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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여여 Sep 16. 2021

12화 내가 심은 나무

나무를 심은 기억이 있다는 건

얼마 전 남해 집을 팔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재 시골살이를 마치고 서울로 이주해 나의 삶을 꾸리고 있던 중 전해 들었다. 여러 마음이 교차했지만 다른 것보다도 내가 먼저 떠올린 건 나무들이다. "그럼 우리 나무들은 어떡하지?" 남해엔 내가 심은 나무들이 가득하다. 뭐든 내 손길이 닿으면 더 신경 쓰이고 기억에 남듯. 내 손으로 직접 심은 나무들이 잊힐 리 없었다. 아랫집 할머니네에서 얻어 심은 무화과, 내가 좋아하는 살구, 삼촌이 좋아하시는 사과, 배... 그리고 먹고 싶었던 감, 자두, 레몬, 석류, 복숭아... 여러 과일나무를 심었다. 전 주인 할머니가 심으신 모과나무는 주방 창가로 옮겨 심고 공사하느라 죽어버린 앵두나무도 다시 심었다. 나름의 이유들로 각자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나무 하나하나가 어떻게 심겼고 자랐는지 지켜봤기에 아쉬운 마음이다.


심은지 1년 차에도 무화과는 쑥쑥 자라 열매를 맺는다. 이전까지 무화과라는 과일을 잘 먹어본 적도 없었는데 지금은 나의 최애 과일이 돼버렸다. 나무에서 톡 따서 먹는 무화과에서 나오는 진액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새들도 어찌나 좋아하던지, 아침마다 무화과 먹으러 온 새들 소리에 잠에서 깬 기억이 생생하다. 새들이 먹다만 자리엔 개미들이 찾아와 말끔하게 해결하니 참 여러 존재들이 얽히고설켜있다. 밭에는 작물과 나무가 그렇게 함께 자란다. 여름이면 잡초가 무성하다. 그 틈 사이 심어 놓은 옥수수를 따다 아직 어린 나무인데도 불구하고 자두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그 관경이 얼마나 놀랍던지, 마트에서 사 먹던 자두라 익숙한데 나무에서 딴 자두는 신기하고 낯설었다. 그 자두 한알이 어찌나 귀하게 느껴지던지 다섯 식구가 나눠먹으면서도 아까운 존재였다. 

자두 한알

어릴 적 우리 할아버지는 과수원을 하셨다고 한다. 삼촌은 나중에 과수원을 물려받고 싶으셨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삼촌은 나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셨다. 덕분에 나 또한 이렇게 나무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자라면서 흔하게 나무를 보고 자랐지만 살면서 한 번도 심어본 적도, 심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시골마을 집 마당 곳곳엔 맛있는 과일나무, 예쁜 꽃나무들이 많이 심겨있는 게 아닌가? 옛 아파트에 살 때 집 앞에 동백나무를 보긴 했지만 왠지 탐스런 감나무가 담장 너머 뻗어 있는 게 제일 부러워졌다. 나무를 심는다는 건 마치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줬다.  '이 나무가 몇십 년 후에도 잘 자라고 있겠지?' '열매가 매년 열리겠지?' '과일은 안 사 먹어도 되겠다.' '이걸로 뭘 만들어 먹지?' 이런 상상이 절로 되며 몇 년 후에 이 나무를 바라보면 어떤 느낌일지 그 묘한 설렘과 든든함은 참 기분 좋다.


한 해 두해 지나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위로를 받고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그날도 밭에 물을 주다 잘 지내냐는 친구의 전화에 주눅이 들었다. '친구들은 모두 사회에 나가 대학생활, 회사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난 도망치듯 온 남해에서 이러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남들과 다른 선택에 멈춰버린 것 같고 제자리인 것 같은 이 불편한 걱정을 하던 때. 어느새 앞마당에 멋지게 자리 잡은 앵두나무 한그루가 위로를 건넨다. 이 집에 왔을 때만 해도 아슬아슬하게 살아 있던 나무가 삼촌께서 터도 옮기고 가지치기도 하며 눈길을 건네었더니 어느새 열매를 맺었다. 그걸 알게 모르게 보았을 터일까. 눈에 보이지 않던 시간들, 그 작은 성장이 다시금 내 마음을 돌려줬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그 앵두나무처럼 훌쩍 자라 있다. 그때 그 아이는 세월을 먹었고, 여러 계절 속 쨍한 햇볕과 비바람을 맞으며 지금의 내가 됐다. 앵두가 매해 앵두 열매를 맺는 것처럼 나도 매 순간 어떤 열매를 맺으려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내가 심은 나무처럼 나도 그저 나라는 나무를 심어 한평생 잘 길러가는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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