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공화국』이 드러낸 미국 중심주의의 위험성
◼︎ 팔란티어 이슈 리뷰 순서 (링크) — 기술 안보 측면의 검토
1. 그들의 일하는 방식
2. 창립자의 관점, 『기술 공화국』 내용
3. 기술 패권주의 – 미국 중심주의
4. 알렉스 카프의 기술 패권주의
5. 피터 틸: 권력의 설계자이자 킹메이커
6. 한국의 기업 첨단 노하우는 안전한가?
7. 동행과 우려 (종합)
현대에 있어서 기술 발전은 이제 단순한 혁신의 대상을 넘어, 미국과 중국 간 지정학적 패권 경쟁의 핵심 전장으로 떠올랐다. 이 경쟁은 과거 미·소 냉전을 연상시키는 AI 군비 경쟁으로 격화되고 있으며, 인류의 지능을 뛰어넘는 초지능 개발이 그 궁극적인 목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미·중 간 기술 경쟁이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목표가 소비자 편의에서 지정학적 지배로 전환되는, 치밀하게 설계된 이념적 재무장의 서막이다.
이 AI 군비 경쟁의 최전선에는 엔비디아, 오픈AI, 그리고 일론 머스크의 그록과 같은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서 있다. 이들의 전략은 시장 논리를 넘어, 미국의 국가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명확한 이념적 좌표 위에 정렬되어 있다. 초지능 개발의 주도권이 미국 기업에 집중된 현상은, 이 경쟁이 특정 이념과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미국 중심 질서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신호다.
이 글의 주요 관심은 기술 혁신이라는 화려한 외피 속에 감춰진 미국 중심 패권 경쟁의 실체를 드리내는 것이다. 단순한 위협 분석을 넘어, 실리콘밸리를 재무장시키는 공식적 교리인 ‘기술 공화국’, 그 교리를 실행하는 방법론인 ‘기술적 동인도 회사’이자 패권적 기술 파트너인 팔란티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설계한 보이지 않는 건축가 피터 틸 네트워크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지정학적 현실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다.
: 미국 패권 유지를 위한 실리콘밸리의 재무장 독려
미국 기술 패권주의의 부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명확한 철학적 기반 위에서 추진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팔란티어 CEO 알렉산더 카프가 저술한 『기술 공화국』이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저서가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선언문이자,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기술 엘리트들에게 이념적 재무장을 요구하는 징집 명령서와 같다.
『기술 공화국』의 핵심 논리는 두 가지 개념의 상호작용으로 요약된다.
¹ 강성 권력(Hard Power)
: 21세기의 지정학적 지배력은 AI와 소프트웨어라는 결정적 기술 위에 구축된다는 주장이다. 기술적 리더십은 더 이상 경제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과 현대적 국력의 근간을 이루는 필수 인프라로 정의된다.
² 유연한 신념(Soft Belief)
: 프랑스 철학자 에르네스트 르낭의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국가를 지탱하는 문화적 결속력과 공동의 목적의식을 의미한다. 저자들은 실리콘밸리가 음식 배달 앱과 같은 “의미 없는 사소한 일”에 몰두하며 장난감 나라에 빠져 있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문화적 목표 상실, 즉 유연한 신념의 침식이 미국의 강성 권력을 직접적으로 약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유일한 질문은 누가 결정적인 기술을 먼저 개발할 것인가이지,
그것을 개발해야 하는지 여부가 아니다”
_ 오펜하이머, 핵무기 개발 책임자 _
“사람을 살상하는 데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면,
당신들이 살상의 대상이 될 것”
_ 알렉산더 C. 카프 _
이 책은 기술의 군사적 활용을 적극적으로 정당화한다. 저자는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인용하며, “유일한 질문은 누가 결정적인 기술을 먼저 개발할 것인가이지, 그것을 개발해야 하는지 여부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또한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를 향해 “사람을 살상하는 데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면, 당신들이 살상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대목은 ‘선동적’이라는 표현조차 부족할 만큼 급진적이다. 그것은 실리콘밸리의 기술적 불가지론자들을 향한 경고이자, 의미를 찾는 엔지니어들을 국가 안보 프로젝트로 끌어들이려는 정교한 철학적 인재 확보 전략이라고 하겠다.
