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밝은 애인아_ 13
아무도 모르게 키우는 나무
아무도 모르게 키우는 나무
나는 아무도 모르는 나무를 한 그루 키우고 있습니다.
처음 나뭇잎이 팔랑팔랑 내게 날아들었을 때 나는
아름답게 물든 이 갈색잎을 두꺼운 책속에 끼워두었습니다.
잘 펼쳐보지는 않는 책이었죠.
시간이 구름처럼 흐른 어느날, 문득 펼쳐본 책 속에서
나는 그 나뭇잎을 다시 보았습니다.
색은 좀 죽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갈색잎입니다.
나는 그 잎을 내가 아끼는 수반 위에 띄워놓았습니다.
바싹 마른 잎에 물기가 스며들더니
잎맥이 되살아나고 붉그스레 색도 살아납니다.
생생해진 나뭇잎은 잎자루 끝에 가는 털실 같은 뿌리를 내렸습니다.
뿌리가 소담하게 무성해졌을 때 나는 그 잎을 촉촉하고 부드런 흙속에 심었습니다.
잎이 숨을 쉬는 소리가 들립니다. 가만히 고른 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나는 매일 나뭇잎이 자라는 것을 들여다봅니다.
나뭇잎은 성큼 팔을 뻗고 새 싹을 밀어올려 작은 나무가 되었습니다.
가끔 종알종알 말도 하고 으쓱거리기도 합니다.
오늘은 가는비가 내렸다고. 통통해진 뿌리 좀 보라고.
말라가던 내 마음에도 비가 내립니다.
가시나무처럼 삐죽한 얼굴에도 윤기가 돌아오고
천천히 몸이 따스해집니다.
나도 가만가만 숨을 쉽니다.
몸속 세포들이 웃는 소리가 들립니다.
나무 하나, 여기 자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