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마를 처음 키우기 시작한 것은 2016년쯤으로 기억한다. 남편과 길을 가다가 우연히 어떤 상점 앞에 놓여 있는 화분을 보고는 남편과 나 모두 그 화분에 자석처럼 이끌려 화분 안에 있는 식물을 보며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다. 가게 상점 주인이 쳐다보는지 어떤지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식물에 정신을 팔려서 몇 분간이나 화분을 관찰했던 것 같다. 가느다란 나무 기둥 위에 연둣빛 색채의 잔 잎들이 동그란 솜사탕처럼 올라앉아있고 그 잎들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수형도 마치 조각상처럼 아름답게 잘 가꿔져 있었다.
와 이거 무슨 식물이지? 정말 예쁘다.
몇 달이 지났을까. 우리 가족은 주말이 되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식물 카페를 찾아갔다. 시 변두리에 위치한 그곳은 건물 한쪽은 식물원으로 잘 조성이 되어있고 건물 다른 한쪽은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과 식물원을 둘러보고 나서 카페에 들어갔는데 카페 한쪽 귀퉁이에서 식물을 판매한다는 푯말을 보았다. 어떤 식물들을 파는지 둘러보려고 다가가자 2~3 종류의 작은 식물화분 수 십 개가 카페 옆 마당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식물의 종류가 많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보는 즉시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우리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상점 앞에서 발견한 바로 그 식물이었다. 그 식물을 처음 보았을 때 남편과 나는 그 식물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생각은 못했지만 짧은 순간에도 마음속에는 뚜렷하게 간직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감동을 받거나 깊은 인상을 받는 순간은 시간의 절대적인 길이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식물의 이름을 살펴보니 "율마"였다. '아, 그 식물의 이름이 율마구나.'
그 제야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그 식물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식물을 발견하게 되어 너무 기뻤다. 남편과 나는 주저 없이 율마화분을 2개 사기로 했다. 화분은 아주 작았다. 바닥부터 잎 끝까지의 길이가 기껏해야 15cm 정도 되는 새끼 율마였다.
나와 율마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어떻게 키우는지도 모르고 잘 키울 자신도 없었으면서 식물의 모습에 매료되어 일단 사가지고 온 것이었다. 나는 원래 식물에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결혼 직후 시어머니가 주신(키우기가 그렇게 쉽다는) 산세베리아를 죽이고는 다시는 식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식물을 내 손으로 직접 사가지고 온 것이었다.
나는 이 율마들을 잘 키워보기로 결심하고 인터넷에서 생장 환경을 검색해 보았다. 햇빛이 잘 드는 베란다에 새끼 율마 화분 두 개를 가져다 놓고 일주일에 물을 두 번 주어가며 잘 살아있는지 그리고 잘 크고 있는지 자주 관찰했다. 율마를 처음 사온 당시 5살과 3살이었던 아이들도 율마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그렇게 1년을 키우자 율마가 꽤 많이 커서 분갈이를 해주었다.
율마를 키운 지 2년쯤 되던 해에 이사를 갔는데 이사한 집의 베란다가 꽤 넓었다. 2년 동안 율마를 잘 키운 자신감이 생기자 베란다를 식물로 채우고 집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주신 화분들을 몇 개 베란다에 놓았지만 가장 애착이 가는 식물은 단연코 율마였다. 율마는 이사 온 집에서도 햇빛을 받으며 아주 잘 컸고 나는 율마 화분을 늘리고 싶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율마의 삽목(일명 '꺾꽂이') 방법을 익혔다. 어미 율마의 목질화된 가지 부분을 잘라서 흙에 심거나 물에 넣어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여러 번 실패했지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꺾꽂이가 잘 되는 방법을 알아냈고 그 이후로는 꺾꽂이하는 것마다 모두 성공하여 뿌리를 내렸다. 뿌리내린 율마가 어느 정도 크면 큰 화분으로 옮기고 많이 큰 율마의 가지에서 또 꺾꽂이를 하여 새끼를 만들었다.