참고) 기술적 불가지론자: 어떤 특정한 지식이나 사실, 특히 과학기술이나 인공지능 등 현대 기술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 이들은 기술 발전이 가져오는 결과나 영향에 대해 명확한 확신을 갖기 어렵다고 보고, 그 한계와 불확실성을 인정.
과학적 방법론을 중시하면서도, 기술 발전이 가져올 사회적·윤리적·실용적 영향에 대해 모든 것을 정확히 알 수 없으며, 과도하게 낙관하거나 비관하는 태도를 경계. 따라서 이들은 기술 발전을 무조건 수용하거나 거부하기보다 신중한 태도와 지속적 관찰,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개방성을 강조하는 특징을 보임.
결국 ‘기술 공화국’ 사상은 실리콘밸리의 전통적 모토였던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 정신의 종말을 선언한다. 대신 미국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술의 군사적, 공격적 사용도 불사해야 한다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제시한다. 이 사상은 동맹국에게조차 언제든 위협으로 변할 수 있는, 패권적 기술 파트너의 등장을 예고한다.
: 동맹국을 향한 위협, 팔란티어
‘기술 공화국’의 이념이 동맹국들에게 구체적인 경제적·안보적 위협으로 현실화되는 방식은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Palantir)의 사례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팔란티어는 이 새로운 패권주의의 방법론을 상징한다.
누군가는 팔란티어를 “이 시대의 동인도 회사”라고 정의했다. 과거 동인도 회사가 제국주의의 첨병으로서 식민지를 경제적으로 종속시켰듯, 팔란티어 역시 미국의 기술 패권을 확장하는 대리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경고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팔란티어의 사업 모델은 실제로 동맹국의 핵심 자산을 어떻게 위협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팔란티어의 피지컬 AI 전략은 특히 대한민국 제조업의 근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그들의 접근 방식은 재무, 생산, 공급망 등 각 부서 간의 소통 단절을 해결하는 “AI 소화제” 역할을 자처한다 (데이터의 수평적 연결).
그러나 그 과정의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위험이 자리하고 있다.
¹ 솔루션 제공:
팔란티어는 AI를 활용해 제조 공정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 솔루션을 제공한다.
² 데이터 흡수: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난 수십 년간 축적된 대한민국의 핵심 제조 노하우와 생산 데이터가 고스란히 팔란티어 플랫폼으로 흡수될 위험이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근간인 제조 노하우들을 팔란티어에게 다 털릴 수 있는 위협”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³ 패권적 영업:
팔란티어의 영업 방식은 단순한 비즈니스 협의가 아니다. 예컨대 삼성전자에 “우리 기술을 쓰지 않으면 경쟁사인 하이닉스로 가겠다”고 말하는 식의 접근은 협박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패권적이다.
결국 팔란티어로 대표되는 미국의 기술 기업들은 동맹국의 핵심 산업 데이터를 장악함으로써 경제적 종속을 심화시킬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협력이 아니라, 데이터 주권을 침해하고 산업 경쟁력의 근간을 흔드는 명백한 위협이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의 배후에는 이 거대한 설계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보이지 않는 설계가가 존재한다.
: 기술 엘리트주의와 정치의 결탁
미국의 기술 패권주의는 알렉산더 카프 개인이나 팔란티어라는 기업을 넘어, 페이팔 마피아의 수장 피터 틸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네트워크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그는 이 거대한 이념적 전환을 기획하고 자금을 지원하며, 미국의 기술 및 정치 생태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이지 않는 설계자다.
