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로 줄일 수 없다
나의 어리석음 때문에 나의 삶은 늘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붉은여우 한 마리를 만났다 황금산 아래
대부도에서 태어난 붉은여우에게 물려 바다에 버려졌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내가 돌아가면 그 붉은여우를 내 손으로 죽일 것 같았다
나는 끝내 살인자가 될 것만 같았다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 떠나와 위리안치 유배자가 되었다
지난 삼십 년 동안 이어도에서 바다만 바라보며 살았다
나는 이제 드디어 나의 고향 토성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진성(鎭星)은 토성(土星)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토성에서 배를 타고 이 지구에 왔다 그래서 나의 이름이 배진성이다)
토성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 지구에서의 삶을 정리한다
내가 만난 최초의 친구들은 삼기초등학교 친구들이다
나의 삶을 정리하면서 몇몇 친구들의 삶도 함께 정리한다
참회의 글을 한 줄로 줄일 수 없어서 다시 쓴다
어리석은 나는 스스로
위리안치 유배자 되었다
바다만 보며 살았다
하늘만 보며 살았다
바다는 큰 거울이다
하늘은 큰 거울이다
나는 삼십 년을 오직
거울만을 보며 살았다
가장 커다란 거울 속에
슬픈 나와 세상이 있다
거울 속 나와 악수를 한다
거울 속 너와 악수를 한다
https://youtu.be/_8ofXtxmRjU?si=bV4vo2J_lqgsyw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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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알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 링컨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나는 다만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나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라도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내가 먼저 다가가서 그의 진짜 모습을 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우리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진실로 아름다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나는 징검다리 건너 외딴집에서 태어났다. 행정구역으로는 월경리였으나 원등 1구에 가까웠다. 삼기천을 경계로 원등리와 월경리가 나누어졌다. 우리 집은 바로 그 삼기천 둑 너머에 있었다. 아마도 삼기천 둑 공사를 하면서 하천 부지의 자투리 땅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자투리 땅에 불법 건축물을 짓고 살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불법 건축물인 우리 집은 전기를 설치할 수 없었다. 징검다리 건너 원등 1 구로 이사를 오면서 비로소 전기가 들어왔고 이웃이 생겼다. 바로 앞 집이 주동이 집이었고 주동이 집 앞이 옥자 집 그리고 옥자 집 옆이 종길이 집이었다.
2
나는 선천성 심장병 환자로 태어났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비후성 심근증 환자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나도 몰랐다. 나는 달리기를 잘하지 못했다. 숨이 차서 달릴 수 없었다. 체력이 좋지 못해서 숨이 차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체력단련을 위하여 밤에 홀로 학교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달과 함께 뛰었고 별빛에 흠뻑 젖으며 운동장을 홀로 외롭게 뛰었다. 하지만 더욱 숨이 차서 오래도록 뛸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남몰래 쓰러지는 들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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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가난해서 국민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도시로 나가 돈을 벌어야 했던 누나와 큰형과 작은형을 보면서 나는 중학교를 가기 위해서 나 스스로 돈을 모아야만 했다. 나는 오리를 길렀고 닭을 길렀고 토끼를 길러 나의 저축통장을 만들었다. 내가 짝사랑을 시작한 국민학교 3학년부터 지게길을 시작했다. 왕산과 진등산과 사다리산과 심산에 올가미를 놓아 산토끼를 잡고 싸이나로 꿩을 잡아 팔았다. 뱀과 개구리도 잡아서 팔았다. 나는 나 스스로의 힘으로 중학교를 가기 위하여 스스로 돈을 모아야만 했다. 나는 왕산에 울타리를 만들고 대량으로 토끼를 길러볼 꿈을 꾸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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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은 돈으로 나는 곡성 읍내 병원을 남몰래 찾아갔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스스로 병원을 찾아갔다. 나는 참 바보였다. 멍청이, 반편이, 똥골이, 좀팽이, 꺼벙이, 외톨이, 눈물단지이면서 동시에 울음 없는 아이였다. 나는 나의 몸이 아파도 가족들에게 아프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돈이 필요해도 돈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학교에서 매를 맞거나 오후에 남아서 청소를 하기도 했지만 집에 가서 돈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왼쪽 가슴에 청진기를 대어본 늙은 의사는 선천성 심장 판막증이라고 말했다. 심장병은 청진기로 소리만 들어도 바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치료법은 없고 반드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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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나라 의술로는 심장수술을 잘하지 못했다. 육영수 여사가 심장재단을 만들어서 홍보하던 시절이었다. 심장병 어린이를 미국으로 데려가서 수술을 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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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관 철문 안쪽에 숨겨두었던 흑백텔레비전에서 나는 그런 어린이들을 많이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전설의 고향, 전우, 타잔, 원더우먼, 로봇태권브이, 수사반장, 수사본부..., 이런 프로그램들이 생각나겠지만 내 기억에는 미국에서 심장 판막증 수술을 받고 돌아온 아이들 사연들이 많이 보였다. 그 당시에 나는 대통령은 박정희만 해야 하는 줄 알았고 국회의원은 문형태와 고재청이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우리 집 벽에는 늘 문형태와 고재청 사진이 박혀있는 한 장 짜리 달력이 붙어 있었다. 그러다가 원등 3구 우리 친구 강인옥의 할아버지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나의 책꽂이에는 아직도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상이란 도장이 찍혀있는 옥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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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광주까지 가서 남몰래 진찰을 받았다. 심장병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심장병 환자로 살아야만 했다. 차마 가족들에게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집안에 심장병 환자 한 명 있으면 아무리 부자라도 그 집은 망한다고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홀로 고민했다. 내가 심장병 환자라는 사실을 알면 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돈이 없어서 자식 수술을 시켜주지 못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그런 고민을 하다가 나는 독하게 마음먹고 혼자 남몰래 버티다가 홀로 죽기로 결심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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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치 때문에 이가 아무리 아파도 치과에 가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충치 때문에 이가 너무 아플 때 솜에 석유를 묻혀 꽉 물고 있으면 덜 아프다고 하여 나는 이가 아플 때마다 솜에 석유를 묻혀서 힘껏 물곤 하였다. 그러다가 충치가 더욱 심해지고 치아의 구멍이 커져서 결국 어금니 두 개가 깨어져버렸다. 지금은 그 빈 어금니 자리에 새로운 이를 넣고 싶어도 넣을 수 없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옆에 있던 이가 빈 공간으로 누워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참으로 어리석게 살았다. 아니, 이 소중한 인생을 허망하고 어리석게 허비하고 말았다.
