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파리 = 크로와상

야근에서 비롯되어 여행으로 도드라진 그녀&그의 여행일기

by 직업은투명인간

그녀와 나는 흔히 말하는 빵순이, 빵돌이다. 고양이가 생선나라를 머무는 것 마냥 파리는 우리에게 그런 곳이었다. 골목에서 빵집를 지나며 먹음직스러운 빵이나 디저트를 바라만 봐도 흐뭇했고, 파리에 도착해서 매일 오전일과는 빵집 도장깨기였다. 빵집에서 내적갈등에 빠졌다. 모험을 하는가? 익숙한 선택을 하는가? 구매한 빵들은 익숙하지 않는 비주얼로 모험에 가까웠다. 화려하고, 아기자기하고 눈으로 맛을 본다면 100점짜리 빵들이다.


눈과 입은 같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빵은 경계 할 필요가 있었다. 왜 그린컬러 토핑을 보고 아보카도라고 생각했을까? 피스타치오였는데...이런 실수를 하지말자고 했지만, 빵집에서 빵을 고르면 또 다시 반복되었다. 여러 곳의 빵집을 다녔지만, 빵에 대한 갈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빵집에서 구경하는 빵이 가장 맛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가 크로와상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크로와상? 조식으로 자주 나오는 그 빵, 초딩 입맛이였던 나한테 심심한 빵이었다. 그녀는 감이 좋다며 나를 선동했다. 인생 크로와상이 되길 바라며 그곳으로 향했다. 가는 골목길이 눈에 익었다. 그러고 보니 밤에 자주 지나던 길이었다. 밤에는 사람이 붐벼서 주변을 구경할 겨를이 없었지만. 오전 골목길은 여유가 있어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 인테리어며 상품진열까지 파리임을 증명하듯 센스가 넘쳐 골목을 지나는 발걸음이 즐거웠다. 코너만 돌면 빵집인데, 코너에 커다란 벽화를 보고 멈칫했다. 포옹하는 벽화였는데 뭔가 조심스러웠다.


빵집을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곧장 들어갔다. 가게는 좁았고 그동안 만났던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빵집과 거리가 멀었다. 우리의 목적은 분명했기에 빵집의 규모나 분위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침이라 가게에 손님이 꽤 있었지만, 크로와상은 여유가 있었다. 이번에는 과유불급을 떠올리며 적게 사보았다. 그 동안 과하게 사서 먹지도 못하고 방치한 경우가 허다했었다. 얼마나 맛있길래? 아침부터 찾아 왔으니 맛으로 보상해주길 바랬다. 숙소로 이동해서 먹기는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골목에서 빵 봉투를 열었다. 이곳을 찾은 그녀가 먼저 맛을 보았다. 침묵하며 먹는 그녀의 표정이 말해주었다. 크로와상은 버터향을 내며 겹겹이 찢어 졌고 바삭하고 쫄깃함이 살아 있는게 입에 착 감겼다. 골목에서 크로와상을 순삭 할 만큼 크로와상의 재발견이었다.


크로와상를 그녀와 말없이 해치우고, 서로 같은 생각한 듯 다시 가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5분이 지나지 않은 채 다시 방문한 터라 종업원이 ‘내 그럴 줄 알았다’라는 표정으로 웃어 보여 머쓱한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는 나를 기억 못했을 수 있지만... 가게를 나와 새로 구매한 크로와상을 그녀에게 전해주었다. 그녀의 볼도 행복함도 빵빵해보였다.


저녁에는 오전에 지나던 골목길을 다시 찾았다. 여기의 하이라이트는 저녁시간이었다. 가게마다 조명으로 화려함을 뽐내고, 사람들의 수다가 골목을 가득 채웠다. 오전의 한적함은 요란한 저녁을 위한 폭풍전야처럼 느껴졌다. 오전에 지나가며 익혀둔 가게를 찾았다. 치킨 가게였다. 엄밀히 말하면 정육점이다. 반사효과일까? 여기에서 치킨구이를 보니 치맥이 간절하게 그리웠다. 비상용으로 챙긴 컵라면도 바닥이고 한국음식이 그리울 시기였다. 저녁메뉴를 치킨으로 결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파리에서 치맥이라니, 먹기도 전에 행복했다.


기계에서 360도로 돌아가며 노릇노릇 익어가는 치킨을 보니 없던 식욕도 생길만큼 맛나 보였다. 치킨이 익으려면 시간이 필요해서 정육점 안을 기웃거렸다. 뭐지? 정육점이 편집삽 같았다. 천장에는 여러 소시지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와인 진열에 아자기한 소품까지, 너무 깔끔했다. 문득, 닭은 어디에서 왔을까? 닭의 원산지가 궁금해서 직원한테 물어보았다. 직원은 잠깐 기다리라며 닭에 붙여진 스티커를 가져와 지명을 알려주었다. 파리의 남서쪽 닭이었다.


원래 계획이면 오늘은 남프랑스 보르도 지역에 있어야 했다. 교통파업으로 어긋나 어쩔 수 없지만, 환불이 불가한 보르도의 숙소를 떠올리니 배가 아팠다. 보르도에 발도장도 못 찍는데 돈이 나가다니 속상함이 컸다. 치킨을 받아 곧장 숙소로 가려다 마트로 빠졌다. 마트에서 보르도 와인을 사서 꿩 대신 닭인냥 보르도 여행을 대신할 생각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테이블 세팅을 했다. 그녀가 세팅하다 갑자기 피식 웃었다. 치킨 봉투였다. 흰 봉투에 귀여운 치킨이 웃고 있었다. 알맹이보다 패키지가 맘에 들어 했다. 파리는 예술의 도시가 분명했다. 일상 곳곳에서 예술적 감각을 만날 수 있었다.


치킨을 먹기 전에 그녀와 서론이 길었다. 봉투를 개봉하니 아직 열기가 있었고 사이즈도 3명이 먹어도 될 정도였다. 여행지에서 통으로 된 치킨을 먹어 보는 게 처음이었다. 불문율처럼 어느 나라든지 치킨은 맛있는 걸까? 익숙한 맛있는 맛이었다. 한국에서 먹는 기분도 들고, 기름진 치킨이 들어가니 포만감이 달랐다. 역시, 밀가루로 채우는 것과 결이 달랐다. 오늘은 소화도 시킬 겸 야간산책을 나섰다. 루브르에서 튈르리공원으로 걸으며 밤의 정취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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