피터 틸의 네트워크는 ‘기술 공화국’의 이념을 현실로 구현하는 유기체처럼 작동한다.
¹ 정치적 영향력 —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부통령 후보 JD 밴스의 핵심 후원자이자, 백악관 보좌관 데이빗 삭스와의 오랜 관계를 통해 정책 결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² 기술 생태계 장악 — 그는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로서 일론 머스크(스페이스X)의 초기 투자자였으며, 세계 최대 군수 유니콘 앤듀릴(Anduril)의 핵심 투자자이기도 하다. 주목할 점은, 팔란티어의 AI가 두뇌 역할을 한다면, 앤듀릴의 드론은 그 지능을 실행하는 행동 대장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틸의 네트워크가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모두 갖춘 완결된 군산 복합체임을 보여준다.
³ 이념적 배경 — 그는 수십 년 전부터 “실리콘밸리의 혁신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마가(MAGA)’ 사상을 설파해 왔다. 이는 트럼프 개인의 구호가 아니라, 미국 기술 엘리트층에 내재된 오랜 이념이다. 틸은 미국의 ‘유연한 신념’이 붕괴하는 것을 막고, 기술에 새로운 국가주의적 목적을 부여하려는 시도를 오래전부터 이어왔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야 한다”
_ 피터 틸 _
기술 엘리트와 정치권의 결탁은 미국의 패권 전략을 더욱 잔인하고 공격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냉전 붕괴 이후 잠시 감춰졌던 미국의 본래 모습으로의 회귀다. 세계는 이제 고립주의적이며 공격적인 패권 국가로서의 미국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이렇게 강력하고 조직적인 미국 중심주의 앞에서, 개별 국가는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참고) 피터 틸 네트워크: 실리콘밸리 투자자이자 기업가인 피터 틸이 구축한 혁신 기업 및 투자 생태계를 의미. 그는 페이팔을 공동창업하고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페이스북, 스페이스X, 링크드인, 에어비앤비, 스포티파이 등 AI, 빅데이터, 우주항공, 핀테크, 바이오테크 등 다양한 첨단 산업 분야에서 성공적인 초기 투자와 지속적 지원을 하며 독점적 지위를 가진 혁신기업 네트워크를 형성.
‘기술 공화국’의 이념, ‘패권적 기술 파트너’의 방법론, 그리고 '피터 틸 네트워크의 지휘'는 미국 중심의 AI 군비 경쟁이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적인 프로젝트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 위험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¹ 군비 경쟁의 격화
: 초지능 개발 경쟁은 미·중 신냉전을 넘어, 전 세계적인 안보 불안을 증폭시키는 기술적 군비 경쟁을 촉발한다.
² 동맹국의 데이터 주권 침해
: 팔란티어와 같은 기업들은 동맹국의 핵심 산업 데이터를 장악해 경제적 종속을 강요하는 ‘데이터 식민주의’를 실행할 수 있다.
³ 윤리 없는 기술 엘리트주의 확산
: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기술의 군사적, 공격적 사용을 정당화하는 이념이 실리콘밸리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무지성 모드’와 같은 패권적 질주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안심할 수 없는 새로운 국제 질서가 도래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러한 거대한 위협 속에서 기술적 주권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가 되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K-팔란티어’와 같은 자체 기술 주권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는 단순히 특정 기술을 개발하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핵심 자산인 데이터와 산업 노하우를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다. 미국의 질주 속에서 우리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기술적 종속을 거부하고, 우리만의 역량을 꾸준히 키워나가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 산업계, 과학기술계, 학계 등이 협업하여 총체적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기술자립을 넘어, 국가 안보의 핵심 요건이기 때문이다.
Fin.
표지이미지 출처: 인더스트리뉴스 재인용
[참고] 통찰력 있는 블로그 글이 있어 함께 읽어보면 도움이 될 듯 하여 소개드린다.
- 팔란티어 분석: 비판적 시각과 균형, simula, 2025.9.20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