9
그때 내가 선천성 심장병 환자라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으면 나의 삶은 아마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머니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방앗간 천장에서 떨어지셔서 크게 다쳤기 때문에 늘 구들장으로 누워 계셔야만 했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도붓장사를 해야 했던 어머니가 너무 불쌍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모두가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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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한다. 부처님의 자비에 대하여 생각한다. 어머니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한다. 기독교의 근본은 사랑인데 일부 극우 기독교인들의 혐오에 대하여 생각한다. 불교와 가톨릭은 대기업인데 기독교는 자영업이라는 말에 대하여 생각한다. 김건희를 지키려다가 계엄령까지 발동한 윤석열을 생각한다. 그리고 괴물이 되어버린 윤석열 일당의 행동들을 지켜보면서 혹시 나도 그런 괴물이 되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을 다시 한번 깊이 들여다보며 반성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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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기 시작했을까. 나는 늘 내 이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다. 신발가게 하시던 아버지 친구분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들었다. 술 한 잔 얻어 마시고 즉석에서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들었다. 진성(鎭星)은 토성(土星)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쩌면 토성에서 오지 않았을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나는 혼자 생각하며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성이 배인데, 사람들은 먹는 배를 생각하며 '배꼭지'라고 하였지만 나는 어쩌면 먹는 배가 아니라 바다를 건너가는 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토성에서 지구까지 배를 타고 오지 않았을까, 홀로 깊이 생각하곤 하였다. 내가 선천성 심장병 환자라는 사실을 홀로 알았을 때 생각했다. 또 토성에서 배를 타고 와서 지구에 도착하여 정박하는 과정에서 어떤 충돌이 있었으며 그 순간에 심장이 충격을 받아서 고장 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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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에는 무의식적으로 윤회설이 스며들어 있었다. 불교를 더 공부하기 위하여 대학생불교학생회장도 하고 스님이 되려고 절에 들어가 머리도 깎아보았지만 나는 종교인이 되지는 못했다. 나는 성경공부를 하기 위하여 1년 동안 정식으로 성당에서 성경을 배우고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도 받았지만 적극적인 종교인은 되지 못했다. 또한 개신교에도 친구를 따라서 가보기는 했지만, 조용히 묵상하는 기도가 아니라 큰 소리로 소리치며 하는 통성기도가 나의 체질에 맞지 않아서 더 이상 가지 않았다. 나는 종교를 배척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종교의 순기능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의 순기능 중의 하나는 약자들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국가에서 미처 챙기지 못하는 약자들을 위한 봉사와 희생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일부 극우 기독교인들이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혐오를 조장하고 있어서 걱정이다. 나쁜 종교와 나쁜 정치가 만나면 참으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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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구에 와서 처음 만난 친구들이 삼기초등학교 54회 동창생들이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어느 한 집단에 소속되지 못했다. 나는 외딴집에서 태어나 자랐다. 월경 1구에 속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월경 1구와 월경 2구 중간쯤에 있는 외딴집이었다. 역삼각형 모양의 아래 꼭짓점 부근에 있는 외딴집이었다. 거리상으로는 원등 1구에 더 가까웠다. 삼기천의 징검다리만 건너면 원등 1 구였다. 나의 기억은 그 외딴집에서 출발을 한다. 그런데 어쩌면 그 외딴집 이전에 살았던 월경리 2구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을 하기도 한다. 월경리 2구는 보통 행경(행정)이라고 불렀는데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내 기억에는, 아주 작고 허술한 집이 물가에 있었는데 벽도 반듯하지 못했고 방바닥의 수평도 제대로 맞지 않는 그런, 집 같지 않은 집이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 집에 관한 꿈을 꾼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방 안 여기저기 빗물을 받기 위하여 세숫대야나 양동이를 놓아두는 집, 잠을 자면서도 기울어진 방바닥 때문에 미끄러져서 한쪽 벽에 붙어있게 만드는 집, 벽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꿈속에서도 벽이 무너질 것 같아서 걱정하는 그런, 집 같지 않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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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나는, 아주 작고 불안한 집에서 잠을 자다가, 그대로 집이 통째로 나의 무덤으로 변하는 꿈을 가끔 꾼다. 나의 무의식 가장 아래 바닥에 그런 집이 하나 있다. 나의 불안은 아마도 그 집에서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위태로움 또한 그 집에서 출발한 것일 것이다. 그 위태로운 집과 나의 선천성 심장병이 나의 유년시절을 대표하는 결정적인 요인일 것이다. 사람들의 삶은 대부분 유년시절의 결핍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유년시절의 결핍을 채우기 위하여 남은 시간을 발버둥 치는 것이 어쩌면 각각 개인들의 삶이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유년시절의 결핍을 만회하기 위해서 남은 평생을 발버둥 치며 사는 인생은 뭔가 허전함이 존재할 것이다. 또한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바로 나의 심장병인데, 싫든 좋든 평생을 함께 살아야만 했던 심장병 외에 또 다른 친구 몇 명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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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기초등학교 54회 동창생들 중에 심광식이란 친구가 있었다. 월경 2구에서도 더 깊은 산골에 살았던 친구였다. 그 친구와 나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아마도 가난의 동지여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했다. 그런데 나와 심광식은 그 가난한 동네에서도 더욱 가난한 극빈자였다. 심광식은 결국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버렸다. 학교를 그만두고 홀로 외롭게 지내던 시절에 나와 자주 만나던 친구였다. 그렇게 소식이 끊어진 심광식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참으로 많이 보고 싶은 심광식, 너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 우리 이승에서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
삼기초 54회 메모
1
연어의 종착역에서 태어난 우리들은
삼기천을 따라 내려가 섬진강 되어
먼바다로 까지 나가 살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이태리에 산다는 혜숙이
얼굴을 보았다 잘 살아온 종길이가
밀라노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캐나다 산다는 혁찬이는 잘 있을까
울산에 산다는 희민이는 잘 있을까
의정부에 산다는 경희는 잘 있을까
아직도 유배에서 풀리지 않은 나는
언제쯤 연어의 종착역으로 돌아갈까
흙이 되어버린 친구들도 생각이 난다
진섭이 정우 석순이 그리고...,
먼바다를 건너오는 실뱀장어들 보니
연어들도 머지않아 돌아올 것 같구나
