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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I 이슈들

[팔란티어] 4. 알렉스 카프의 기술 패권주의

MAGA 의제의 기술적 합리화와 실현

by KEN

◼︎ 팔란티어 이슈 리뷰 순서 (링크) — 기술 안보 측면의 검토

1. 그들의 일하는 방식
2. 창립자의 관점, 『기술 공화국』 내용
3. 기술 패권주의 – 미국 중심주의
4. 알렉스 카프의 기술 패권주의
5. 피터 틸: 권력의 설계자이자 킹메이커
6. 한국의 기업 첨단 노하우는 안전한가?
7. 동행과 우려 (종합)


알렉스 카프의 기술 패권주의: MAGA 의제의 기술적 합리화와 실현


팔란티어의 CEO 알렉스 카프는 현대 기술과 정치 담론에서 가장 역설적인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적 사회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지식인이면서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논쟁적인 감시 기술 기업을 이끌고 있다. 그의 저서 《기술 공화국》에서 제시된 기술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비전은 단순한 기업 경영 철학을 넘어, 도널드 트럼프의 MAGA 운동과 같은 포퓰리즘적 흐름과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알렉스 카프의 사상은 단순한 기업 철학이 아니라, 미국과 서구의 지정학적 쇠퇴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담은 정치적 독트린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비전은 서구의 기술력이 국가 안보와 국익에 봉사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에 기반하며, 이는 트럼프 시대에 고조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서와 깊은 전략적 공명을 일으킨다.


카프 철학의 출발점은 실리콘밸리의 이념적 회피와 ‘지적 나약함’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구글과 같은 대형 기술 기업들이 상업적 이익과 클릭 수에 몰두한 나머지, 미국의 기술적 우위를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팔란티어는 국방부(DOD)나 이민세관단속국(ICE)과의 협력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봉사하는 기술 기업’이라는 명분 아래 확고하고 당당한 태도를 유지한다. 카프에게 기술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국가적 목적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할 전략적 자산인 것이다.


정부를 회피하는 전통적 리버테리어니즘과 달리, 카프는 국가 기관과 기술 기업 간의 적극적인 공생 관계를 옹호한다. 그는 기술 기업이 국가의 안보와 복지를 지원할 의무를 지닌다고 믿으며, 이러한 신애국주의적 관점은 팔란티어의 사업 모델과 정확히 부합한다. 주목할 점은, 카프가 자신의 독특한 자유주의적 배경—민권 운동가 부모와 비판 이론 박사 학위—을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팔란티어의 국가 권력 봉사를 우파적 프로젝트가 아닌, ‘서구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비당파적이고 윤리적인 의무’로 포장하는 정치적 변장으로 기능한다. 그 결과 그는 비판을 중화시키는 동시에, 회사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확장하여 더 폭넓은 프로젝트 확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카프는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적대국들이 서구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서구가 AI 역량을 발전시키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군축하는 것은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가 미국이 적들에게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MAGA의 ‘힘을 통한 평화’ 수사와 구조적으로 완벽한 동형성을 이룬다. 또한 그는 진정한 미국인들은 국가를 해치려는 세력에게 반드시 대가가 따를 것이라는 확신을 원한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MAGA의 반(反)엘리트적 문화 전쟁 담론에 기술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낳는다.


알렉스 카프의 개인적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그의 기술 패권주의 독트린은 MAGA의 핵심 정치 목표와 뚜렷한 구조적 동형성을 보인다. 이는 이념적 일치라기보다, 동일한 방향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운영적 수렴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카프의 철학과 MAGA의 수사는 다음 세 가지 핵심 영역에서 뚜렷한 전략적 공명을 일으킨다.


