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 환상 문학 06] 나쓰메 소세키 원작 夢十夜ー第一夜
열흘 밤의 꿈 (夢十夜)
원작: 나쓰메 소세키 | 번역: 유은경
첫날 밤
이런 꿈을 꾸었다.
팔짱을 끼고 머리맡에 앉아 있자니, 바로 누운 여자가 나직한 목소리로 “곧 죽습니다”라고 말한다. 여자는 긴 머리를 베개 삼아, 오이씨처럼 갸름하고 하얀, 그 부드러운 윤곽의 얼굴을 머리 베개 속에 뉘어 놓았다. 새하얀 볼 안쪽으로는 따스한 피의 빛깔이 은은하게 비치고, 입술은 물론 붉다. 도저히 죽을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자는 나직한 목소리로, “곧 죽습니다”라고 또렷이 말했다. 나도 '이것은 죽겠구나'하고 느꼈다. 그래서 “그럴까? 곧 죽는 걸까?”라고 위에서 내려다보듯 물어보았다. "죽는답니다." 여자는 대답하며 눈을 반짝하고 떴다. 크고 촉촉한 눈이었다. 긴 속눈썹으로 둘러싸인 그 안은 새까맸다. 그 새까만 눈동자 깊숙이 내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다.
나는 투명할 정도로 깊어 보이는 그 칠흑 같은 눈의 광택을 바라보며, 이런 데 죽는단 말인가 싶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베개 곁으로 입을 대고 "죽지 않을 거야? 괜찮을 거야"라고 되풀이해서 들려줬다. 그러자 여자는 검은 눈을 졸린 듯 부릅뜬 채, 역시 나직한 목소리로 "하지만 죽는걸요, 어쩔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럼, 내 얼굴이 보이오?"라고 마음을 담아 묻자, "보이느냐고요, 보세요, 거기에, 비치잖아요"라며 생긋 웃어 보였다. 나는 묵묵히 얼굴을 베개에서 떼었다. 팔짱을 낀 채, '정말 죽는 건가'하는 생각을 했다.
잠시 후, 여자가 다시 이렇게 말했다.
"죽으면 묻어 주세요. 커다란 진주조개 껍데기로 구덩이를 파세요. 그런 후에 하늘에서 떨어진 별 조각으로 무덤을 표시해 주세요. 그리고 무덤가에서 기다려 주세요. 다시 만나러 올 테니까요."
나는 언제 만나러 오느냐고 물었다.
"해가 뜨겠지요. 그리고 해가 저물겠지요. 그리고 또다시 뜰 거예요. 또다시 저물 거예요. - 붉은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떨어지는 동안 - 당신, 기다려 줄 수 있나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조용한 어조를 한층 높여,
"백 년을 기다려 주세요"라고 굳은 의지를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백 년, 제 무덤 곁에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꼭 만나러 올 테니까요."
나는 그저 기다리겠노라 대답했다. 그러자 검은 눈동자 안에 선명하게 보였던 내 모습이 흐릿하게 흐트러졌다. 잔잔한 물결이 흔들려 비친 그림자가 흐트러지듯, 흐려졌다 싶더니 여자의 눈이 파르르 감겼다. 긴 속눈썹 사이로 눈물이 뺨으로 흘러내렸다. - 이미 죽어 있었다.
나는 그 후에 마당으로 내려가서 진주조개 껍데기로 구덩이를 팠다. 진주조개는 표면이 매끄럽고 가장자리가 날카로운, 커다란 조개였다. 흙을 퍼낼 때마다 조개 안쪽에 달빛이 비쳐 반짝거렸다. 눅눅한 흙 내음도 났다. 구덩이는 얼마 안 되어 다 팔 수 있었다. 여자를 그 안에 뉘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흙을 위에서부터 가만히 부었다. 흙을 부을 때마다 진주조개 안쪽으로 달빛이 비쳤다.
그 후에 떨어진 별 조각들을 주워 와 가볍게 흙 위에 올려놓았다. 별 조각은 둥글었다. 오랜 시간 드넓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동안 모서리가 깎여 매끄러워졌을 거라 생각했다. 별 조각을 가슴에 품어 흙 위에 올려놓는 사이, 내 가슴과 손이 조금 따뜻해졌다.
나는 이끼 위에 앉았다. ‘이제부터 이렇게 백 년 동안 기다리는 거구나’하며 팔짱을 끼고 둥근 묘비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여자 말대로 해가 동쪽에서 떴다. 커다랗고 붉은 해였다. 그것이 또 여자 말대로 이내 서쪽으로 졌다. 붉은빛 그대로 느릿하게 저물어갔다. '하나'하고 나는 수를 세었다.
