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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Oct 29. 2022

품위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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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5회로 연재됩니다】


허가건축과 편법허가 문제를 큰 덩어리로 삼고 출입국관리사무소 연계와 도청의 부실감사를 연결하느라고 이틀을 꼬박 회의에 매달렸다. 박은 이참에 꺽다리를 파면시켜야 한다고 성토했다. 꺽다리의 직접적인 뇌물 수수는 드러난 게 없다. 대신 해동시가 해상풍력발전 사업자 황 사장과 MOU를 체결하는데 주도했고, 황 사장이 다리를 놔서 아들이 VIP실 행정관이 되었다. 박이 꺽다리 처분에 감정적으로 대응한 이유는 지피는 게 있다. 새 권력자가 하늘에서 내려오면 줄이 바뀐다. 박이 새 국장과 고등학교 동문인 사실과 평소 선후배에 밀착한 일화에서 보듯 줄 서기 좋아하는 인물은 앞줄에 서고자 희생양이 필요하다.      


박이 일벌백계 논리를 펴며 꺽다리를 두드리자 송이 아들은 건드리지 말자고 선을 그었다. 부모 마음을 건드려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원칙 없는 주장이었다. 나는 꺽다리완 별도로 올백의 비리에 초점을 맞췄다. 올백은 중국 업자들과 어울려 술 얻어먹고 해양관광단지 조성사업 참여를 허가했다. 올백의 무책임한 공무감각은 중국인들이 항만 근처 대규모 토지를 취득하도록 사전정보를 빼돌린 일까지 저질렀다. 국가기간시설물에 인접한 외국인 토지 수용은 향후 문제 발생이 예상된다. 감사 진행 중에도 조직 폭력배가 운영하는 대형 음식점 사전 허가까지 법을 대놓고 무시했다. 보고서가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부장이 불렀다. 이 경우에는 부장이 이미 국장과 입을 맞추고 결론을 내린 상태이다.


전임 국장은 퇴임식 없이 나갔다. 바뀐 국장이 출근 전부터 국장실 공사로 시끌시끌했다. 벽지부터 천장 조명에 멀쩡한 방문과 창문이 교체됐다. 2주에 걸친 공사가 끝나자 고급 수입 가구가 트럭에 실려 왔다. 책상과 의자 가격만 해도 9급 연봉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직사각형 회의 탁자가 있던 자리에는 러닝머신과 골프 퍼팅 연습 매트가 설치됐다. 안 그래도 코로나 봉쇄시기에 외부 작업자들이 우르르 출입한다고 회계팀장 눈꼬리가 연일 날을 세웠다. 회계팀에 품의서를 제출하고 온 장대리가 스파이처럼 몸을 내 쪽으로 기울여 모기 소리로 말했다.      


-찻잔도 중국산 가품 말고 프랑스제 에르메스로 바꾸라고 했답니다.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있는 수입매장에 있다고 알려줬다네요. 가 팀장님이 찾아봤더니 잔과 접시 두 세트에 육십만 원이 넘는데요. 지가 무슨 루이 14세야. 코로나 때문에 자영업자들 폐업하고 원자재가 상승으로 물가 치솟는 요즘에 공직자가 미친 짓을 버젓이 하네요. 커피도 캡슐머신으로 싹 바꾸고, 국산 인삼차 말고 이름도 어려운 프랑스 명품차 꼼빠니앤콘지 뭐시기 홍삼차 사라고 했답니다. 가 팀장님이 안 그래도 메니에르가 재발한 사모님을 집에 혼자 두고 출근한다고 미칠 것 같다고 그러셨거든요. 막 육두문자 나오고 지금 살벌해요

-러닝머신 하고 골프 매트는 자기가 산 거래?

-아뇨. 그것도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대요. 옷걸이도 5성급 호텔방에 있는 캐나다산 단풍나무로 만든 거로 갖다 놓으라고 했고요. 청담동 어디 가면 있다고 콕 집어서 일러줬다는데 이 정도면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것 맞네요. 이래서 낙하산은 안 돼요     