탐라국 입춘굿 낭쉐처럼 올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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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기초 54회 동창생들 중에 심광식이 있었다. 월경 2구에서도 더 깊은 산골에 살았던 친구였다. 그 친구와 나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아마도 가난의 동지여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했다. 그런데 나와 심광식은 그 가난한 동네에서도 더욱 가난한 극빈자였다. 심광식은 결국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버렸다. 그렇게 소식이 끊어진 심광식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참으로 많이 보고 싶은 심광식, 너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
* 혹시, 심광식 소식 아는 친구 있을까요? 심광식 연락처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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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까지 사는 것이 꿈이었다. 왼쪽 가슴이 아팠다. 남몰래 가슴을 안고 쓰러지는 들풀이었다. 내려다보는 별들의 눈빛도 함께 붉어졌다. 어머니는 보름달을 이고 징검다리 건너오셨고 아버지는 평생 구들장만 짊어지셨다. 달맞이꽃을 따라 가출을 하였다. 선천성 심장병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나의 비밀은 첫 시집이 나오고서야 들통이 났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비후성 심근증, 심장병과 25년 만에 첫 이별을 하였으나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바다는 나를 이어도까지 실어다 주었다. 30년 넘게 섬에서 이어도가 되어 홀로 깊이 살았다. 나는 이제 겨우 돌아왔다. 섬에서 꿈꾼 것들을 풀어놓는다. 꿈속의 삶을 이 지상으로 옮겨놓는다. 나에게는 꿈도 삶이고 삶도 꿈이다. 꿈삶글은 하나다. 덤으로 사는 인생 하나 너에게 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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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아직도 신들의 왕국이다. 1만 8천여 신들이 산다고 한다. 신들과 인간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 공화국이다. 제주도는 신화의 땅이고 역사의 땅이고 평화의 땅이다. 저항의 땅이고 투쟁의 땅이고 항거의 땅이고 희생의 땅이다. 제주도는 항몽의 땅이고 유배의 땅이고 사삼의 땅이다. 바람의 땅이고 화산의 땅이고 여자들의 땅이다. 제주도의 새해는 신구간(新舊間)으로 온다. 신구간(新舊間)은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 사이로 보통 일주일 정도이다. 이때 인간 세상을 관장하는 1만 8천여 신들이 모두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한 해 동안 일어난 일을 보고한 뒤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 내려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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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사람들은 신들과 친하게 지내면서도 신들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신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사도 하고 집도 고치고 묘지를 손보기도 한다. 특히 제주도 묘지에는 돌담이 있는데 그 돌담을 산담이라고 한다. 그 산담도 신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손을 보기도 한다. 제주도의 1만 8천여 신들이 모두 하늘로 올라가는 기간이 있는데 그 기간을 신구간(新舊間)이라고 한다. 제주도에 파견된 신들은 모두 1년에 한 번씩 하늘로 올라가서 연말 보고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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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 기간에는 지상에 신격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이사나 집수리 등 평소에 금기되었던 일들을 하여도 아무런 탈이 없다고 믿었다. 대부분의 제주 사람들은 이 기간을 이용하여 평소에는 극히 꺼리는 일들을 처리한다. 변소와 외양간을 고치고, 뒤꼍의 나무를 자르고, 묘소의 담을 손보며, 이사를 한다. 특히 변소를 손보는 일은 반드시 신구간을 기다렸다가 한다. 신구간 기간에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이사이다. 제주 사람들은 지금도 신구간 기간에 일제히 이사를 하는데, 미처 집이 비워지지 않으면 택일한 날에 전기밥솥이라도 가지고 가서 밥을 지어먹어야 하는 것으로 믿는다. 전기밥솥을 사용하기 전에는 반드시 아궁이에 불을 피워서 밥을 해 먹었다. 불씨 옮기기가 이사의 중요한 증표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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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간의 풍속은 대체로 가신(家神)들이 관장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 울타리 안의 이곳저곳을 손보는 것은 가신들이 울타리 안을 관장하는 일을 맡고 있다는 점과 연관되어 있다. 한편 이사를 하는 것은 새로운 가신들이 관장하는 세계로 옮겨 가는 것을 의미한다. 신구간이 아니라면 이들 여러 신에게 제각기 의례를 행하여 고하고 무탈하기를 기원해야 한다. 그러므로 여러 신들과 관련된 행위를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는 시기인 신구간은 사람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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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지역은 겨울에도 날씨가 따뜻하고 습기가 많아서, 신구간 기간과 같이 아주 추운 날씨에 이사를 하거나 집수리를 하지 않으면 탈이 날 염려가 있다. 이 때는 또한 농한기여서 일손을 구하기도 쉬웠다. 따라서 신구간 풍속이 지금까지 전승되는 데에는 제주도 지역의 환경적 요인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구간의 여러 풍습 중에서 이사 풍습은 지금도 많이 지켜지고 있다. 오일장이나 교차로 등과 함께 신구간이란 생활정보지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 제주도로 이사 올 사람들은 신구간을 꼭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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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일만 팔천 신들이 상주하는 신들의 고향이다. 또한 당 오백 절 오백이라는 말도 있다. 신당과 사찰이 500개씩 있다는 말이다. 지금도 제주도에는 신당과 사찰들이 그렇게 많다. 현재 제주도에는 400곳 정도의 신당이 남아있다. 마을 공동의 성소인 신당(神堂)에서는 크게 네 가지 행사를 한다. 매년 새해 세배를 올리는 정월 초의 신과세제(新過歲祭), 음력 2월의 영등굿, 7월의 마불림제, 그리고 9월이나 10월에 열리는 추수감사절 성격의 시만곡대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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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면 제주도의 마을 곳곳에서 신과세제(新過歲祭)가 열린다. 신과세제는 과세문안(過歲問安)이라고 하기도 한다. 과세는 제주에서 세배를 뜻하는 단어로, 신에게 세배를 올린다는 뜻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이렇게 신이나 죽은 사람들도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하는 경우가 많다. 신과세제(新過歲祭) 혹은 과세문안(過歲問安)은 새해를 맞이하여 마을의 수호신인 당신(堂神)에게 세배를 올리고 주민의 안녕을 비는 제의(祭儀)이다. 일명 신과세제(新過歲祭) 또는 신년과세(新年過歲)라고도 한다. 제일(祭日)은 정기적으로 날짜가 정해져 있는 마을도 있고, 택일을 하여 지내는 마을도 있으나, 어느 경우든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 사이의 기간 중에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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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세제가 열리는 날은 마을 안의 주민뿐만 아니라 타지로 거처를 옮긴 마을 출신 인사들까지 지극정성으로 참여한다. 제가 열리는 날이면 각 집안마다 각기 대나무로 짠 바구니인 차롱에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담아 신당의 제단에 진설한다. 