얼마 후 다시 진홍빛 태양이 느릿느릿 떠올랐다. 그러고는 묵묵히 저물어버렸다. '둘'하고 또 수를 세었다.
그렇게 하나, 둘 세어 가는 동안, 붉은 해를 몇 개나 보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세고 또 세어도 다 셀 수 없을 만큼 붉은 해가 머리 위를 지나쳐 갔다. 그런데도 백 년은 아직 오지 않는다. 마침내 이끼가 낀 둥근 돌을 바라보며 나는 여자에게 속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돌 밑에서 비스듬히 나를 향해 푸른 줄기가 뻗어 나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길게 뻗어 올라 내 가슴 언저리까지 와닿았다. 그런가 싶더니 부드럽게 흔들리는 줄기 꼭대기에서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던 가느다랗고 길쭉한 꽃봉오리 하나가 볼록하게 꽃잎을 열었다. 새하얀 백합이 코끝을 스치며 뼛속까지 사무치는 향기를 풍겼다. 그때 아득한 위에서 이슬이 똑 떨어지자, 꽃은 자신의 무게를 못 이겨 흔들흔들 움직였다. 나는 얼굴을 앞으로 내밀어 차가운 이슬이 맺힌 하얀 꽃잎에 입을 맞추었다. 내가 백합에서 얼굴을 떼는 찰나, 무심코 먼 하늘을 바라보니 새벽 별 하나가 홀로 반짝이고 있었다.
"백 년은 벌써 와 있었구나."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튿날 밤은 이후 연재로 이어집니다.
* *AI로 이미지 생성했습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기다림은 시간의 경계를 허문다"
오이씨 같은 얼굴(瓜実顔)이 자아내는 기묘한 미학: 소세키는 죽음을 앞둔 여인을 이국적이고 고전적인 미인으로 묘사합니다. 특히 일본 전통 미인의 상징인 '오이씨처럼 갸름한 얼굴'과 붉은 입술의 대비는, 죽음조차 앗아가지 못한 생명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진주조개와 별 조각: 여인은 자신의 무덤을 파는 도구로 '진주조개'를, 묘비로는 '하늘에서 떨어진 별 조각'을 원합니다. 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브제들은 이 꿈이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를 향한 숭고한 의식임을 암시합니다.
백 년의 역설, '벌써 와 있었구나': 주인공은 하나둘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세며 백 년을 기다립니다. 의심과 지루함이 극에 달한 순간, 땅 밑에서 백합이 피어나고 향기가 뼈 사무치게 스며듭니다. 물리적인 백 년이라는 시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꽃이 피어나는 그 '찰나'가 바로 약속이 이루어지는 '영원'의 시간임을 소세키는 결말을 통해 보여줍니다.
* 일본에서는 미인의 얼굴을 오이씨에 비유하는 듯합니다. 머릿속에 오이씨를 떠올려 보면 그럴 듯해 보입니다. 건강한 미인보다는 병약한 모습, 약간은 창백한 모습이 오이와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는 그 표현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약간 어색할지 모르지만, 오이씨와 같은 병약한 모습의 미인을 상상해 보는 것도 일본문화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 인간 심연의 고독을 들여다본 대문호"
일본 문학의 자부심: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천 엔 지폐의 주인공이었을 만큼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작가입니다. 영국 유학을 통해 서구의 지성을 흡수하면서도, 일본인 특유의 윤리의식과 고뇌를 세련된 문장으로 풀어냈습니다.
지성 너머의 세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같은 초기작에서는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을 보여주었고, 후기작 《마음》에서는 인간의 근원적인 이기심과 외로움을 탐구했습니다.
꿈으로의 도피 혹은 직면: 오늘 소개하는 《열흘 밤의 꿈》은 그가 심한 신경쇠약과 위궤양으로 고통받던 시기에 쓰인 작품입니다. 현실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무의식과 환상을 열 가지 꿈의 형태로 형상화하며, 소세키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유튜브에서 일본어 원작을 자막, 한국어 낭독으로 들어 보세요~! <여기를 클릭>
01. 하라 다미키, 〈지붕 위에서〉 보러 가기
02. 니이미 난키치,〈빨간 양초〉 보러 가기
03. 오가와 미메이, 〈달밤과 안경〉 보러 가기
04. 하라 다미키, 〈휘파람새〉 보러 가기
05. 니이미 난키치, 〈사탕〉 보러 가기
06. 오가와 미메이, 〈까마귀와 허수아비〉 보러 가기
07. 무로 사이세이, 〈신비로운 물고기〉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