새 국장은 지난해 호국재건위원회 상임 위원회 뒤풀이에서 국민은 개돼지이며 개돼지를 이끄는 지도자는 강하게 밀어붙여야 부강국가가 된다고 말했다. 한 언론사에서 공개한 녹취에서 얼큰하게 취한 목소리로 본인이 취임하면 언론사를 정리하겠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국장은 잠시 여론의 포화를 받았지만 이내 고급 관용차를 타고 출근했다. 서울대 수석 입학과 졸업을 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따고도 와튼 로스쿨을 졸업한 국장은 미국 재무성 공공 재정 위원회에서 수석 위원으로 있다가 귀국 후 대형 로펌을 거쳐 서울의 모 사립대 대학원 원장으로 재직했다. 남들이 나와 세계, 나와 사회, 나와 타인 관계를 고뇌하고 궁리할 때 수학 문제 한 개 더 풀고 영어 단어 달달 외우며 공부를 탐구가 아닌 출세 수단으로 삼은 성취다. 구도장원공이 공공감사 실권자로 내정됐을 때 부장은 현미경 검증을 통과한 진짜 전문가가 온다며 더 열심히 일하자고 너스레를 떨었다.


새 국장 취임 회식은 팀별로 진행됐다. 에 국장과 연결된 호국재건위원회 정보를 듣고 오목가슴에 꽝꽝 언 바위덩어리 눌러 놓은 것 같이 뻐근했다. 독일문화원 옆 초원 일식당으로 가는 길에 여리여리한 개나리꽃 무리가 퇴근하는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몸을 뒤척였다.      


-아이참, 나 술잔 비었잖아

-두 잔 드렸잖아요

-그건 그거고

-이젠 국장님이 직접 따라 드셔야죠      


부장이 호리호리한 술병을 잽싸게 집어 국장 술잔을 채웠다. 장대리는 내 얼굴을 흘깃 쳐다보고 8급 서와 정은 무표정하게 젓가락질을 했다. 장대리 옆자리 9급 최가 긴장한 듯 손을 모으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입술도 안 댄 잔을 바라보던 국장 목소리가 살짝 카랑해졌다.     


-생선 가시 발라줘야 먹지. 거기 티슈로 내 입도 쓱 닦아주면 좀 이쁘나. 이럴 땐 팀장이 모범을 보이는 기라

-국장님, 제가 발라드리겠습니다. 접시 이리 주십쇼

-부장은 체통 좀 지켜. 부장 따는 데 몇 년 걸렸나?

-19년 걸렸습니다

-허어, 성과가 안 좋았나?

-앞으로 분발하겠습니다!

-팀장은 13년 차 라면서? 한참 늦은 거 아이가? 난 팀장이 여자인 데다가 이쁜 신참이 있어서 분위기가 사근사근할 줄 알고 오늘 회식 기대했다 아이가. 엊그제 회식한 감찰팀이나 운영팀처럼 쌍방울 단 놈들끼리 마주 보고 있으면 쉰내 밖에 더 나나. 2차도 지 불알들이나 만지고 있고. 사내새끼들끼리 재미 하나도 없지 뭐. 어, 그래 팀장 정도면 묵은지지. 파릇파릇한 막둥이가 내 옆으로 온나. 저 보들보들한 피부 봐라, 애기야 애기. 아, 팀장하고 막내는 어여 자리 바꾸라 마

-국장님, 막내는 건드리지 마셨으면 하는데요

-아니 팀장, 누가 막낼 건드린다꼬? 클 날 사람이네. 내 말은 화기애애하자는 거야

-국장님은 직원이 술시중 들고, 생선가시 발라 드리고, 티슈로 입 닦아 주고, 장단 맞춰주는 걸 화기애애하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그런 접대받고 싶으시면 단란한 장소로 가셨어야죠


젓가락으로 회 한 점을 집어든 부장이 손을 내저었다.


-어, 팀장. 고만고만. 국장님, 요새 팀장이 해동시 건으로 예민해져서 그럽니다

-이봐, 부장! 이 팀 뭐 이따위야. 내가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상사 술 따르고 생선 가시 발라준다고 손모가지가 부러져? 엉? 막내 시키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팀장 니가 하든가. 뭐? 단란한 장소? 접대? 내가 그런데나 다니는 비도덕적인 인간으로 보이나? 니 화장도 좀 하고 꾸미고 다니라. 여자가 되아갖고 이게 뭐꼬. 분홍에 노랗고 하늘하늘한 그런 옷 입으면 알러지 생겨? 여자로 태어난 게 억울하면 뭐 하나 달고 태어났어야제. 니들 차별받는 거 싫다 카는 데 어차피 이 세계는 구조적으로 태생이 그래. 지금이 모계사회가 아니잖아. 피 터지게 투쟁해서 쟁취하는 사나이들의 부계사회란 말이다. 그걸 인정하고 순응하면 인생이 조금은 편해진다 아이가. 봐라, 마. 캐스팅 카우치도 알고 보면 여자에게 기회를 더 만들어준 기야. 성평등이니 뭐니 가시나들이 떠드는데 여자는 남자 그늘에 폭 안겨서 살 때 행복한 기라. 아, 얼매나 좋나. 힘든 일은 남자들이 대신 다 해 주고 방패막이 돼 준다 카는데. 인생 선배로서 내가 진언하는데 팀장 너는 말야, 인생 이따위로 살면 안 돼. 뾰족뾰족하지 말고 둥글게 둥글게, 둥글이로 살아야 복이 온다 안 하나


