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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16. 2022

그때가 더 좋았던 이유 딱 하나

-아드리아해 사구(砂丘)의 작은 보고서 IX


봄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린 사람들.. 그들은 무엇을 기대했을까..?



모래 언덕에 잔주름(?)이 새겨진 이곳은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바닷가에 있는 사구의 풍경이다. 나지막한 모래 언덕 꼭대기에 앙증맞은 풀꽃들이 보인다.



사구 곳곳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앙증맞은 풀꽃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주름의 정체는 다름 아니다.



밤 사이 아드리아해가 밀어 올린 바람이 흔적을 남긴 것이다. 지난겨울 내내 바람은 사구 언덕에 당신이 다녀간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서기 2022년 3월 중순(15일).. 봄이 오셨다.



아드리아해 사구(砂丘)의  작은 보고서


아드리아해 사구(砂丘)의 작은 보고서 I, 우리 동네 바를레타에 찾아온 봄소식

아드리아해 사구(砂丘)의 작은 보고서 II, 달님은 부끄럼쟁이

아드리아해 사구(砂丘)의 작은 보고서 III,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세상

아드리아해 사구(砂丘)의 작은 보고서 IV,  봄나들이 나선 귀여운 요정(妖精)들

아드리아해 사구(砂丘)의 작은 보고서 V, 매우 특별한 우리 동네 반찬가게

아드리아해 사구(砂丘)의 작은 보고서 VI, 그곳에 칠성무당벌레가 산다

아드리아해 사구(砂丘)의 작은 보고서 VII, 바람은 풀꽃 요정과 함께

아드리아해 사구(砂丘)의 작은 보고서 VIII꽃양귀비 피어나는 언덕 위에서

아드리아해 사구(砂丘)  작은 보고서 IX, 그때가 더 좋았던 이유 딱 하나




그때가 더 좋았던 이유 딱 하나


사구 곁에는 차도가 있고 바를레타 시민들은 이 길을 따라 반환점을 돌아오곤 한다. 시내서부터 반환점까지 거리는 대략 5km이며 왕복 10km에 해당하는 거리이다. 자료사진 우측으로 숲이 조성되어 있으며, 숲 가까이 모래밭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 끄트머리에 아드리아해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다. 사람들은 3월이 오시기 전까지 이 길을 따라 아침운동을 했다. 하니와 나도 그랬다.



하니의 그림 수업이 없는 날은 산책 삼아 이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으며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매일 아침 이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때마다 나의 뷰파인더는 행복에 겨웠다.



바람이 지나간 흔적을 따라 걸으며 "사람들의 바람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도 해봤다.



사구 너머 평원에는 아침 일찍 한 농부가 심어둔 야채를 수확하는 장면이 보인다. 농부의 아침은 행복해 보인다. 수확한 야채는 얼마간의 비용으로 만들어질 것이며,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는 이제나 저제나 당신의 남편이 돌아오길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문화를 대입해 보면 남편이 돌아올 시간을 기다렸다가 따뜻한 밥을 지어놓고 된장국을 끓여놓았다고나 할까..


밤사이 사구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며, 바람 외에 또 다른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남아있다. 우리도 알게 모르게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들은 나타났다 지워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겨울을 소환해 볼까..



사람들은 무시로 봄이 오면.. 봄이 오시면.. 하고 중얼거렸을 것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시기를 기다릴 것이며, 그때 만날 봄소식 들을 기웃거릴 것이다. 이곳 바를레타의 겨울은 절기상 겨울이지만 일찌감치 사구 너머로 봄이 오셨다. 



나는 하니와 함께 이 길을 걸으며 봄을 만끽하며 봄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다. 



바닷가에도 봄이 찾아오셨다. 햇살에도 봄이 묻어났으며 돌 틈 사이로 파래가 파릇파릇 돋아났다.



봄이 오시기 시작하면 바다 빛깔도 달라지고 얼굴에 와닿는 바람의 결도 한결 부드럽다.



아침나절의 산책에서 만나는 봄의 풍경들.. 그런데 사람들의 느낌은 사뭇 더디다. 봄이 코 앞에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느끼지 못한다. 온갖 꽃들이 만발해야 비로소 "봄이다"하고 실감을 하는 것이다. 



그때쯤이면 봄은 저만치 멀어져 간다. 봄날이 가는 것이다. 봄날은 꽃봉오리만 열어젖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까지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불과 3월 9일까지만 해도 내 조국 대한민국은 봄이 오시는 듯했다. 춘삼월이면 봄소식 가득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부터 전혀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코 앞에 다가왔던 봄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내 앞에.. 우리 앞에 나타났던 아름다운 풍경에 서서히 어둠이 깃드는 것을 느끼게 됐다. 내가 사랑했던 자잘한 풍경 속에 걱정과 근심이 끼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전혀 불필요한 걱정과 근심이 3월 10일부터 시작 되면서 바를레타 사구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찾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기댈 언덕'이 사구처럼 무너져 내린 듯.. 언덕을 스쳐 지나는 바람처럼 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컴을 켜고 사진첩을 열어 아드리아해의 사구에 대한 단상을 끼적거리는 일조차 바람결을 닮았을까.. 3월이 오시면서.. 봄이 코 앞에 다가서면서 나의 자존감이 점점 더 조국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나는 어느 날부터 내 조국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존감을 회복할 때까지 마음에 사구를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Notizie di primavera arrivate nel sud d'italia_il Mare Adriatico
il 15 Marz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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