마을의 모든 집안이 참여하기에 규모가 큰 곳에서는 300여 개의 차롱이 펼쳐진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런 전통문화가 아직도 살아있기 때문에 제주도의 공동체는 똘똘 뭉쳐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외지인들이 함부로 침투할 수 없는 배타적인 약점도 있지만 서로 돕고 상부상조하는 공동체 정신이 살았다는 장점도 있다. 이런 문화를 다른 말로 괸당 문화 혹은 삼촌문화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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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제나 시를 생각합니다. 저는 언제나 시인이 되기 위하여 시를 찾고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시인으로 살기 위하여 시를 살고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詩’라는 글자를 생각합니다. ‘詩’라는 글자는 재미가 있습니다. ‘詩’라는 글자 속에는 입과 발과 손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시는 입으로도 쓰고 발로도 쓰고 손으로도 쓸 수 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 발로 쓰는 시가 가장 좋은 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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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자는 ‘시’나 ‘시경’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입니다. 詩자는 言(말씀 언) 자와 寺(절 사) 자가 결합한 모습입니다. 寺자는 ‘절’이나 ‘사찰’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시’는 글로 남기지만 말로 읊조리기도 했으니 言자가 의미 요소로 쓰였습니다. 사찰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불경을 읽곤 합니다. 이때는 운율에 맞춰 불경을 읽는데, 詩자에 쓰인 寺자는 그러한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詩자는 사찰(寺)에서 불경을 읊는 소리(言)를 ‘시’에 비유해 만들어진 글자로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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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도 옛날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시는 산사에서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는 산사의 종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한 때 시를 찾아서 산사에 들어가 살기도 하였습니다. 절 사(寺)에 말씀 언(言)이 함께 붙어 있는 것이 시(詩)이므로 시는 산사에서 들려오는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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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풍경소리가 시라고 생각했습디다
산사의 범종소리가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산사의 운판소리가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산사의 법고소리가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산사의 목어소리가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산사의 목탁소리가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산사의 죽비소리가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산사의 염불소리가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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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저는 어느 순간부터, 신이 자연에 숨겨놓은 말씀이 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늘의 빛이 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늘의 별이 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늘의 달이 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바람이 시가 아닐까, 바다가 시가 아닐까, 강이 시가 아닐까, 여울물 소리가 시가 아닐까, 나무가, 풀이, 꽃이, 가시가, 개구리가, 개구리밥이, 여치가, 버들치가, 은어가 ……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조금만 눈을 떠봐도 세상에는 보석 같은 신의 말씀들이 별빛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귀를 기울여 봐도 세상에는 여울물소리처럼 아름다운 노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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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저는 드디어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빛을 찾았고 꿈결 같은 아이들의 숨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드디어 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시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이며, 시는 아이들의 고요한 숨결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시가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시는 결국 그 생명을 낳게 만들어주는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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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이제 시는 생명입니다. 저에게 이제 시는 사랑입니다. 그리하여 저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시인은 어머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생명을 낳아 길러주신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은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고 세상에서 가장 생명력이 강한 시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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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비록 어머니는 될 수 없지만,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사랑을 도와서 고귀한 생명을 함께 낳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에게도 저의 대표작이 있습니다. 전생에 낳은 두 아들이 저에게는 가장 소중하고 가장 생명력이 강한 저의 대표작입니다. 저는 어떤 시인들보다도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을 존경하며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생명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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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에게는 세상에서 저를 가장 슬프게 하는 글이 있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언제나 저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글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글이 있습니다. 아마도, 광주에 있는 병원을 몰래 빠져나오셔서 고향집에서 농약을 마시고 쓰신 것 같습니다. 그 농약이 온몸으로 퍼지는 순간에 쓰셨을 것만 같습니다. 신음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수건을 입에 물고, 치아가 다 으스러지도록, 입을 앙다물고 쓰신 듯합니다. 자식인 저는 평생 용서를 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받은 유산이 바로 이 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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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몸으로 기억한다. 