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그녀는 초조했다. 교통파업으로 그녀가 에펠탑보다 더 간절했던 파리 디즈니행을 어렵게 했다. 디즈니랜드에 가고 못 가고에 따라 여행만족도가 좌우되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그녀는 무엇보다 디즈니랜드에 할애한 시간이 많았고 디즈니 어플을 확인하며 이건 꼭 타야야 한다며 기대를 안고 파리여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에 물거품이 된다면 소매치기 이후로 2번째 비극이었다.
교통파업 중이라 인터넷에 택시광고가 자주 보였다. 절박하다면 택시를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택시요금을 알아보다 귀를 의심했다. 3만원도 아닌 30만원이었다. 한인택시였기에 잘못 듣지는 않았다. 기사님의 하루일당으로 디즈니에 가면 다른 손님을 태우기가 힘들다는 것에 이해는 되었지만 우리한테는 무리였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야했다. 내성적인 그녀가 커뮤니티에 우버택시 동행 글을 올렸다. 우버택시를 동행하면 일반택시보다 요금이 낮아 부담이 적었다. 그런데 파업이라 파리를 기피하는데 출발 장소와 일정이 비슷한 한국분이 어디에 있을까? 어제 오후까지 조회수가 두 자리도 안되었다. 거의 포기 상태가 되었을 때, 게시글에 댓글이 달렸다. 동행을 원한다는 분이 나타났다. 그들은 신혼여행 중인 한국부부였다. 다행히 근처에 머무르고 있어 아침에 만나서 디즈니로 출발했다. 그들도 파업으로 파리여행이 순탄하지만 않았다며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디즈니에 내리며 약속시간을 정하고 커플과 헤어졌다.
입구에는 놀이기구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디즈니랜드에 왔다는 사실만으로 흥분과 희열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날아갈 듯 기뻐했고 입구에서부터 사진을 담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외국인 가족이 말을 걸었다. 처음에 사양을 했지만, 여기서는 커플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우리를 단연코 찍어주겠다고 했다. 소매치기 이후로 선의 뜻도 조심스러웠다. 아이들도 함께 있어 핸드폰을 건네며 사진을 부탁했다. 우리의 뻣뻣한 표정을 보며 스마일을 외치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우리 역시 가족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괜찮다며 사양하고 자리를 떠났다. 사진품앗이가 아니었다. 그들의 말대로 함께 찍은 사진이 더 좋아 보였고 그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미리 디즈니 앱을 설치하고 계획을 세웠지만, 뜻대로 된 것은 없었다. 그녀의 1순위는 거북이모험은 꼭 타야했다. 1시간 넘게 줄서며 놀이기구에서 들리는 짜릿한 비명에 사로잡혀 순서를 기다렸다. 그런데 무기한 연기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1시간, 2시간도 아닌 무기한 연기라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시간이 아까워 주저할 여유도 없이 가까운 놀이기구를 그냥 타기로 했다. 2시간 만에 처음타는 놀이기구가 라따뚜이였다. 라따뚜이 영화를 그대로 재연해서 스토리는 알고 있었다. 3D안경을 착용하고 원형으로 된 자리에 앉았다. 의자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마치 쥐로 변신해 테이블 아래와 식자재 창고를 종횡무진 했다. 기다림에 비해서 운행시간이 짧았지만, 쥐의 눈높이를 경험해서 감흥은 확실했다. 다시 1시간 반을 기다리며 5분가량의 놀이기구를 타는 것을 반복하며 디즈니를 즐겼다.
오늘 특별했던 놀이기구는 관람열차였다. 대기시간이 짧아 열차에서 쉬어가는 의미에서 탔었다. 세트장을 따라 느긋하게 움직여 우리 생각이 정확했다. 화재 세트장에서 열차가 멈추며 방송이 나왔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화재 장면을 연출하는 듯 했다. 세트장의 트럭에 화재가 발생하자 세트장 위에서 물이 분사되었다. 어린이용으로 여겨질 스케일이었다.
다시 방송이 나오더니 우리가 타고 있던 앞 칸만 움직였고 스케일이 달랐다. 좌우로 열차의 흔들림이 커서 몸이 옆으로 쏠렸다. 무방비 상태라서 당황스러운데 물 분사가 아닌 물보라가 기차로 밀려왔다. 몇 톤의 물도 머리 위에로 쏟아져서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물보라가 눈앞까지 덮치니 그녀 역시, 비명을 질렀다. 바다에서 대형파도와 맞닥뜨린 것처럼 심장이 쫄깃해졌다. 처음에는 애교정도로 여겼는데 마지막은 재난 수준이었다. 옷이 물에 젖었지만, 연출이라는 사실이 천만다행이었다.
어두워지면서 일루미네이션 공연을 기대하게 했다. 공연 1시간 전에 왔지만 명당은 미리 온 사람들로 빼곡했다. 우리는 가이드라인에 자리를 잡고 1시간을 마냥 서있었다. 밤이 되니 제법 추워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빼곡하게 붙어 추위를 이겨내는 펭귄처럼 보였고 시간이 가까워지자 더욱 촘촘한 대형을 이루었다. 일루미네이션이 시작되자 그녀는 얼굴 한번 마주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공연과 함께 핸드폰에 고정되었다. 영상으로 기록해서 두고두고 본다는 일념으로 팔절임을 참으며 촬영했다. 랩핑영상으로 디즈니 캐릭터가 총동원되어 하나둘씩 나타났고 그 중에서 겨울왕국의 두자매가 하이라이트였다. 현란하게 레이저를 쏘고 불꽃도 터지고 눈의 깜박임조차 아까울 정도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가서 열정적으로 놀다가 지쳐버린 느낌이 너무나 행복했다.
디즈니를 끝내고 파리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되었다. 늦었지만 늘 그랬듯이 마트에 들렸다. 평소에는 과일, 빵, 과자를 샀지만 오늘은 라따뚜이의 영향으로 달랐다. “오빠, 오늘은 요리해볼까?” 저녁도 안 먹었고 식당도 문을 닫아 허기를 가볍게 채우기에는 오늘의 움직임이 방대했다. “바질파스타 만들까?” 만만한 게 파스타였다. 레지던스형 숙소여서 조리도구와 식기가 있어 요리를 가능하게 했다.
요리를 한다고 하니 마트도 다르게 보였다. 가공제품은 맛이 없어도 브랜드의 맛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요리를 위해 식재료를 고르는 것은 까다롭고 어려웠다. 파스타 재료의 은하계였다. 소스부터 면의 종류까지 다양하고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제품에 붙은 이미지와 모양으로 추측하며 파스타 면과 식재료를 선정했다. 바질생면으로 된 파스타와 바질페스토를 사고, 올리브유는 고민 끝에 선드라이 토마토 병에 담긴 기름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요리가 시작되었다. 양파, 마늘과 모양은 한국과 비슷했지만, 크기나 향이 조금씩 달랐다. 양파를 까고, 마늘을 다듬고 면을 삶았다. 어제 남은 소시지도 파스타에 투입되었다. 방안은 요리 열기가 데워졌고, 요리 냄새도 가득해졌다. 야식으로 완벽한 파스타였다. 단지 조미료가 없어 간 조절은 불가능했다. 최종 파스타를 그릇에 옮겨 담으니 한결 근사해보였다. 파리 광장이 보이는 창문을 활짝 열고, 서로의 와인잔을 부딪쳤다. 밤 12시, 디즈니랜드의 여운과 바질파스타의 향으로 버무려진 파리의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