율마 화분은 점차 늘어났고 키운 지 오래된 처음 사온 율마의 키도 쑥쑥 컸다. 우리 집을 방문한 사람마다 율마를 보고 극찬했다. 율마는 키우고 삽목 하기가 어렵다는데 어쩜 이렇게 크게 그리고 많이 키워냈느냐는 것이다. 양가 부모님들도 우리 집 율마를 보시고는 너무 좋아하셔서 부모님들께 크게 자란 율마 화분을 여러 개 드렸다. 몇 개월 지나서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율마를 죽였다고 속상해하셔서 다시 갖다 드리기를 반복하고 형제들에게도 나눠주었다. 그렇게 부모님들과 형제들에게 나눠준 율마 화분만 10개는 족히 넘을 것 같다. 율마를 좋아하는 친구와 지인 이웃에게도 여러 개를 나눠주었다. 율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율마를 선물하는 것도 내게는 큰 기쁨이 되었다.
율마를 키운 지 어느덧 8년이 되었고 처음에 카페에서 사 온 15cm 정도 되었던 새끼 율마는 이제 내 키보다 더 크다. 양가 부모님들과 친구 지인들에게 나눠준 것을 제외하고도 지금 우리 집에는 큰 나무와 작은 나무를 합해서 20그루가 넘는 율마가 자라고 있다. 율마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강한 햇빛이 필요하지만 또한 율마는 햇빛을 받으면 그 어느 때 보다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 가족은 많은 추억을 쌓고 힐링을 받은 것 같다.
율마는 다른 식물과 마찬가지로 공기청정 기능이 강하고 피톤치드향을 내뿜어 방충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피톤치드향이 평소에는 나지 않다가 나무가 흔들리거나 이파리들을 문지르면 즉, 이파리들에 마찰이 가해지면 굉장히 강한 향을 낸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아이들에게 율마의 잎을 두 손으로 문지르면 피톤치드향을 맡을 수 있다고 알려준 적이 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이들이 베란다에서 식물을 관찰하며 놀다가 두 손을 볼록하게 맞잡고 내게 달려왔다.
"엄마, 율마 냄새 가지고 왔어요." 하면서 맞잡은 두 손을 내 코에 가져다 댄 후 두 손을 벌렸다. 아이들 손 안에서는 율마의 피톤치드의 향이 가득했다. 이미 알고 있는 냄새지만 순간이동으로 내가 숲으로 이동한 것 같은 착각이라도 들 정도로 신선하고 상큼한 피톤치드의 향이 코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율마의 냄새를 손으로 담아서 내게 가져온 아이들의 모습도 정말 순수하고 예뻤다. 율마가 싱그러운 피톤치드 향과 순수하고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 두 가지를 내게 선물로 준 것 같았다.
아이들은 자신들과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온 큰 율마 2그루를 각각 자신들의 율마라고 이름 붙였다. 율마에게 친구 대하듯 물을 주고 갈색으로 변한 잎도 떼어내 주고 율마가 커져서 새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줄 때도 나를 도와 참여하며 율마에게 애정을 보였다. 나는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과 율마가 자라는 모습을 함께 볼 수 있었다.
사진 설명: 왼쪽 사진은 2021년에 찍은 것으로 아이들도 초등학교 저학년이고 율마도 어렸다, 왼쪽 가운데쯤에 카페에서 최초로 사 온 큰 율마 2그루가 보인다. 오른쪽 사진은 2024년 현재 율마의 모습으로 3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많이 컸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기념이 될 만한 순간에 사진을 찍을 때도 우리 집 베란다는 포토 존 역할을 했고 사진의 배경은 단연코 율마였다. 초록색과 밝은 연두색이 어우러진 율마는 햇빛과 함께 만날 때 인물 사진을 돋보이게 해 주었다. 집에서 키우는 동물이 반려동물이 되듯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 반려식물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써 이해할 수 있었다.
고맙다 율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