나의 몸이 어머니를 기억한다. 어머니는 나의 하느님이다. 그 기억을 더듬어 다시 한번 그 따뜻한 길을 여행한다. 그 행복과 평화의 길은 나의 길이고 내 아들의 길이고 내 어머니의 길이고 우리들 모두의 길이다. 그 숭고한 길의 힘으로 나는 오늘도 행복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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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몸은 아직도 토성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토성(土星)을 진성(鎭星)이라 부른다. 토성은 목성에 이어 태양계에서 두 번째로 크며, 직경은 지구의 약 9.5배, 질량은 약 95배이다. 태양으로부터 14억 k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약 9.7km/s의 속도로 공전하는데, 이는 지구 시간으로 대략 29.6년이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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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이 왜 토성에서부터 출발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나는 아직 모른다. 나는 다만, 어쩌면 나의 이름 때문에 기억이 재구성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날, 그러니까 그믐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토성은 30년 만에 지구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접근하였고 번쩍, 하는 불빛과 함께 우주비가 내렸다. 나는 그 5억 개가 넘는 우주의 빗방울 속에 있었다. 나는 무작정 토성에서 지구를 향해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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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도착하여 보니 어느 작은 시골이었다. 그믐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보름달을 이고 가는 도붓장수 여인이 있었다. 커다란 미원박스 안에 바늘, 실, 양말, 동정, 고무줄, 비누… 많은 생활용품들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박스 아래는 생활용품과 물물교환 한 쌀, 보리, 조, 수수, 콩 등이 담긴 자루가 있었다. 또한, 그 박스 위에도 비교적 가벼운 물건들과 함께 이미 팔려나간 물건들 대신 수숫대 빗자루며 계란 등과 함께 손때 묻은 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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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물건들을 아주 큰 보자기에 싸서 이고 가는 여인이 있었다. 집을 나설 때에는 빈 헝겊 자루들이 똬리 역할을 했지만, 그 접혀 있었던 자루들이 불룩하게 다 채워지고 네모난 박스 위에도 묘지처럼 볼록해서 보름달이 되어야만 집으로 돌아가는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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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인의 몸은 흠뻑 젖어 있었고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지천에 피어있는 참꽃들만이 바람결에 맞추어 몸을 눕히고 있었다. 나는 다행히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를 적셨고 무사히 그녀의 몸과 마음속으로 침투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나의 운명이었고 축복이었다. 나는 그렇게 천만다행으로 그녀를 만났고 그녀는 나의 어머니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나는 그녀를 젖게 했을까? 왜 나는 하필 그런 여인의 몸속으로 황급히 뛰어 들어갔던 것일까? 나는 어찌하여 그렇게 그녀의 아들이 되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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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1931년 3월 26일에 이 세상에 태어나셨다. 나는 그때부터 아버지 몸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아마 1965년 6월 장마가 시작되고, 산수국과 수국이 한창 피어나던 무렵에 아버지 몸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나의 모든 전생을 한 번쯤 더 되풀이하여 생각했을 것이다. 물에서 살았던 시절부터 물 밖으로 기어 나왔던 경험까지, 그중에서 많은 것들은 생략하고 꼭 필요한 정거장들만을 거쳐서 돌아왔을 것이다. 아가미 시절과 허파 시절을 짧은 10개월 동안 다시 한번 속성으로 살아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1966년 어느 봄날에 힘차게 울면서 이 세상으로 나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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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첩立春帖은 24 절기의 하나인 입춘 날에 문이나 기둥, 벽 등에 써서 붙이는 글귀를 말한다. 글자 수에 제한이 없지만 거의 대구對句 형식으로 두 개의 구절을 쌍으로 붙인다. 그래서 춘련春聯이라고도 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별칭이 있지만 춘첩春帖이나 춘첩자春帖子가 널리 쓰이는 말이다. ‘첩帖’은 원래 붙인다는 뜻인데 춘첩의 풍습이 보편화되어서인지 지금은 아예 대련對聯이라는 뜻까지 사전에 올라 있다. ‘춘첩자’라고 할 때의 ‘자’는 자字로 오인하기 쉬운데 자子가 맞다. 사물을 나타내는 접미사이다. 글의 내용은 주로 한 해의 평안과 복을 기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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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첩의 유래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같은 옛 문헌에서도 잘못 설명하고 있는데, 중국의 오대십국五代十國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나라가 망하고 송나라가 건국되기까지 혼란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나라들이 나타났다 사라진 시기를 오대십국이라고 하는데, 그중에 후촉後蜀, 934~965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후촉의 2대 황제인 맹창孟昶은 문장에 뛰어났다. 그가 도부桃符에다 ‘新年納餘慶신년납여경, 嘉節賀長春가절장하춘’이라고 쓴 것이 중국에서 춘련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새해에 조상이 끼쳐준 복을 받고, 좋은 명절에 긴 봄날을 축하한다.”는 뜻이다. 도부는 복숭아나무 부적이란 뜻인데, 귀신이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한다는 속설이 있어서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받아들이는 의식에 복숭아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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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의 글귀로 표현한 것은 후촉의 맹창이지만, 복숭아나무를 사용하여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풍습은 훨씬 더 시대를 소급해 올라간다. 진秦나라 이전부터 중국의 민간에서는 한 해를 보내고 맞으면서 복숭아나무판자에 전설 속의 귀신인 ‘신도神荼’와 ‘울루鬱壘’를 그림으로 그려서 문의 좌우에 걸어놓고 잡귀를 물리치는 의식을 행하였다. 그러다가 그림 대신 그 이름을 글씨로 써서 붙이게 되었다. 놀랍게도 2천 년 이상 된 이 풍습이 아직까지 우리나라 일부 지방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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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창이 춘련의 선구가 된 뒤로 그다음에 등장한 통일 왕조인 송나라 때 문인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나 ‘춘련’이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명명된 것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에 의해서였다. 그는 남경南京에 도읍을 정한 후 제야除夜에 갑자기 명령을 내려 모든 공경公卿, 사대부, 서민의 집 문에 춘련을 붙이게 했다. 