¹ 반세계주의 (Anti-Globalism)

MAGA 운동의 핵심은 세계화가 미국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인식에 기반한 경제적·정치적 반세계주의에 있다. 카프의 철학은 이러한 기조를 기술 영역으로 완벽하게 확장한다. 그는 글로벌 통합보다 단일하고 자급자족적인 국가 경로를 지향하며, 기술 패권을 통해 미국의 우위를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MAGA의 반세계주의 의제를 기술적으로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² 반엘리트주의 (Anti-Elitism)

카프는 트럼프 현상이 실리콘밸리의 과도한 특권의식과 사회로부터의 괴리감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한다. 이는 워싱턴과 월스트리트의 기득권층을 비판하는 MAGA의 포퓰리즘적 서사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그는 기술 엘리트 내부에서 기득권을 비판함으로써, MAGA의 반엘리트주의가 기술 산업 내에서도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일종의 ‘허가 구조’를 형성했다.


³ 국가 권력 강화 (Strengthening State Power)

카프가 주장하는 ‘국가에 대한 기술 기업의 봉사 의무’는 MAGA 행정부의 요구와 운영적으로 완벽히 일치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경 단속 강화, 국방력 극대화, 감시 인프라 확충을 추진할 때, 카프의 팔란티어는 이를 기술적으로 실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최적의 파트너였다. 기술을 통한 국가 권력의 중앙집중화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양자의 이해관계는 자연스럽게 하나로 수렴했다.


결론적으로, 알렉스 카프는 MAGA 운동의 감성적·문화적 기반(예: 반이민 정서)을 직접 제공한 인물은 아니다. 대신 그는 미국의 쇠퇴를 지정학적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술을 통한 국가 권력의 강화’를 제시했다. 이러한 주장은 MAGA의 목표 달성을 위한 냉철한 도구적 합리성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의제를 기술 시대에 맞게 재정의하고 합리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만약 카프가 MAGA 의제의 기술적 합리화를 담당했다면, 그 이념의 더 깊은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팔란티어의 또 다른 핵심 인물, 피터 틸에게로 이끈다.



MAGA의 진정한 이념적 설계자, 피터 틸

알렉스 카프와 피터 틸의 이념적 차이를 분석하는 일은 팔란티어의 정치적 전략과 MAGA와의 관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핵심 열쇠다. 카프만을 중심으로 한 분석은, 팔란티어라는 복합적 정치 행위자의 절반만을 조명하는 데 그친다.


카프가 자신을 진보주의자로 묘사하고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과 달리, 팔란티어의 공동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인 피터 틸은 MAGA 운동의 명시적 이념 설계자이자 주요 자금 제공자였다. 그는 트럼프의 초기 지지자였을 뿐 아니라, J.D. 밴스와 같은 핵심 MAGA 정치인들을 후원하며 그 운동의 방향성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틸 사상의 급진성은 2009년 그가 남긴 선언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더 이상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이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의견을 넘어, 다크 계몽주의 운동의 분수령이 된 근본적인 반민주주의 사상을 내포한다. 틸은 대중 민주주의가 자유 시장과 기술 혁신을 방해한다고 보며, 이는 민주적 책임성을 경시하는 기술관료주의적 통치를 지향함을 의미한다. 만약 MAGA의 철학적 기반에 국가 권력의 합법적 초월이라는 급진성이 존재한다면, 그 뿌리는 카프보다 틸의 반민주적 이념에서 훨씬 더 직접적으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카프와 틸의 상이한 정치적 정체성은 단순한 위험 분산 전략을 넘어, 이른바 ‘권위주의적 스택’이라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테크노-정치적 권력 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정교한 이중 전략으로 기능한다.


결론적으로, 피터 틸은 MAGA의 급진적 이념적 기반을 설계하고, 알렉스 카프는 그 이념을 정당화하고 현실화하는 기술적 인터페이스를 구축했다. 이 이념적 프레임워크는 팔란티어의 운영 논리와 MAGA 행정부의 핵심 정책 목표가 융합되면서, 가장 강력한 형태로 구체화되었다.



