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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Jul 14. 2023

황혼무렵 시 한잔6-박준 광장과 비오는 언어의 정원

사랑하기 위해서 조심하고 거리 둬야 하는 사랑


.











그리스로마 신화 시절부터 사랑은 몸과 마음의 온 힘을 다해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무언가라는 로맨스 문학의 전통은 지금도 내려져온다. 하지만 오래된 전통은 단순하거나 단일하지만은 않은 법, 아내를 찾으러 저승까지 갔다가 고개를 돌아본 마지막 실수로 영원히 이별하게 된 오르페우스 이야기의 교훈처럼... 이뤄지지 못한 비극적 사랑 또는 사랑하기에 서로를 위해 거리를 두는 성숙한 사랑 또한 하나의 로맨틱한 전통이다. 그리고 그 전통은 21세기에도 이어지는 중 아닐까 시에서는 박준,  애니메이션에서는 너의 이름은 이전의 신카이 마코토 작품에서.


박준이 시에서 타이르듯이, 자신이 아름다운 소리를 지저귀는 새를 사랑하니까 새장에 새를 가둬서 키운다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새를 잡아 먹이를 주고 키워낸다며 뿌듯해하지만, 사실 진정으로 새를 사랑하고 위한다면 마당에 풀과 나무를 키우고 새 자유롭게 두는 게 최고의 사랑일 것이다. 사랑해서 새를 새장에 가두는 건 사실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나의 욕심과 이기심에 불과 수 있기에




신카이 마코토의 언어의 정원에 나오는 이 둘도 마치 박준처럼 조심히 사랑을 주고받는다. 우연히 일과를 땡땡이치다가 비오는 날의 공원에서 만나 고전시 단가를 주고 받으며 친해진 남녀 타카오와 유키노. 하지만 서로 이름도 직업도 중요한 신상은 묻지 않은 채 도시락을 나눠먹으며 만나다가 기운을 차린 여자 유키노가 복직하자 이 둘은 공교롭게도 학교에서 마주치게 된다.


남자 타카오는 학생이고 여자 유키노는 선생, 나이 차이도 그렇거니와 사회적으로 결코 용인될 수 없는 관계. 그럼에도 타카오생애 처음 거부할 수 없는 끌림에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한다.





하지만 유키노는 세상을 이미 겪을 만큼 겪은 28세의 성인 교사. 10살 넘게 차이나는 제자 타카오를 그만 다가오라며 밀어내고 거리를 두려 한다. 힘겹게 용기를 냈던 타카오는 크게 실망하고 그동안 고마웠다며 방문을 나선다.


그렇지만 유키노타카오가 싫어서 밀어낸 마음은 결코 아니었다. 교사인 자신이 학생을 사랑하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서로 어떻게 상처를 받고 결말을 맺을지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거짓 소문으로 음해를 당해서 미각을 잃어버리고, 직장을 출근하기 위해 걷기조차 잘 못하던 자신을 믿어주고 같이 진심을 나눠주고 일으켜 세워준 건 바로 한 사람밖에 없었기에 그녀는





마치 처음에 말한 오래된 로맨스 문학의 첫 번째 전통처럼 타카오를 있는 힘껏 끌어안는 유키노. 보통의 연애서사라면 여기서 바로 끝나고 그리고 그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 큰 어색함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재밌게도 신카이마코토 감독은 여기서 한번 더 서로 거리를 둔다. 둘은 흔한 로맨틱 코미디물처럼 알콩달콩한 학생과 교사의 금지된 비밀연애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서로 교사와 학생으로서 각자의 일상을 충실하게 보내기로 한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일까?



 그건 아마 박준이 시에서 말하듯 새를 사랑한다는 마음 때문에 함부로 상대를 새장 안에 가두려는 건 사랑이 아니니까... 학생과 교사였던 둘은 서로의 진심을 털어놓고 나서 그저 사랑의 돌격 앞으로가 아니라, 이제 진정한 의미로 성숙해지고 사랑하기 위해서 서로의 상황과 영역을 존중하는 어른스러운 사랑을 배우는 게 아닐까.


 이렇게 꿈 이야기를 하고 옥상에 널어놓은 흰 빨래들이 밤새 별빛을 먹고 노랗게 말랐다는 박준처럼, 타카오는 어느덧 겨울이 되자 홀로 여름의 그녀를 만났던 공원의 정자를 찾아간다 그리고 엔딩 소리 없는 독백이 흐른다







소복하게 눈 먹은 정자에 그녀도 왔었을까


그 인생의 장마철에 우연히 마주친 날처럼


언젠가 반드시 또 만나면 이젠 그녀의 옆에서


그때 함께 못한 초콜릿과 맥주를 같이 먹 


잃어버린 시간을 찾을 수 을까


황혼 무렵에 시 한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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