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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비 Jan 23. 2019

피니시-무의식 속의 혐오

존 에이커프의 피니시를 읽고 주체적인 사유의 기록(6)

마무리의 아름다움

 이 글은 존 에이커프의 FINISH에 담긴 통찰과 나의 경험과 생각을 담았다. 이 글이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나 완벽주의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작은 영감이 되기를 바란다. 더 많은 사람이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하고자 하는 일을 시도하며 주체적인 삶에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이번 주제에 대한 글의 제목에는 '혐오'라는 단어를 꼭 넣고 싶었다. 왜일까? 혐오는 '싫어하고 미워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번 글은 '목표 달성을 어렵게 만드는 그릇된 믿음'에 관한 것이다. 무의식 속의 그릇된 믿음은 혐오를 불러온다. 그 대상은 자기 자신이 될 수도, 타인이 될 수도 있다. 혹은 불특정 다수가 될 수도 있다. 왜 우리는 무의식 속에 그릇된 믿음을 가지게 될까? 왜 우리는 그릇된 믿음으로 무언가를 혐오하게 될까?


우리도 자기보다 몸집이 큰 새끼 뻐꾸기를 물어다 키우는 어미새처럼

'비밀 원칙'이 나의 새끼인 것처럼 정성스레 돌보고 있는 건 아닐까?

 피니시의 저자 존 에이커프는 '놀랍게도 우리들 대부분은 이미 우리의 인생에 뻐꾸기처럼 가장하고 숨어 있는 '비밀 원칙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라고 말한다.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이기적인 생존 방식을 가지고 있다. 뻐꾸기는 둥지 주인의 알보다 빨리 부화하여 알을 깨뜨리거나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비밀 원칙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뻐꾸기와 비슷한 짓을 하고 있다. 개개인의 '자기다움'을 밀어내고 자신이 그 사람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며 혐오하게 하고 있다. 우리도 자기보다 몸집이 큰 새끼 뻐꾸기를 먹이를 물어다 키우는 어미새처럼 '비밀 원칙'이 나의 새끼인 것처럼 정성스레 돌보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만 해! 한 사람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독단적인 거고 나쁜 거야.'라는 비밀 원칙을 최근에 마주했다. 이 비밀 원칙은 주도적인 특성을 가진 나를 자꾸만 혐오하게 했다. 내 삶의 활력을 빼앗아가고 무기력하게 했다. 주도적인 모습을 보이는 나를 보며 '그건 나쁜 거야!'라고 다그쳤다. 그렇게 나를 속박하다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주도적인 건 나쁜 게 아니야. 나의 강점이고 존중받아야 할 나의 특성이야.'라고 최근에 인식했다. 주도성에 대한 비밀 원칙과 혐오는 팀과 공동체의 실패에 대한 비판적인 자아성찰에서 시작됐다. 그 실패의 원인을 나에게 찾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성향과 특성을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나쁜 거라고... 바꾸라고 바뀌라고 나를 억압하고 혐오하며 강요했다.


 또 나는 부모님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이웃, 친척, 부모님의 친구 등 타인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오지랖이 넓다. 타인의 일에 대해 내 일처럼 고민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그런데 제주에서의 공동체에서 한 친구가 나의 '요청하지 않은 도움'이 불편하다고 이야기했다. 또다시 비판적인 자아성찰로 '요청하지 않은 도움을 주는 것은 나쁜 거야! 그 사람을 존중해야지!'라는 비밀 원칙을 나도 모르게 만들었다. 오지랖 넓게 타인의 일을 고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혐오감이 들었다. 나쁜 짓을 하고 있는 내가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결국 이것도 비밀 원칙임을 인식했다. 물론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는 나의 특성은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분명히 나의 성향과 특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방법이 잘못된 거지 개인의 특성과 성향이 나쁜 게 아니다.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나의 장점이고 타인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다. 혐오할 특성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모습이다.


 비밀 원칙은 뻐꾸기가 알을 밀어내고 떨어뜨리는 것처럼 나를 혐오하고 파괴하게 한다. 그것은 사람을 불행하게 하고 삶의 의미를 잃게 한다. 뿐만 아니라 존 에이커프는 이와 같은 비밀 원칙이 목표 달성을 어렵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삶에 숨어있는 '성공은 죄악이다.'라는 비밀 원칙을 소개한다. 성공을 꿈꾸지만 무의식적으로 성공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비즈니스를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경제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며 성공하는 것은 나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과연 그것은 나쁜 것일까? 대학의 창업 교육에서 한 소셜벤처의 대표는 '사회적 기업을 하고 싶은 건지? 유니콘 규모의 스타트업을 만들고 싶은 건지?' 명확하게 정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사회적으로 비난받을만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면 혁신적인 서비스로 돈을 버는 스타트업이 나쁠 이유는 없다. 그들이 돈을 버는 게 나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 기업을 혐오하고 있었다. 내가 목표로 세운 일이 단순히 돈을 버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분명히 그 일을 혐오할 것이다. 분명히 포기할 것이다.


