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마지막 발행 아쉽습니다...
처음 시짜 브런치북을 시작할 때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응어리들의 조각까지 전부 떨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 나도 이제 12년 차 결혼생활을 하고 있고 10년이 넘으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을 실감하며 시댁과의 관계가 이제는 조금 편해졌음을 고백한다.
시아버지의 죽음으로 그동안 겪었던 고통과 갈등, 절망 속에 이제는 무덤덤함으로 남편의 형 가족은 남이 되어버렸다.
또 하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시고모들의 돌변한 행동은 남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시할아버지의 코딱지만한 재산 문제로 고모들은 그동안 시아버지한테 받아낸 건 까마귀 고기를 먹은 듯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남편과 형의 2차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싸움에서 남편은 나까지 저 사람들과 똑같아지기 싫다는 마음이 컸겠지라고 지례 짐작해 본다. 남편은 아버지 재산 문제로 형과 다툼을 피하고 싶었다.
인간의 진짜 모습은 부모 중 한 분이라도 돌아가셔야 나온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사람이 죽으면 그가 남긴 것들을 남은 가족들이 법적으로 분배해야 한다.
얼굴 붉히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그동안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왔냐에 따라 다르다.
돈은 치사하지만 인간의 민낯을 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매개체이다.
형네 부부가 ‘형’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했더라면 그네들이 더 챙겨간들 아마 너그럽게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만난 시댁은 의무는 동생이 권리는 형에게 주는 집안이었기에 시아버지가 한 개도 정리를 안 하고 간 재산문제로 이미 거기서 관계는 끝날 수밖에 없었다.
형네 가족들은 외적으로는 여전히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돈과 물질에 대한 욕심이 많으면 그쪽으로 눈이 틔일 수밖에 없으니 우리보다 경제적으로는 더 여유롭게 사는 게 분명할 것이다.
남편은 형의 소식을 나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그 역시 형과 연락을 잘하지 않는다.
매년 시아버지 기일과 명절 두 번, 어버이날, 아버지 생신 정도에 시어머니 주축으로 셋이 만나 산소를 방문한다. 그 외 가족들은 참석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식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따로 산소에 찾아뵙는다.
그 지긋지긋한 명절 제사도 다 없어졌다.
일단 시고모들이 시어머니께 발길을 끊었기에 제사도 다 없애버렸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은 시할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본가는 전세로 내놓고 시골집으로 향하셨다.
딸들이 넷이나 있지만 누구 하나 자기 아빠를 돌보겠다는 시고모는 없었다.
시어머니는 2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시할아버지를 모시고 그 역시 시아버지를 따라 암으로 소천하셨다. 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은 가족은 이제 시할머니. 그녀 역시 치매환자로 몸은 건강하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하여 매일마다 시어머니께 욕을 하고 구박을 하는 일상을 이어간다.
지금은 다행히도 시골집 근처 요양원에 모셨다.
이제 시어머니는 시골집에 혼자 남아 계신다.
평생 시집와서 고생만 하고 남편까지 일찍 하늘나라로 보낸 시어머니.
나 역시 시댁과의 갈등 속에 그녀에게 해서는 안 되는 독한 말들을 내뿜은 적이 있었다.
형네를 잡아주지 못하는 시어머니께 속상한 마음을 가감없이 토해냈었다.
이제는 그럴 일도 없다.
그녀도 더 이상 나에게 형네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우리는 다 같이 모이는 일은 끝이 났다.
그래도 각자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시어머니를 챙기고 있다.
만약에 처음으로 돌아가서 시부모가 그렇게 형제 관계를 간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시간에 맡겼더라면 어땠을까?
그럼 우리는 좋은 동서관계, 좋은 형제관계를 유지했을까?
잠시 생각해 보지만 결론은 아니올시다.
그냥 각자 인생을 사는 게 해피엔딩이다.
부모가 정한 틀에 언제까지 묶여 지낼 수는 없다.
나는 새로운 작은 우주를 내 아이들과 탄생시켰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함을 알기에 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시댁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p.s 그동안 [시금치도 안 먹는 시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저에게는 이렇게 안 보고 사는 게 사이다 결말이랍니다.
형제 관계에서 안 보고 사는 게 나쁘다는 생각을 지워야 할 거 같아요.
핏줄이던 남이던 안 맞으면 안 보는 게 맞습니다.
우리 인생은 생각보다 짧아요.
내가 불편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면 그 반대쪽 선택을 하는 건 당연합니다.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소중하니까요.
세상의 모든 며느리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번 브런치 연재를 마칠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