그리고는 평복을 입고 대궐 밖으로 나가 그 춘련을 둘러보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이후로 명나라 때는 도부 대신 종이에 글을 써 붙이는 춘련이 보편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청나라에 들어서는 더욱 성행하였고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주변의 한자 문화권인 나라에도 널리 전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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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첩에 쓰이는 문구는 주로 복을 기원하는 내용이지만 특별한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는 것이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다. 그런데 ‘입춘대길’은 쉬워서 잘 아는데 ‘건양다경’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 실은 앞의 구절과 같은 뜻이다. ‘건양’은 ‘양춘陽春이 선다는 뜻으로 ‘입춘’과 같고, ‘다경’은 경사, 즉 복이 많다는 뜻이니 ‘대길’이나 마찬가지다. 두 구절이 정연한 대구로서 뜻을 강조하기 위해 유사한 표현을 중복시킨 것이다. 그 밖에도 ‘國泰民安 家給人足’1),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2)’, ‘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3)’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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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첩은 이렇게 대련으로 써서 붙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궁중에서는 완성된 시 작품으로 관례화되기도 하였다. 또 궁중에서는 입춘 때만 아니라 정월 초하루를 축하하기 위한 연상시延祥詩, 단오를 기념하기 위한 단오첩端午帖이 성행하였다. 이들을 통칭하여 절일첩節日帖이라고 한다. 이처럼 궁중에서 신하들이 지어 올리는 절일첩은 하례賀禮의 덕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치나 주색을 경계하는 등 임금에게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권면하기도 하였다. 현재 덕수궁 중화전中和殿에는 내부 기둥에 고종 때 신하들이 지은 단오첩이 여러 개 붙어 있다. 오랜 세월에 낡고 파손된 것이 많아 언제 지은 것인지 고증하기 어려운데 고종을 황제라고 한 것으로 보아 광무光武~융희隆熙 연간 1897~1910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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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문 생활에서 한문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아울러 한문과 관련된 전통문화의 단절도 심각한 정도로 진행되고 있다. 입춘첩도 한문 문화의 한 측면인데 그래도 이 풍습은 아직까지 없어지지 않고 꽤 성행하고 있어 다행스러운 생각이다. 인문 정신이 깃들어 있는 이 풍습이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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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태민안 가급인족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며,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충족하라.
2)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 부모님은 천년토록 장수하시고, 자손들은 만대토록 영화로우라.
3)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 부지런히 일하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어 손님을 잘 대접하면 온갖 복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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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제주들불축제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2025년 들불축제는 다음 달 3월 14일부터 16일까지 제주시 새별오름 일원에서 개최된다. 제주시는 행사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시설물 정비에 돌입했다. 2년 만에 재개되는 제주 들불축제의 핵심 프로그램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제주도의회가 사실상 판단을 포기하면서 결국 축제 당일까지도 주민 반발이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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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제주도의회에 따르면 오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는 제435회 임시회에 '제주도 정월대보름 들불축제에 관한 조례안 재의요구의 건'을 상정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 주민조례로 추진된 들불축제 조례는 '오름 불 놓기' 행사 진행을 골자로 한다. 제주시가 앞으로의 들불축제에서는 오름 불 놓기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에 반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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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례는 지난해 10월 제432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의결돼 제주도지사에게 이송됐다. 하지만 도지사는 오름 불 놓기 행사는 산림보호법에 위배된다는 이유 등으로 같은 해 11월 도의회에 재의를 요구했다. 주민들이 '오름 불 놓기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제주시가 '불 대신 미디어 아트와 특수효과를 이용해 오름 불 놓기를 대체하겠다'는 계획이 상충하면서, 올해 3월 중순 진행될 2025 들불축제의 오름 불 놓기 향방은 재의요구안을 처리하는 도의원들에게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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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올해 2월 회기가 열리는 현재까지 도의회에 재의요구안이 상정되지 않으면서 사실상 올해 들불축제는 제주시의 계획대로 진행될 전망이다. 축제가 한 달 남짓 남은 상황에서 축제 핵심 프로그램을 바꿀 수 있는 안건을 상정해 처리하기에는 부담이 됐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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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재의요구안 처리가 한없이 미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월 상정이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올해 연말까지 시간을 번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실제 도의회는 3월 중순 축제가 진행되고, 이후 축제 결과보고가 나온 뒤까지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도의회 관계자는 "의원들이 일단 올해 축제를 지켜보고, 이후 진행되는 공론화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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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도의원들이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현장 주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편 2025년 들불축제는 다음 달 3월 14일부터 16일까지 제주시 새별오름 일원에서 개최된다. 제주시는 행사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시설물 정비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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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주들불축제는 산불 위험과 생명체 훼손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여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에 제주시는 제주의 생태적 가치에 부합하는 축제 콘텐츠를 개발하여,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형태의 축제로 탈바꿈시킨다고 밝혔습니다. 25년을 이어 온 제주지역 대표 축제의 변화에 많은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제주에선 오름 하나를 통째로 태워야 봄이 온다?
