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파리의 모습, 뭐가 진짜일까?

야근에서 비롯되어 여행으로 도드라진 그녀&그의 여행일기

by 직업은투명인간

어제의 소매치기로 더 이상은 악재가 없기를 바랐다. 오늘은 여행보다 중요한 미션이 있었다. 보험청구를 위해 경찰서를 찾아 확인서 발급해야 했다. 구글맵으로 근처 경찰서를 발견했지만 후기를 볼수록 이상했다. 칭찬보다는 악평이 대부분으로 민원을 해결해주는 경찰서 느낌이 아니었다.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경찰서로 이동했고 악평은 번역기 오류로 믿고 싶었다.


경찰서에 도착하니 주말이라 닫힌 문도 그랬고, 우리나라의 경찰서 이미지가 아니었다. 쪽문에 제복 입은 근무자가 보였다. 그는 우리를 향해 나가라는 제스처를 하며 불어로 속사포 랩을 쏟아냈다. 후기에서 보던 상황에 눈앞에 펼쳐졌다. 한마디로 못 붙이고 돌아서며 사람들의 악평에 공감되었다.


다음으로 가까운 경찰서는 사건현장이었던 북역에 있었다. 깨음직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캐리어와 가방도 없는 가벼운 차림이라 부담은 덜 되었다. 북역은 대로변을 따라 2km 정도여서 그녀와 걸어가기로 했다. 길 한켠에서 트리용 나무를 팔았다. 장식된 트리만 보았지만 판매하는 트리는 처음이었다. 나뭇잎과 가지를 움츠리기 위해 그물망을 씌운 모습이 생소했다. 그물의 탄력이 쨍쨍해서 거인이 작은 그물에 잡혀 있는 모습으로 그물을 살짝만 열어도 나뭇가지가 우르르 펼쳐질 기세였다.


내부에도 뭔가 구경거리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시장인데 뭔가 달랐다. “오빠, 여기 시장 맞아요?” 그녀도 놀랐지만 나 역시 놀랐다. 팝업스토어처럼 세련되었다. 과일가게, 정육점, 생선가게는 저마다 조명과 꽃을 활용해서 아담하게 크리스마스 장식도 해놓았다. 규모는 작지만 이방인이 파리감각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북역의 경찰서가 뒷전이 되어 시장투어를 시작했다. 천장에 매달린 소세지를 보던 중에 식당의 셰프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봉주르~” 반가움이 묻어나는 소리였다. 나는 당황해서 웃으며 지나쳤다. 점심시간이 다가왔고 이 주변은 소매치기로 위험하다는 생각에 선택이 쉽지 않았다. 시장을 돌아보며 조금 전 셰프와 아이컨택이 되었던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작은 미니바 형태의 식당이었고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봉주르 ~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어색한 발음으로 인사를 건네었다. 셰프는 주방에서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자리에 앉으니 여직원이 옆으로 이동해달라고 했다. 아무도 없는데 자리 이동을 요구하니 말도만 듣던 인종차별이 떠올랐다. 여직원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르쳤다. 천장을 보니 히터가 매달려 있었다. 순간의 의심이 미안했고 배려가 고마웠다. 히터의 온기가 정수리에서 얼굴 아래로 서서히 내려왔다. 우리나라의 엉덩이부터 따뜻함과 느낌이 사뭇 달랐다.


