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에이커프의 피니시를 읽고 주체적인 사유의 기록(7)
이 글은 존 에이커프의 FINISH에 담긴 통찰과 나의 경험과 생각을 담았다. 이 글이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나 완벽주의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작은 영감이 되기를 바란다. 더 많은 사람이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하고자 하는 일을 시도하며 주체적인 삶에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피니시에서는 '성과는 아주 조용하게 찾아온다. 속삭임처럼 말이다. 완벽주의는 실패를 큰소리로 떠벌리고 성과는 드러나지 않게 감춘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이루어낸 성과를 빙산의 일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목표 달성 과정에서 치명적이다. 분명 목표 달성에 가까워지는 성과가 있는데 이를 모르고 포기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선다. 성과가 적거나 없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과를 온전히 인식할 수 있을까?
우리는 빙산처럼 성과의 많은 부분을 인식하지 못한다.
성과를 빙산에 빗대어 생각해보자. 빙산은 부력의 원리에 따라 전체의 약 10프로만 물 위로 뜨고 나머지 90프로는 가라앉는다. 이는 빙산 부피의 90프로와 같은 부피의 바닷물의 무게가 같기 때문이다. 사람은 목표 달성 과정에서 이루는 성과를 온전히 인식하지 못한다. 마치 빙산의 가라앉은 부분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빙산의 밀도가 충분히 작아지면 빙산은 뗏목처럼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다. 반대로 빙산이 잠겨있는 바닷물의 밀도가 커져도 같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여기서 사람에 빗대어 수면 위를 인식할 수 있는 영역, 수면 아래를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으로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빙산이 수면 위로 모두 올라온다는 것은 우리가 성과를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빙산의 밀도가 작아지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성과의 밀도를 작게 만드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밀도=무게/부피'이다. 물리적으로 무게란 지구의 만유인력인 중력이 그 물건을 당기는 힘이다. 사람의 중력은 욕망이고 욕망에 의해 생기는 무거운 정도는 '성과에 대한 기대치'이다. 또 부피는 넓이와 높이를 가져서 무엇이 차지하거나 가질 수 있는 크기를 의미한다. 여기서 부피는 달성한 성과의 총량이다. 즉, 성과의 밀도는 '성과에 대한 기대치/달성한 성과의 총량'인 불만족도로 생각할 수 있다. 성과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 우리는 더 많은 성과를 인식할 수 있다. (성과의 총량은 개인의 역량, 능력, 환경 등에 따라 개인차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성과의 총량을 늘리는 것은 나중에 더 논해보도록 하자.)
다음으로 바닷물의 밀도가 커지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의 무게와 부피는 무엇을 의미할까? 바닷물의 무게는 물에 잠긴 빙산의 무게와 같다. 따라서 바닷물의 무게는 '내가 인식하지 못한 성과에 대한 기대치'와 같다. 여기서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이란 나에게 너무 당연하거나 익숙해서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거나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영역이다. 또 바닷물의 부피는 '인식하지 못한 성과의 총량'이다. 종합해보면 바닷물의 밀도는 '평범하거나 새로운 성과에 대한 기대치/인식하지 못한 성과의 총량'으로서 성과에 대한 가치부여의 정도이다. 따라서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는 성과에 가치를 부여하면 빙산은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성과의 많은 부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빙산에 비유해서 알아봤다. 또 부력에 대하여 생각해보며 더 많은 성과를 인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성과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것',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는 성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의 두 가지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대치를 낮추고 나에게 특별하지 않은 성과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존 에이커프는 '데이터는 모든 방해물과 과장, 무기력함, 또는 지금 당신의 앞을 가로막고 선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가로질러 당신에게 온다.'라고 한다. 맞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온전히 기록했다면 속임수는 없다.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허황된 기대치를 줄이고 특별함을 잊은 성과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는 데이터의 필요성을 촛불의 감쇠 효과로 설명한다.
창문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두운 방 안에서 초에 불을 붙이면 효과는 극적일 수밖에 없다. 완전한 암흑 속에서 밝힌 빛은 거대한 성과다. 극명한 차이를 곧바로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초에 불을 붙여도 역시 커다란 효과를 확인할 수 있지만 첫 번째 초만큼의 효과는 아니다. 세 번째 촛불은 방 안의 명도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감쇠 효과는 새 촛불의 영향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지속된다.
사람들이 목표를 추구하는 목적은 복합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함이지, 취할 수 있는 이익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게 아니다. 우리는 매번 성취를 거둘 때마다 성과가 개선되고 극적인 순간을 경험하길 원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성과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감쇠 효과는
'익숙함'과 '복합성'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닐까?
우리가 성과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감쇠 효과는 '익숙함'과 '복합성'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닐까?