제주는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농가마다 보통 2~3마리의 소를 기르며 주노동력인 소를 이용하여 밭을 경작하고, 수확한 농산물을 밭에서 집이나 시장으로 운반했다. 농한기에는 마을마다 양축농가들이 윤번제로 서로 돌아가며 중산간 초지를 찾아다니며 방목 관리하던 풍습이 있었다. 방목을 맡았던 목동(쉐테우리)들은 중산간 목야지 양질의 목초를 찾아다니며 풀을 먹였다. 이때 중산간 초지의 해묵은 풀을 없애고, 해충을 구제하기 위해 마을별로 늦겨울에서 경칩에 이르는 기간에 목야지에 불을 놓아 양질의 새 풀이 돋아나도록 불 놓기(방애)를 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조상들의 지혜였던 것이다. 불 놓기(방애)를 하는 기간 동안 제주의 중산간 일대는 마치 들불이 난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장관을 이루었다.
제주의 옛 목축문화를 현대적 감각에 재해석해 ‘제주들불축제’를 1997년부터 매해 개최하고 있다. 2015년과 작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축제, 2016 제주특별자치도 최우수축제, 2016 대한민국축제콘텐츠 축제관광부문 대상, 2015 대한민국 올해의 히트상품 대상, 제주인이 자랑하고 싶은 문화자원 1위로 선정된 바 있다. 매년 30만 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인 제주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1997년부터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와 구좌읍 덕천리를 오가며 열리다가 2000년부터 새별오름을 축제장으로 지정했다. 새별오름은 ‘샛별과 같이 빛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민간에선 새벨오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새별오름 일대 전경은 중산간 특유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표고 519.3m, 높이 119m, 둘레 2713m, 면적 52만 2216㎡의 새별오름은 말굽형 화구를 갖고 있으며 제주 섬 360여 개 오름 중에선 중간 규모에 해당한다. 고려 시대에는 최영 장군이 목호를 무찌른 전적지로 기록을 남긴 유서가 깊다.
매해 정월대보름에 맞춰 열리다가 2013년부터 경칩을 낀 주말로 고정됐다. 매년 정월대보름 시기가 겨울철 늦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시기여서 매년 축제 진행에 어려움을 겪어온 탓이다. 게다가 방애의 풍습이 정월대보름보단 경칩이 시기적으로 더 가깝다는 향토사학계의 의견이 반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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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들불축제는 우리들이 어린 시절에 많이 했던 쥐불놀이나 달집 태우기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제주 들불축제의 최대 볼거리인 오름 불 놓기는 2021년 3월 13일 오후 7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다만 기상 여건이 여의치 않으면 일정은 조정된다. 오름 불 놓기는 새별오름 한 면에 불을 놓아 통째로 태우는 장관을 연출한다. 이는 예전 제주에서 중산간 초지의 해묵은 풀과 해충을 없애고 새 풀이 돋아 나도록 마을별로 늦가을부터 경칩에 이르는 기간 불을 놓는 방애 풍습에서 비롯됐다. 이를 현대적으로 재현해 액운을 쫓고 건강과 안녕을 비는 축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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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 쥐불놀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화통 돌리기라고 하였다. 주로 통조림 깡통 바닥과 옆에 못으로 구멍을 뚫고 빈 깡통 안에 관솔이나 작은 장작을 넣고 돌렸다. 그때는 빈 깡통도 귀한 시절이었다. 화통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리부터 좋은 빈 깡통을 구해야만 했다. 운이 좋은 아이들은 통조림 깡통보다 훨씬 큰 분유 깡통으로 화통을 만들었는데 장작을 많이 넣을 수 있으니 훨씬 화력이 좋았다. 불꽃이 살아있을 때에도 훨씬 좋았지만 마지막에 화통을 하늘 높이 던져 올렸을 때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똥들이 더욱 장관이었다. 그런 화통 돌리기 놀이를 하다가 짚비늘을 태워먹거나 땔감나무 쌓아둔 곳까지 태워먹는 일도 가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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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코로나19로 취소됐던 제주들불축제가 올해는 사전예약제, 비대면 온라인 축제로 열린다.
제주시는 오는 3월 8일부터 14일까지 일주일간 새별오름 등에서 들불축제를 개최한다고 1일 밝혔다. 이번 축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비대면 온라인 및 드라이브인 방식으로, 참가인원을 제한하고 사전예약제로 개최된다.
올해 불 놓기에서는 그동안 오름에 새겼던 ‘제주들불축제’ 문구 대신 ‘들불 COVID-19 OUT’으로 변경한다. 또 오름 3부에서 8부 능선에 43개 달집을 설치해 불꽃이 보다 장엄할 것이라는 게 제주시의 설명이다.
이번 불 놓기는 사전예약제로 진행되며, 총 400대의 차량만 한정적으로 출입할 수 있다. 불 놓는 영상은 유튜브 등으로 실시간 중계한다. 또 오름 트래킹과 버스킹, 예술공연 등 주간 행사 관람객도 1000명으로 제한한다. 축제장 내에서 음식물 섭치는 금지된다. 행사장 입구 방역초소에서 제주안심코드를 통한 출입자 확인과 발열검사, 차량 소독 등이 이뤄진다.
