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옥의 묵시록> 1979년
폴란드 출신 조셉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소설 <암흑의 핵심>은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으로도 번역되어있다. 소설은 서술자 말로가 들려주는 체험담의 줄거리로 비교적 간단하다. 젊은 시절 아프리카의 벨지엄령 콩고의 어느 회사 소속 기선의 선장으로 취직한 그가 우여곡절 끝에 콩고 강 상류의 오지로 배를 몰고 가서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던 커츠라는 주재원을 데리고 나오는 이야기이다. 커츠라는 인물의 타락적 행위를 통해서 인간의 내면적인 어둠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식민지 개척자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 그들의 통치는 착취 행위에 불과했고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을 테니까. 그들은 정복자들이었어. 정복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포악한 힘뿐인데,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랑할 것은 못 되지. 왜냐하면 누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약하다고 하는 사실에서 생기게 된 우연한 결괴에 불과하기 때문이야. (p15)
자네들도 아다시피 나라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증오하고, 혐호하고 또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닌가. 그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정직하기 때문이 아니고 그저 거짓말이 내게는 무섭기 때문이야. 거짓말 속에는 죽음의 색깔이 감돌고 또 인간 필멸의 냄새도 풍기는 것이 아닌가. 바로 거짓말의 이런 속성이야말로 내가 이 세상에서 증오하고 혐오하는 바이며 내가 잊어버리고 싶은 바이기도 하다네. 그리고 그런 속성은 마치 무언가 썩은 것을 한 입 물었을 때처럼 나를 비참하게 하고 또 구역질나게 한다네. (p61)
영화는 1979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 의해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으로 만들어졌는데, 배경과 인물등에서 다르다. 배경은 아프리카 콩고에서 베트남으로, 신비스럽고 카리스마적인 제왕 커츠는 주재원에서 대령으로 바뀌었다. 공포스럽게 원주민들을 지배하는 ‘커츠’라는 인물의 묘사는 원작과 같다. 영화에서 전쟁의 광기, 살인과 약탈 등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참담함을 느끼게 한다. 결국은 광기와 환각에 의한 살인, 살인을 위한 살인으로 이어지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얼토당토한 목적 없는 전쟁, 전쟁을 위한 전쟁을 이야기한다. 커츠 대령 역할은 오슨 웰스와 진 해크먼에게 제안했지만 거절 당하고 말론 브란도가 맡았는데 원작 소설을 읽지 않고 대본 숙지도 안하고 체중도 엄청 찐 상태로 촬영장에 나타나 촬영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감독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말하길 " 이 영화의 주제는 반전“ANTI-WAR”이 아니라 반 거짓말“ANTI-LIE”이다"라고 한다.
... 이 세계의 정복이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 우리들과는 피부색이 다르고 우리보다 코가 약간 낮은 사람들을 상대로 자행하는 약탈 행위가 아닌가. 그러므로 그 행위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것이 못 된다구. 이 불미스런 행위를 대속(代贖)해 주는 것은 이념밖에 없어요. 그 행위 이면에 숨은 이념이지. 감상적인 구실이 아니라 이념이라야 해. 그리고 그 이념에 대한 사심 없는 믿음이 있어야지.... (p15-16)
커츠 대령이 죽기 직전에 한 말은 “끔찍하다 끔찍해(The horror! The horror!)”이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말로는 커츠의 약혼녀에게는 거짓말로 이야기한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엔트로피entrophy”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나라가 미국과 같은 소비를 언젠가는 하게 될 것이라 꿈꾸지만, 만약 개발도상국 몇 개 국가가 미국과 같은 소비를 하게 된다면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으로 인해 몇 년 안에 지구는 멸망할 것이다.“
진실은 시간이라는 이름의 옷을 벗어버린 진실이지. 바보들이야 입을 벌리고 몸을 떨고 있겠지만, 용감한 인간이라면 진실을 알면서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을 것이네. 그러나 적어도 그는 강기슭에 살고 있는 그 원주민들에 못지않게 인간적인 자질을 가지고서, 즉 자기 자신의 타고난 힘을 가지고서 그 진실을 대면해야 해. 원칙만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구? 원칙만으로는 안 되지. 원칙이란 후천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으로서 몸에 걸친 옷이라든가 예쁜 천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몸을 세차게 흔들기만 해도 그 천은 떨어져나가게 되지. 그래서 그런 걸로는 안 되고 사려 깊은 믿음이 필요하게 돼. 그 악마가 벌이는 듯한 소동 속에서 내가 일종의 호소력을 느꼈느냐구? 그렇다네. 호소를 들었지. 그러나 내게도 하나의 목소리는 있었고, 좋든 나쁘든, 내 목소리는 결코 묵살될 수 없는 언변이기도 하지.
<조셉 콘래드, 암흑의 핵심, P8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