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파리로 떠나는 날이다. 파리교통 파업으로 유로스타가 취소되어 저가항공 부엘링으로 예매에 성공했지만, 수화물의 무게가 걱정되었다. 저가항공은 무게를 칼같이 확인해서 초과 무게에 요금폭탄을 부과했기에 대응이 필요했다. 좌석을 베이직에서 타임플렉스로 등급을 올려 수화물 무게를 25kg을 확보했지만 우리의 캐리어 29kg가 넘는 상태였다. 줄이는 건 고민을 동반했고 결단을 필요로 했다.
나는 버리기보다 보류를 택하여 후드, 코트, 패딩을 한번에 껴입었고 캐리어 무게를 줄였고 그녀는 내적 갈등한 끝에 과감하게 옷가지를 버렸다. 휴대용 저울로 무게를 달아보니 아슬아슬한 수치이다. 항공사 접수대에서 초과되면 순서대로 포기할 물건을 생각하고 짐 정리를 마쳤다. 여행의 시작은 비를 맞아 고단했지만 전반적으로 즐거운 여행이었다며 우리끼리 자축을 끝내고 숙소를 나왔다.
개트윅공항을 가기 위해 빅토리아역으로 움직였고 마침 타야할 기차가 출발 직전이었다. 역무원의 서두르라는 손짓을 보고 모두가 뛰었다. 교통카드를 찍고 열차로 향하는데, 뒤에서 오빠~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뛰지 않고 멈추어 있었다. 교통카드에 요금이 없어 통과를 못하는 급박한 순간이었다. 교통카드에 같은 금액으로 충전하며 사용했는데 뜻밖이었다.
여행캐리어를 기차 문에 바짝 붙이고 그녀가 통과하길 기다렸다. 일회용 티켓을 구입한 그녀는 탑승을 위해 뛰었고, 승무원도 같이 뛰어서 기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보이던 그녀의 목쿠션이 보이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보니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애석하게 목쿠션은 파리로 갈 운명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벅찬 숨을 돌리며 공항으로 향했다.
게트윅공항는 규모는 작았지만, 여러 항공사가 모여 있어 부웰링 카운터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드디어 결전의 순간이 왔다. 캐리어를 올리고 저울 수치에 집중했다. 23kg..24kg..수치가 올라가며 순간 25kg에 멈추었다. 딱 커트라인이었다. 시험에 합격한 듯 성취감이 들었다. 그녀의 헌신이 없었더라면 25kg은 없었다.
이제 비행기만 안 놓치면 문제는 없었다. 탑승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라운지를 찾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녀가 들어오지 못하고 입구에 멈칫했다. 카드설정이 해외차단으로 되어 입장을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로밍해서 카드앱을 통해 즉석에서 해지가 가능한데, 어떤 연유에서 카드앱이 작동되지 않았다. 평소에 잘 되다 꼭 필요한 순간인데 먹통이 되었다. 속이 터졌다. 그러나 당사자인 그녀는 침착했고 유연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홀로 라운지를 입장하고 그녀는 공항 카페에서 쉬었다. 라운지에서 편하게 쉬고 있었지만 마음은 불편했고 허전했다. 혼자 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음식이 들어가지 않았다. 라운지를 나와 그녀가 있는 카페를 찾으니 그녀의 테이블에는 접시가 수두룩했다.
드디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는 통로를 기준으로 좌우로 떨어졌고 그녀 옆은 흑인가족이 앉았다. 그녀는 흑인가족에게 껌을 나눠주며 긴장을 함께 풀었고 내 옆자리는 아시아인 부부였는데 고개를 숙인 채 비행이 끝나길 바라는 것 같았다.
파리공항에 내리니 분위기가 달랐다. 살벌했다. 봉주르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였다. 총과 군견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들은 눈빛으로 레이저를 뿜으며 이곳저곳을 주시며 소란을 피우면 뼈도 못 추린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누가 봐도 여행자로 보이기에 그들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았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니 분위기는 스산하고 어두웠다. 멈춘 열차는 깨진 창문에 낙서로 멍들어 있었다. 여기가 낭만의 파리가 맞을까? 의문이 생겼고 조심스레 파리에서 일주일이 걱정되었다. 교통 파업이라도 파리1구로 가는 열차는 있었고 우리는 기분 좋게 탔지만, 매표소 직원과 소통이 잘 안되어 직행루트를 놔두고, 환승하는 열차를 타고 북역으로 가고 말았다.
북역에는 끊임없는 역내방송과 직원의 목소리로 정신이 없었고 수많은 사람으로 넘쳐났다. 파업이 온몸으로 와 닿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북역은 사건사고로 명성이 자자하기에 그녀는 안전장치를 챙겼다. 나에게 착용을 의무화 시켰지만, 고리에 걸면 움직임에 불편해서 안전장치를 풀고 다녔다. 이게 화근인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환승을 위해 직원에게 안내받고 플랫폼으로 찾아갔다. 갑자기 주머니가 싸했다. 혹시나 하고 주머니를 확인하니 카메라가 없었다. 분명히 사진을 찍고 오른쪽 주머니 넣어놨는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소매치기였다. 망치로 맞은 듯 머리가 얼얼했다. 그녀가 조심하라며 안전고리까지 챙겨줬는데, 눈뜬 장님마냥 당했다. 나의 잘못이었다. 카메라에 담겨있는 5일의 런던추억이이 사라졌다. 사람이 넘쳐나서 여기에서 수습이 어려웠고 우선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명성은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숙소에 도착해 쉴 틈이 없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소매치기 관련 정보를 검색했다. 검색할수록 카메라를 다시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컴팩트 카메라였기에 주머니에 넣으며 여행의 사소한 부분까지 기록했는데 안타까웠다. 보험 청구로 위로 받는 게 다음 스텝이었다. 우리가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로비직원 뿐이었다. 로비직원은 우리의 서툰 영어를 알아듣고 불어로 사건노트를 만들어 주며 언니, 오빠의 사건마냥 진심으로 도와주는 게 느껴졌다. 밤이 되었지만 파리에 왔으니 숙소 근처라도 둘러보기로 했다.
소매치기를 당해 단단히 각오한 탓에 그녀는 비니를 착용해서 머리카락을 숨겼다. 그녀의 의도대로 롱패딩을 입고 뒷모습이 남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루에 소매치기를 2번 당할 확률은 적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골목을 지나는 사람 중에 우리만 저기압이 분명했다. 골목에는 크리스마스 케롤이 울려 퍼지고 에펠탑 모양의 조명이 이어져 화려했고 파리스러웠다. 눈과 귀로는 낭만파리였지다. 그러나 소매치기로 인한 화가 꺼지지 않아 감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녀의 말만 들었어도 소매치기를 피할 수 있었는데 내 탓이었다. 목쿠션도 잃어버리고, 앱카드 오류나고, 소매치기까지 오늘은 평생 잊지 못하는 추억이 생겼다. 찰리채플린의 명언이 생각난다. 가까이 보면 비극이고 멀리 보면 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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