 비밀 원칙은 이와 같이 목표 달성의 의미를 없애기도, 내가 취약하고 재미없는 방법으로 목표 달성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이내 포기하게 한다. 그렇다면 이 비밀 원칙은 왜 생기고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무의식 속의 비밀 원칙은 어릴 적의 부모의 말 한마디에,
티브이 속의 광고에서,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성공 경험에서,
실패 경험에서 등 작은 자극에도 생겨날 수 있다.

 무의식 속의 비밀 원칙은 어릴 적의 부모의 말 한마디에, 티비 속의 광고에서,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성공 경험에서, 실패 경험에서 등 작은 자극에도 생겨날 수 있다. 어떠한 가치 판단이 담긴 메시지를 우리도 모르게 합리적인 의심 없이 수용할 때 비밀 원칙이 생겨나는 건 아닐까? 이러한 비밀 원칙들에 WHY?를 물으며 생각을 이어나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모순점을 찾아낼 수 있다. 물론 당사자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건 어렵다.


 한 가지 예로 코카콜라와 펩시를 생각해볼 수 있다. '펩시충'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펩시충'은 코카콜라가 아닌 펩시 콜라를 마시는 사람을 혐오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왜 펩시 콜라를 마시는 사람을 혐오할까? 그 모습을 보며 불편함을 느낄까? 그것은 미디어의 영향이라 생각한다. 코카콜라와 펩시는 오랜 기간 서로에 대한 노이즈 마케팅을 이어 왔다. 보고 있으면 어이없고 피식하게 되는 광고들이 많이 있다. 결국에 이 둘은 취향과 선호도의 차이일 뿐인데 왜 사용자들이 서로를 혐오하는 지경이 되었을까?


 이것은 광고의 미묘한 메시지를 우리가 그냥 받아들인 건 아닐까? '무슨 콜라가 더 맛있다.', '콜라라면 탄산이 가득해야지!' 등 광고에는 광고주가 소비자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들어있다. 결국 그 메시지를 소비자의 마음 깊이 심는 것이 광고의 목적이다.


 광고 말고 다른 예로 이야기해보자. 드라마 속에 자주 등장하는 프레임들이 있다. 한 가지 이야기해보자면, '도깨비', '나의 아저씨'에서 살펴볼 수 있는 '나이 많은 멋진 남자와 어리고 예쁜 여자의 사랑'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멋진 남자는 어리고 예쁜 여자와 사랑하고 결혼한다.', '남자는 성공하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여자는 어리고 예뻐야 한다.' 등의 비밀 원칙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이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 원칙이다. 분명 이 믿음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의문은 존재한다. 다양한 프레임을 가진 콘텐츠들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그러한 비밀 원칙이 심어진 건지? 아니면 사람들이 그런 비밀 원칙을 가지고 있다 보니 그 프레임의 콘텐츠가 흥행하고 자주 등장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학창 시절 나는 '좋은 대학 나오면 성공한다.', '대학에 따라서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그냥 받아들이고 살았다. 성공이란 무엇인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성이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인지? 결혼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다 보니 이것이 비밀 원칙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위에서 말한 것들이 좋다, 나쁘다는 가치 판단이 아님을 확실히 밝히고 싶다. 사람마다 생각과 가치관이 분명히 다르다. 개인들에 생각 속에 저마다의 가치 있는 보석이 있다고 믿는다. 단지 생각 속의 의미를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로 내가 믿고 추구하는 것인지? 내가 가진 성향인지? 아니면 뻐꾸기 같은 비밀 원칙은 아닌지? 내 안의 가치 있는 보석들을 가리고 있진 않은지? 무언가를 혐오하고 있다면 혐오의 실제는 무엇인지? 그 믿음이 우리들의 삶에 걸림돌은 아닌지? 말이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릇된 믿음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주체적인 삶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목표 달성이 방해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니 발견한 나의 비밀 원칙이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 피니시에서는 네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____을 좋아하긴 하던가?", "나의 진짜 목표가 뭐지?", "지금 이 방법이 나에게 맞는 방법인가?", "지금이 포기할 때인가?" 혹시 비밀 원칙 때문에 미루어두고 포기한 일이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 글 : 성과의 빙산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이터



 우리 모두가 완벽주의를 넘어 목표 달성에 다가가길 바라며.

 각각의 성취 경험들이 모여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0. 프롤로그 - 무슨 글을 어떻게 왜 쓰지?

 1. 그건 다 완벽주의 때문이야.

 2. 절반으로 줄여라.

 3. 모두 다 할 수는 없어

 4. 즐겨라! 그거면 된다.

 5. 몰입이 깨지는 순간 찾아오는 방해꾼

 6. 무의식 속의 혐오

 7. 성과의 빙산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이터

 8. 마무리의 아름다움


참조.

1. FINISH(피니시), 존 에이커프, 다산북스, 2017

2. 표준국어대사전, 네이버 '혐오' 검색

3. unsplash.com, 사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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