촛불을 처음 켜면 우리의 눈은 갑작스러운 빛에 반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빛에 적응하게 된다. 감각이 자극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목표 달성 과정도 마찬가지다. 성과는 조용히 꾸준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꾸준한 성과에 익숙해져 더 이상 그것을 특별한 성과로 인식하지 못한다. 더욱 자극적인 성취감과 극적인 성과를 바라며 기대치를 계속해서 높인다.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첫날, 나는 하루 운동으로 300g이 빠진 것을 보고 큰 성취감을 느꼈다. 이대로 한 달만 지속하면 9kg을 감량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무적으로 느껴진다. 한 달 후, 나의 몸무게는 8kg 정도 줄어 있었다. 하지만 하루 300g의 감량은 더 이상 나에게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니었다. 성취감은커녕 고작 300g 줄었다는 것에 패배감이 몰려온다. 꾸준하게 줄어들고 있는 나의 성과에게 왜 J커브의 극적인 곡선으로 변화하지 않냐고 나무하게 된다. 익숙함으로 더 높은 기대치를 가져버린 나에게 '이것은 성과야. 너는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은 '몸무게'였다. 더 이상 300g의 변화는 나의 '감정'을 움직이지 못했지만 목표 달성의 '사실'을 여전히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또한 우리의 목표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충족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목표 달성의 과정은 단순하고 한 가지 요인을 충족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이를 간과하고 극적으로 목표에 다가가기를 바란다. 성과가 갑자기 개선되기를 바라고, 극적인 순간을 경험하고자 한다. 물론 극적인 변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여러 가지 목표 달성의 과정이 결합되어 시너지를 만들어낸 경우에 만들어진다.
위의 다이어트 예시도 이런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 사실 목표 달성의 과정이 변화 없이 똑같다면 우리의 몸은 적응하여 운동의 효과가 계속 떨어진다. 한 달에 8kg의 감량을 한 것은 사실 극적인 변화이다. 이 성과를 위해서 나는 식습관을 조절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신체와 운동에 대한 학습을 하며 내 몸에 적용해보는 등 다양하고 다각적인 목표들을 달성했다. 만약 '운동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기'라는 한 가지 목표만 추구했다면 아마도 익숙함으로 더 이상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는 성과조차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매일 운동을 하는 목표만을 가지고 있을 때에 운동을 열심히 한 다음날은 몸무게가 늘어있고, 운동도 하지 않고 전날 폭식과 폭음을 한 다음날은 몸무게가 줄어있는 황당한 상황을 많이 겪었다. 데이터는 목표 달성 과정이 가진 이와 같은 오류를 발견할 수 있는 힌트를 준다. 내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보다 복잡하다고 알려준다. 어떻게 하면 복합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한다.
그런데 데이터는 사실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목표 달성을 하지 못한 무능하고 게으른 나를 도망가지도 못하게 묶어두고 비난하는 것 같기도, 지금까지의 노력이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느낌을 주기도, 초라한 성적표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한다. 특히 다른 사람이 데이터를 가지고 '펙트 폭행' 할 때면 인정할 수밖에 없어 억울하고 화가 나고 답답해진다. 왜냐면 사실이니까. 나는 많은 날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나의 노력이 아무런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고 데이터가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어느 순간 데이터를 외면하고 기피하게 된다.
데이터를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서 우리는 '사실'과 '감정'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MIT 경영 대학원의 에드가 샤인 명예 교수에 따르면 신경시스템에서는 데이터 처리와 감정처리, 의미 만들기, 실행 시스템이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각 단계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거기에 맞게 반응하여 필요한 인식능력을 동원할 수 있다고 한다. ORID 집중 대화 기법(이하 ORID, Objective, Reflective, Interpretive, Decisional의 줄임)은 이와 같은 통찰을 담은 대화 기법이다. 사실, 감정, 해석, 실행의 단위를 나누어 이야기하지 않으면 사람은 지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기 쉽지 않다. 데이터를 바라볼 때 우리는 감정과 구분해야 한다. 데이터는 목표 달성 과정의 흔적이고 사실만을 담고 있다. 데이터는 우리를 비난하지도, 가치를 판단하지도 않는다. 지금의 상황을 사실 기반으로 명확하게 인식하자.
그리고 감정을 바라보자. 감정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목표 달성하지 못한 무능하고 부끄럽다는 느낌이 들어 나를 부끄러워하는구나.', '답답하고 억울하고 화가 나고 답답하구나.'등의 부정적인 감정 혹은 '그걸 해내다니! 정말 대단하고 뿌듯해!', '정말 수고 많았어. 감동이야.'등의 긍정적인 감정일 수도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판단이나 해석 없이 존중하여 온전히 마주하자. 감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충분히 토닥이고 위로하자. 충분히 즐기고 만끽하자.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면 이제 데이터를 통해 현 상황을 분석하여 핵심 의미와 가치를 파악해보자. 사실에 기반하여 성과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잘 수행됐다면 어떤 이유 때문인지?', ' 잘 수행되지 못했다면 어떤 문제 때문인지?' 생각해보자. 이 과정에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오직 더 나은 목표 달성을 위해 생각하고 고민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할지 결정하여 적용하자. 앞에서 발견한 의미와 가치의 통찰을 통해 더 나은 목표 달성 과정을 생각해보자.
이와 같이 데이터는 사실 기반으로 현 상황을 명확하게 볼 수 있게 한다. 이는 허황된 목표와 기대를 방지하여 기대치를 낮출 수 있다. 또한 익숙해져 보지 못했던 성과, 모르고 있던 성과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한다. 목표 달성의 복합성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더 나은 목표 달성 과정을 만든다.
다음 글 : 마무리의 아름다움
우리 모두가 완벽주의를 넘어 목표 달성에 다가가길 바라며.
각각의 성취 경험들이 모여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2. 절반으로 줄여라.
3. 모두 다 할 수는 없어
4. 즐겨라! 그거면 된다.
6. 무의식 속의 혐오
8. 마무리의 아름다움
참조.
1. FINISH(피니시), 존 에이커프, 다산북스, 2017
2. ORID 집중 대화 기법, 동아비즈니스리뷰, http://bitly.kr/rlun7
3. unsplash.com, 사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