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딸을 위해 연애소설을 쓰다.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 사랑을 한다.
학창 시절 선생님을 사모해 밤 잠을 설치기도 하고
첫사랑의 열병으로 부모님도 안쓰러울 만큼 망가지기도 하며
첫 아이를 품에 안고 너를 위해 내 전부를 걸겠다 다짐도 한다.
사랑은 숭고하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적이 없다.
하지만 연애는 다른 문제다.
연애는 사랑과 동의어가 아니기에
사랑은 추상적 관념이지만
연애는 구체적 행위이기에
우리의 연애는 형상을 갖는다.
나쁜 연애.
나는 딸을 키우면서
내 딸이 친구에게 차여 구질하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아이에게 말했다.
- 연애가 아니라 다행이야 -
그리고 결심했다.
나쁜 연애를 보여줘야겠다.
나쁜 연애가 무엇인지. 내가 직접 너에게 보여주리라.
나쁜 연애는 나쁜 사람과 하는 연애가 아니다.
나쁜 내가, 나와 다른 누군가를 만나서 하는, 사랑을 빙자한 행위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다.
각자 짊어진 운명의 수레 안에서
어린아이 하나를 업은 채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아이를 내 연애상대에게 투사하곤 한다.
불안을 달래줄 만병통치약을 찾는 간절함으로
우리는 나쁜 연애의 각종 역사를 써내려 간다.
너의 불안은 너의 것이며
너와 다른 우주를 통해 그것을 치유할 수는 없다고
조금은 차갑게 말해주고 싶다.
좋은 나를 찾을 때
우리는 비로소 편안하고 뜨거운 연애를 할 수 있다.
편안하지만 뜨거운 연애.
우리 모두가 바라는 그것이 아닌가.
좋은 나는.
나쁜 상대를 가려낼 수 있다.
좋은 나는.
나쁜 연애를 멈출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연인들이
좋은 연애만 하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며
아귀가 맞지 않는 내 픽션을 시작해 본다.
소설가와 드라마 작가들은 참 대단하다.
내가 과연 이 이야기의 종착점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지.
아줌마가 미래의 스무 살 딸을 위해 쓰는 연애 이야기의 결말은 어떤 방식일지 스스로도 모른다.
어차피 우리는 내일을 모른 채
오늘의 연애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