철학적·이념적 논쟁을 넘어, 팔란티어의 구체적 운영 현실을 분석하는 일은 카프 철학의 실체를 검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팔란티어의 기술은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논쟁적인 정책들을 추상적 구호에서 물리적 현실로 전환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의제였던 강경한 이민 단속과 추방 정책은 팔란티어의 기술 없이는 지금과 같은 규모와 속도로 실행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팔란티어가 ICE(이민세관단속국)에 제공한 FALCON(통합 인텔리전스 AI 플랫폼)과 ICM(수사 데이터 통합 및 관리 플랫폼)은 광범위한 감시 네트워크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통합·분석하여 특정 개인을 식별하고 추적하는 데 활용되었다. ICE는 이 기술을 기반으로 대규모 직장 단속을 효율적으로 계획·실행했으며, 2019년 미시시피 대규모 단속 사건은 수많은 이민자 가족의 분리와 추방을 초래하며, 팔란티어 기술이 정책 집행을 어떻게 가속화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 팔란티어는 국방부(DOD)와의 계약을 대폭 확장하며 월스트리트에서 이른바 ‘트럼프 트레이드’ 현상을 일으켰다. 특히 구글이 윤리적 이유로 포기한 펜타곤의 AI 기반 표적 탐지 프로젝트 ‘프로젝트 메이븐(Project Maven)’을 인수한 것은, 팔란티어가 군사 기술 영역에서 차지한 핵심적 위치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나아가 미군과 체결한 100억 달러 규모의 통합 계약은 75개의 개별 조달 계약을 하나의 패키지로 통합한 전례 없는 사례로, 표적 결정과 부대 이동 등 핵심 군사 기능이 민간 기업으로 전략적으로 이전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곧, 권위주의적 스택이 실제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 기간 동안, 팔란티어가 여러 연방 기관의 데이터를 통합해 미국 시민을 대상으로 한 초대형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MAGA 지지층 내부에 균열이 생겼다. 팔란티어는 이를 강력히 부인했지만, 일부 MAGA 지지자들은 이 계획을 경찰국가나 중국식 사회신용시스템에 비유하며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했다. 이 사건은 MAGA 운동 내부에 잠재해 있던 개인 자유를 옹호하는 포퓰리즘적 반정부 정서와, 기술 관료주의를 통해 국가 권력을 극대화하려는 목표 사이의 근본적 긴장을 노출시켰다. 이는 곧, MAGA–기술 패권주의 동맹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종합하면, 알렉스 카프는 MAGA의 철학적 기반이라기보다는 그 의제의 성공을 가능케 한 기술적 정당성과 운영적 수단을 제공한 핵심 조력자였음이 분명하다. 그는 피터 틸이 설계한 급진적 이념을 ‘비당파적 국가 봉사’라는 수사로 포장하고, 이를 현실에서 실행 가능한 형태로 구현한 전략적 매개자로 기능했다. 반면, 민주주의를 희생해서라도 권력 집중을 추구하는 급진적 사상이라는 MAGA의 근본 이념은 그 설계자인 피터 틸의 반민주적 철학에서 직접적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카프 철학이 내포한 가장 심각한 장기적 위험은, 그것이 품고 있는 테크노-정치적 권위주의의 그림자이다. 그는 기술의 윤리적 문제를 ‘지적 나약함’으로 치부하고, 국가 권력의 강화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이러한 태도는 기술이 민주적 통제를 벗어나 그 자체로 권력의 자율적 도구로 변질될 위험한 경로를 열어 놓는다.


팔란티어와 같은 기술 인프라는 특정 정권의 의도와 무관하게, 일단 구축되면 강력한 데이터 기반 통제 장치로 남는다. 피터 틸이 설계하고 카프가 구현한 이른바 권위주의적 스택은 이제 정치 지형의 영구적 구조로 자리 잡았으며, 이는 미래에 등장할 어떤 형태의 권위주의적 운동에도 즉각 활용될 수 있는 위험한 유산을 남겼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음 회에서는 팔란티어의 핵심 운영 철학과 더불어 MAGA 진영의 근본 이념을 설계한 피터 틸의 사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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