고 내가 부리고 싶은 "작지만 확실한 사치"는 예쁜 카페에 가는 거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멋스러운 머그잔에 담긴 따뜻한 라떼의 향을 맡으며 한 입 머금고 싶다. 외국의 거리 카페면 더 좋겠지만 코로나 때문에 국내 카페로 바꾸어야겠지? 이왕이면 바다가 보이면 좋겠고 맞은 편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친구가 있으면 더욱더 좋겠다. 


올해 여름 휴가도 없이 일한 것을 뒤늦게 알았다. 작년 추석 때 제주도에 간 게 떠올랐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일 년에 서너 번은 제주에 오자고 약속했더랬다. 그리고 1년이 지났지만 모두 잊었다. 그래서 바로 날을 잡고 비행기와 호텔을 예약했다. 이번 주말에 무작정 제주도로 떠난다. 그때 카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겠다. 인증샷을 찍어 꼭 올리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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