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교적 다른 사람들보다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원하는 게 뭔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의 영역이었는데 가끔은 알아챘다는 걸 상대방에게 알릴지 말지 고민할 때도 있었다. 그러니 좋게 말하면 영리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영악하다고. 아빠는 언제나 통통하고 거대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치가 참 빠르구나 말씀하시곤 했다. 투박하지만 다정한 손길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거의 사랑했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아빠에게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부르턴 물집과 생긴 지 오래된 굳은살이 박혀 있었고, 그 손을 자랑처럼 내보이는 습관이 있었다.
저 건물 보이지. 저기에 내 손이 스쳐간 거야.
손가락으로 신축 아파트를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말하셨다. 아빠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감동, 당신의 일을 향한 애정 어린 사랑이 담겨있었다. 나는 그런 아빠를 보고 자랐다. 저기에 당신이 없으면 안 된다는,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는.
나도 아빠처럼 건물을 만드는 건축사가 되고 싶었다. 저기에 내 손이 스쳐간 거야. 건축을 사랑하는 아빠에게 자랑이 되고 싶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보이세요? 아빠, 저 건물 제가 만든 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아빠는 물집과 굳은살이 베인 통통하고 거대한 손으로 투박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겠지. 어쩌면 부녀가 함께 일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림에는 조예가 없었지만 설계하는 일이라면 도가 텄다. 계획을 설계라고 해도 무방하다면. 거기에 내 눈치까지 더한다면 어쩌면, 더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참 단순한 발상이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계획을 세워놓는 편이 편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를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맞이하는 건 끔찍하니까.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미리 계획을 세우고 싶었다.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진리이자 안전하게 미래를 맞이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맞는 말이었다. 내가 계획에 집착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누가 알았겠어. 통통하고 거대한, 한때는 다정하게 느껴졌던, 물집과 굳은살이 박힌 단단한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게 아닌 내 뺨을 후려치게 될 줄.
얻어맞은 뺨이 얼얼했다. 뺨에 한쪽 손을 갖다 대었다. 차가웠다. 사실 그저 비유일 뿐, 물리적으로 얻어맞은 적은 없었다. 만약 뺨을 얻어맞은 게 진짜였다면, 그러니까 진짜 진짜였다면, 뺨은 빨갛게 부어올라 피가 났을 것이다.
알고 보니 아빠는 두 집 살림을 하고 계셨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첩 사이에 둔 자식이 없다는 점뿐이었다. '유산'이라는 말이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 시끄러운 바깥을 피해 들어간 방 안에서 얼핏 들었던 단어라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아빠가 긴 머리에 붉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와 함께 모텔로 들어가는 걸 봤고, 그대로 엄마에게 보고했다. 아, 물론 모텔에 들어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딘가'에 들어갔다는 말만 바꿔 전했다. 당연하게도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꼴은 내 계획에 없었기 때문인데 그때 난 시외버스와 시내버스를 분간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은 초등학생이었고 새로 출시한 게임기를 사주지 않은 엄마에게 화가 나 있던 참이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엄마를 골려주기 위해 굳이 했다는 것이다.
그날 밤 엄마 아빠는 집안이 떠나가라 한차례 부부싸움을 했고, 이웃집이 신고를 했고, 자기네들 자식이 아닌 제삼자 어른의 개입이 있어야 겨우 멈출 수 있었고, 목에 핏대 세우며 입을 벌리는 행위를 마침내 멈췄다. 적막이 소름 끼치게 감도는 거실에서 아빠는 그대로 집을 나갔다. 엄마는 빨래를 널지도 않고 바닥에 주저앉은 채 시끄럽게 울어댔다. 활짝 열린 창문 바깥으로 찬 바람이 불어왔다. 맴맴. 한 밤 중에도 매미가 울었다.
가끔은 그때를 떠올리며, 매미가 울던 밤을 떠올리며 내가 도대체 왜 그랬는지 따져보곤 했다. 친구와 같이 게임하기로 했던 약속이 틀어져서 그랬나? 멍청하지 않은 초등학생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할 말 못 할 말 구분하지 못하는 멍청한 초등학생이라서 그랬던 건가? 눈치가 빠르니까, 알고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면 엄마가 슬퍼할 거라는 것을 알았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했다. 어째서 그랬을까. 엄마를 벌주기 위해서였을까. 나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가 두 집 살림을 한 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엔 나는 어렸다. 아빠가 그렇게 된 게 내 책임 같았고 엄마가 그렇게 된 게 내 잘못 같았다. 아빠가 자랑스럽게 건물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던 날, 엄마도 함께 있었다. 당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던 아빠가 있었고 아빠를 향해 애틋함을 담은 엄마의 미소가 있었다. 머리 위로 샛노랗게 물든 노을이 지고 있었다. 거기에 나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없다. 아무도 거기에 남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이혼소송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빠가 양육권을 포기하면서 나는 자연스레 엄마와 살게 되었다. 내 아이는 내가 데려가겠다는 티비 막장 드라마 같은 일은 없었다.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더 불쌍한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으니 잘 된 일이었다. 아쉬움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이혼 도장을 찍을 때 아이는 그저 방해만 될 뿐이었다. 그렇게 말했다. 아마 엄마도 마지못해 나를 받아들였을 거라고. 몇 달이 지나 법적으로 남이 되었을 때 아빠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마지못해 마지막 인사를 하셨다. 코 끝이 시려왔다. 이번에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 통통하고 거대한 손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