갑자기 순두부처럼 말캉말캉해진 국장 목소리를 듣자 정수리 끝까지 아드레날린이 쭉쭉 뻗었다. 마침내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다. 침을 한번 꼴깍 삼킨 다음 젓가락을 상 위에 가만히 내려놓고 나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국장님은 아직도 남근기에요? 상대야 어떻게 되든 말든 잔뜩 힘만 줘서 지 욕망만 배출하는 그깟 물건이 뭐가 대단합니까? 그래봤자 코드피스 자존심 밖에는 내세울 게 없잖아요. 그리고 부계사회 말씀하셨는데요. 국장님이 보기에는 1,2차 세계대전에 그 많은 전쟁과 학살로도 성에 안 차나 보네요.

   

도끼눈을 뜬 국장이 안경을 고쳐 쓰자 부장이 손을 뻗어 내 입을 막으며 눈을 두어 번 끔벅끔벅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부장님, 죄송하지만 언제 이런 말 할 기회가 있겠어요. 오늘이 적기네요. 저는요, 연령과 성별과 지위와 권력 서열을 따지며 충성도 강요해서 줄 세우고 성희롱이나 명예훼손 개념도 없고 남 깔보는 것도 선을 지켜야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는 뼛속까지 징글징글 한 인간은 죽이고 싶어져요. 알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어 계속 괴롭힘을 당하다 보면 왜 그런 생각이 안 들겠어요. 그냥 두면 내 정신이 피폐해지고 인생이 처참해지는데

-시방 니 주제에 감히 나를 능멸하려고 들어? 뭐, 죽이고 싶다고? 니 까짓 게? 이야, 살 떨려서 말이 안 나오네. 이 년이 진짜 겁도 없이!    

 

국장이 손을 들어 내 얼굴 가까이 들이댔다가 씩씩대며 일어나 방석을 발로 걷어찼다. 휴대폰을 만지던 장대리가 국장을 빤히 올려다봤다.      


-국장님, 지금 녹화 중입니다. 부장님 이하 저희 모두에게 사과해 주십시오

-야! 장대리까지 왜 이래? 국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부장이 국장의 한쪽 팔을 잡는 순간 상이 뒤엎어졌다. 짝짓기에 실패한 수탉처럼 얼굴에 새빨간 핏발이 우두둑 선 국장이 젓가락을 들어 장대리를 찌르는 시늉을 하며 나에게 침을 뱉었다. 침은 음식이 튀어 얼룩이 진 바짓가랑이 앞에 떨어졌다. 금가루가 묻은 광어 살점을 셔츠에서 떼어내며 장대리가 태연히 말했다.   


-저희는 개돼지에요?

-그래, 이 개새끼들아.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니들 같은 축생이 알리가 없지! 유학 근처도 못 가보고 고작 국내 대학이나 나와서 빌빌 기며 한 달에 이백 삼백 버는 주제들이 뭘 알겠나. 니들은 그것도 밥벌이라고 한다카면서? 니들 ‘멋진 신세계’라는 책 읽어봤나? 거기서 니들 같은 하층계급을 엡실론이라고 부르지. 엡실론은 지성이 필요치 않다 이기야. 왜냐! 사회에 중추적인 도움이 안 되는 천민들은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거지 뭘 배우고 할 필요가 없는 족속들이야. 배움이란 건 액티브 한 건데 맨날 쥐꼬리만 한 월급날만 기다리면서 희망이 어쩌고 하는 니들이 이 사회에 뭘 기여하겠나. 늙어서 리어카 끌고 폐지나 줍지 않으려면 이 세계를 좀 크게 내다봐라. 기껏 말꼬투리나 잡고 지랄들 떨지 말고. 세상 참 좋아졌다 안 하나. 사문난적 같은 허접들이 씨부렁거리는 거 봐라. 이래서 민주는 위험해! 옛날 같았으면 다 골로 보내졌을 새끼들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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