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커피. 매미가 울어대는 여름 한낮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쭈욱 들이켜면 머릿속까지 쨍하고 눈이 말똥 해진다. 포근포근 눈 내리는 날 카페에 앉아 시나몬 가루가 솔솔 뿌려진 카푸치노를 마시는 때가 그리워진다. 부드러운 거품과 쌉싸름한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며 책을 읽다 보면 커피 향과 분위기에 취한다. 캐러멜 마끼아또는 어떠한가? 캐러멜처럼 진득한 커피에 휘핑크림을 잔뜩 올리면 다이어트 따위는 떠오르지 않는다. 새하얀 휘핑크림을 듬뿍 퍼먹고 커피를 마시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런데 난 커피를 끊은 지 일 년 가까이 되었다. 이유는 잠이 안 와서이다. 어느 날 침대에 누웠는데 잠들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처음에는 몸이 너무 피곤해서 잠이 안 오나 했다. 새벽 네 시경 겨우 잠들어도 일곱 시면 남편 출근과 아이들 등교준비로 일어나야 했다. 식구들을 보내고 눕고만 싶었지만, 나도 일정이 있어 바로 채비해 나가야 했다. 일주일가량 수면 시간이 많아야 하루에 세 시간 정도 됐다. 계속 머리가 아프고 신경이 예민해졌다.
인터넷에 불면증을 검색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커피가 눈에 띄었다. 평소에 커피를 마셔도 아무 이상이 없던 사람도 체질이나 호르몬 변화 등으로 갑자기 잠이 안 올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그제야 나도 '커피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간 관계없이 하루에 두세 잔 마시던 커피를 오전에만 한잔 마시고, 오후에는 마시지 않기로 했다. 그랬더니 다행히 잠이 잘 왔다. 푹 자고 났더니 몸도 가볍고 기분도 좋았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났을 무렵, 다시 새벽까지 잠 못 드는 날이 생겼다. 아무래도 오후에만 마시지 않는 걸로는 안 되는 듯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난 커피를 아예 끊기로 했다.
잠을 푹 자는 거 외에 커피를 끊고서 좋은 점이 하나 더 있다. '차'를 맛보게 되었다. 나는 목감기에 종종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 겨울이면 집에서 병에 담긴 생강차, 레몬차, 유자차를 사두고 수시로 마셨다. 어릴 때는 선물세트에 있던 구기자차도 좋아했었다. 이러한 경험으로 차에 부담은 없었다. 그리고 요즘은 카페에 차 종류가 많고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차를 마셔볼 수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만나면 친구, 모임선생님, 부모님은 평소에 마시는 커피를 바로 주문한다. 하지만 나는 방문한 카페에 무슨 차가 있는지, 오늘 난 무엇을 마시면 좋을지 찬찬히 보고 한참을 고민해 결정한다. 커피는 내 선택지에 없지만 나의 선택을 기다리는 많은 종류의 차가 있다. 내게만 특별히 커다란 메뉴판이 펼쳐진 느낌이다.
폭염주의보 안전문자가 왔다. 낮 최고기온이 35도가 넘으니 외출을 자제하라는 내용이다. 도서관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5분 새에 땀이 흘러 눈으로 들어갔다. 따가워 휴지로 땀을 닦아내면서 보니,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손에 커피가 들려있다. 정류장 앞에 커피전문점이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샀다. 빨대로 조금씩 아껴가면서 마신다. 커피 한 모금에 밤잠 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