메뉴판은 온통 불어였지만, 직원은 영어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식당의 추천메뉴와 브런치를 조합해서 주문을 마쳤다. 음식이 하나 둘 나오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익숙한 음식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낮선 음식이었다. 그중에서 놀라웠던 음식은 프랑스식 야채파이였다. 물기가 많은 조각케익처럼 보였고, 위에는 루꼴라가 얹어있고 대파, 양파 등 파이에 파묻힌 게 보였다. 기대 없이 한입 먹어보니, 웬걸? 야채파이가 아닌 것 같았다. 에펠탑 맛이었다. 철탑이 뭐길래... 기대로 안했다가 에펠탑의 야경을 보고 반하지 않은가? 그런 맛이다. 그녀는 브런치에 나온 바나나 케익에 박수를 쳤다. 어제의 사건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는데 다독거려주는 맛임여 멘탈을 붙잡아 주었다고 했다. 나 역시, 타이밍이 그랬지만, 무엇보다 친절함에 고마웠다. 야채파이? 바나나케익은 한국에 가면 자주 회자가 될 음식였다. 남는 소시지를 포장까지 하고 북역으로 향했다. 밖을 나와 걸어가는데 점심 덕분인지 어제의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확실했다. 이런 것을 음식치료라고 해야 하는지, 힘든 시기일수록 잘 먹어야 한다는 말이 와 닿았다.


북역 안의 인포메이션에서 경찰서 위치를 물었다. 해당 직원은 안내를 수없이 했는지 종이에 약도를 순식간에 그렸다. 우리가 소매치를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경찰서는 북역 안에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사건사고가 빈번하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경찰관에게 불어로 된 메모지를 전달하니 경찰관은 알겠다며 키보드 타이핑을 시작했다 키보드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놓였다. 불어를 쓴 메모지가 없었더라면 골머리를 앓을 수 있었다. 기다리는 중에 동양인 3팀~4팀이 소매치기를 당해서 찾아왔다. 속상하게 한국인도 있었는데 핸드폰을 도둑맞았다고 했다. 이런 된장찌개 같은 놈들! 화가 머리끝에서 치밀었다.


잠시 후 코피를 흘리며 현지인 중년이 들어왔다. 누군가에게 폭행당한 얼굴이었다. 순간 그녀가 얼음이 되었다. 맞은 건 중년남성인데 그녀가 심각하게 굳었다. 브런치의 음식 효능도 다 사라지고 그녀가 겁에 질려했다. 손을 잡아주었다. 그 중년남성은 불어를 했지만, 몸짓에 억울함과 공포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짐작하건데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행인 2명이 갑자기 이유도 없이 폭행했다고 했다. 북역의 바깥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경찰서에서 확인서를 발급받고 다음 목적지는 몽마르뜨 언덕이었다. 경찰서에서 안타까운 상황을 보았지만, 우리의 멘탈이 급변했는지 몽마르뜨까지 2.5km가 되어 걷기로 했다. 길거리에는 인적이 없어 위험해 보이기도 했지만, 여유로워 보이기도 했다. 마음의 기준에 따라 달라 보였다.


몽마르뜨 입구에는 관광객이 많았다. 그녀가 몽마르뜨에도 소매치기가 빈번하다며 당부를 했다. 오늘 또 소매치기를 당하면 답이 없었다. 기념품 가게가 늘어진 입구를 통과하고 골목 끝에서 발걸음이 멈칫했다. 몽마르뜨 언덕이 소리 소문도 없이 눈앞에 나타났다. 기분이 좋은 당황스러움이었다. 푸르른 잔디와 우뚝 솟은 사크레쾨르 성당은 하나의 세트처럼 보였다. 계단을 오를수록 정상에 있는 사원과 가까워졌고, 그 만큼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탁 트인 시야로 유로 전망대 부럽지 않았다. 소매치기로 잃어버린 감흥이 돌아 온 것 같았다.


마침 핸드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알림을 설정한 SNCF 철도청 메일이었다. 안 좋은 소식이 분명했다. 예상은 정확했고 스트라스부르, 보르도행 열차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모든 근교여행이 모두 취소되는 원투 펀치로 쓰라린 통보였다. 여행을 시작하며 곧 끝나겠지 했는데 파업은 현재형이었다. 숙소요금을 환불을 못하는 옵션으로 예약한 게 가슴을 후벼팠다. 여긴 높은 언덕이라 고함지르기 좋은 장소였다. “이런 된장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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