제주시 관계자는 “드라이브인 참여자들은 자동차 안에서 가족과 친구, 연인과 함께 장엄한 화산 분출쇼 등 오름(41만 6036㎡)이 타오르는 숨 막히는 장면을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다만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인원을 축소하거나 입장을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제주들불축제는 1997년 시작돼 매년 열렸으나 2011년 구제역으로, 지난해 코로나19로 개최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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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들불축제가 열리는 곳은 평화로에 인접한 새별오름에서 열린다. 들불 축제가 아니어도 내가 자주 가는 곳이다. 설날인 오늘도 나는 내 고향인 진성(鎭星)에는 가지 못하고 대신 샛별인 금성(金星)에 다녀왔다. 금성을 서양에서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美)의 여신의 이름을 따서 비너스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신성(晨星)이라고 부른다. 샛별 혹은 새벽별 이라고 부른다. 이 별은 일 년 중 한동안은 초저녁 무렵 서쪽 하늘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다. 또 다른 때는 아침 동쪽 하늘에서 그 어떤 행성이나 별보다 늦게까지 보이기도 한다. 금성이 가장 밝은 곳에 있을 때는 대낮에도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보이는 금성을 '샛별' 또는 '계명성'이라 부르고 저녁에 서쪽 하늘에서 보이는 금성을 '저녁별'이나 '개밥바라기' 또는 '태백성'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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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들불축제 역시 해마다 진화하고 있다. 초기에는 산불방지를 위하여 새별오름 정상에 수동식 분무기를 많이 갖다 놓고 긴장하며 행사를 진행하더니 몇 년 뒤에는 새별오름 정상까지 소화전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오늘 가서 보니 새별오름 중앙에 "COVID-19 OUT" 글씨를 새기기 위하여 억새다발을 옮기려고 톱니바퀴 모노레일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아, 올해는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진화하거나 혹은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질 것인가?
― 별 하나에 추억(追憶)과
나에게 추억(追憶)은 왜 이렇게 아픈 것일까
추억, 이란 말에 걸려 넘어져서 하늘을 본다
진성(鎭星)은 토성(土星)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토성에서 지구까지 배를 타고 왔다
지구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이 있다
삼기초등학교 54회 동창생들이 있다
벌써 흙이 되어버린 친구들도 있다
이정우, 강현기, 김진섭, 김권수, 백석순, 선오순, 백영순
서른 살까지 사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언제쯤 나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친구들
토성으로 떠나기 전에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친구들
졸업 앨범을 펼쳐 두고 얼굴을 보며 이름을 부른다
연어의 종착역에서 출발한 이름들을 뜨겁게 부른다
*
남자 / 1. 이공주 2. 강종남 3. 전정식 4. 김진섭 5. 김경노 6. 김주용 7. 조수철 8. 박정섭 9. 정병석 10. 하상수 11. 김권수 12. 이정우 13. 김상희 14. 김정수 15. 배진성 16. 백석순 17. 김주만 18. 김대중 19. 이창우 20. 양현수 21. 최경희 22. 고혁찬 23. 김창열 24. 김주환 25. 백영렬 26. 김희민 27. 강현기 28. 박승기 29. 정승철 30. 한학희 31. 정용균 32. 박종복 33. 김주동 34. 박오섭 35. 정병선 36. 박종길 37. 황국헌 38. 조성수 39. 김기채 40. 김경갑 41. 김명열 42. 박종현
여자 / 1. 이민숙 2. 박선옥 3. 김순이 4. 강인옥 5. 이경자 6. 김명희 7. 강영란 8. 김금단 9. 김정희 10. 정병옥 11. 심명옥 12. 우금란 13. 안공숙 14. 박순예 15. 장은숙 16. 백정숙 17. 김공남 18. 심명옥 19. 박양숙 20. 박정옥 21. 손명자 22. 박미순 23. 백영순 24. 김계자 25. 정정옥 26. 김옥 27. 양귀자 28. 오지덕 29. 선오순 30. 정미경 31. 전옥자 32. 박순임 33. 이옥선 34. 이숙이 35. 이춘자 36. 백종님 37. 최서임 38. 윤정희 39. 백선미 40. 강혜숙 41. 김길단 42. 송경희 43. 신금주 44. 심경숙 45. 강영희
* 졸업 사진 없는 친구 있을 수 있을 듯
* 이름 바꾼 친구들 : 안공숙(안혜윤), 이공주(이성근), 이선숙(이채연)
* 휴학 혹은 전학 : 심광식(월경 2구 중간에 휴학) 홍경모 (전학, 괴소 1구) 이선숙(이채연, 전학, 월경 1구) 박애숙(의정부 전학, 원등 3구) 김복순(5학년때 의정부로 전학, 원등 5구) 김명년(광주로 전학, 원등 2구) 오공섭(전학, 맹이골)
* 김길단(소향)
* 벌써 흙으로 돌아가버린 친구들 :
이정우, 강현기, 김진섭, 김권수, 백석순, 선오순, 백영순
엄동설한 밤새 촛불을 밝히던
동백꽃 심지
동박새는 오늘도 가슴이 뛴다
너의 가슴을 환하게 안아본다
너와 함께 가슴에 촛불을 켜야
겨울을 따뜻하게 건널 수 있다
다시 봄이 와도 동백꽃 심지는
당신과의 따뜻한 기억을 켠다
흙으로 돌아간 당신 생각하니
꽃 진 자리마다 배가 불러오고
내 가슴 가득 당신이 차오른다
당신은 언제나 가슴 속에 산다
동백씨 톡 떨어지니 또
다시 당신 생각에 촛불을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