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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dia Youn Jun 18. 2022

흙 속에 몸을 감춘 지뢰는 지금 웃고 있다

 나는 당신이 좋아할 만한 지뢰를 나와 당신의 사이 곳곳에 숨겨두었다. 당신이 그게 지뢰인지 아닌지 아는지 모르겠으나 당신은 가끔 그 지뢰를 밟고는 한다. 내가 그 지뢰들을 숨긴 이유는 다른데 없다. 당신이 좋아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했을 뿐. 나는 당신에게 많은 것들을 보여주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물론 다 보여주었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들마저 가끔씩 들키기도 했다. 사실 사람들은 쉽게 지뢰를 밟고는 한다. 장미를 지키는 가시처럼, 비옥한 땅 속에 지뢰를 숨겨두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화려한 꽃 향기에 정신을 잃어 지뢰가 숨겨진 땅을 밟고야 말 것인지 궁금했다.


 좋아요를 누르는 가벼운 손길들에 신물이 난다. 지뢰 인지도 모르고 웃으며 터져가는 사람들은 이제 우습지도 않다. 가끔 척박한  보물이 있음을 알아보는 레이더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지러운 머리를 떠받치고 사느라 삶이 피곤하다. 보이지 않게 숨겨놓은 것들이 쉽게 찾아지는 것도 퍽이나 피곤하다. 누구나 보라고 펼쳐진 것들에 구역감을 느끼는  또한 지친다. 하지만 지뢰를 숨겨두는 일을 멈추기에는 아직 삶이 길다.


 지뢰를 더 잘 숨기기 위해 비옥한 땅을 가꾼다. 더 화려한 꽃을 피우기 위해 가꾼다. 더 많은 사람을 지뢰로 터트리기 위해 가꾼다. 걸러지지 않는 불순물들을 거르기 위해 가꾼다. 꽃이 필수록 땅은 더욱 비옥해지고 내 창고의 지뢰는 제 자리를 찾아간다. 흙 속에 몸을 감춘 지뢰는 지금 웃고 있다. 멋진 정장을 차려입은 남녀가 꽃 향기에 이끌려 이곳을 찾았다가 말도 안 되는 폭발을 겪는 장면을 상상하며 희열을 느낀다. 나는 웃고 있는 지뢰를 마음속으로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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