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카페 왼쪽 게시판 목록에서 내 호기심을 이끄는 <선생님구해요> 코너.
우리 동네 이름으로 검색을 해 보니 많지는 않지만 간간이 선생님을 구하는 학생들의 글이 있었다.
글 몇 개를 살펴보다가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영어 공부나 해 볼까 하는 생각에 곧장 역 근처 백화점에 있는 서점으로 튀어나갔다.
부드러운 간접 조명과 어두운 브라운색 서가가 은은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었다.
가장 잘 보이는 메인 서가에는 베스트셀러 소설, 자기 개발서가 홍보 문구들의 호위를 받으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평일 낮 시간인데도 평대 매대와 벽 매대 곳곳에 서서 책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창가 쪽엔 혼자 온 손님들이 스타벅스처럼 나란히 옆으로 앉아서 자리를 차지하고 책을 읽거나 뭔가를 공부하고 있었다.
지성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 쓰레빠를 신고 집에서 입고 있던 후줄근한 차림 그대로 온 내가 부끄러워져서 어깨가 오그라들었다.
찍찍 끄는 소리가 나지 않게 발가락에 힘을 주어 슬리퍼를 잡고 사람들이 적은 서점 안 쪽 구석을 향했다.
옹기종기 모인 학습서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잘 나가는 EBS 학습서와 쎈수학, 워드마스터 영단어 시리즈 책들은 평대에 여러 권씩 쌓여 있었다.
독해, 문법, 듣기 할 것 없이 교재를 꺼내서 훑어보니 낯익은 개념이 보였다.
수동태, to부정사, 그래그래 이런 거 배웠었지. 나 때도 리딩튜터가 있었는데 지금도 있네.
학창 시절 가장 좋아했던 과목 영어, 대학생 때 쉬지 않고 영어 과외, 외국계 회사 근무, 식품 회사에서 해외 파트너사가 올 때 의전 담당...
작정하고는 아니었지만 살며 본의 아니게 끊임없이 영어를 접하며 살다 보니 중등 수준 문법이나 독해는 어렵지 않았다.
한참을 푹 빠져 책을 구경하다가성인 학습자를 위한 고급 문법책 하나를 샀다.
겉표지가 고급진 어두운 파란색이었다.
뭘 시작하든 역시 장비빨 아니던가.
캠핑을 할 때도, 자전거를 탈 때도, 육아를 할 때도, 살림을 할 때도 역시 모든 것은 장비빨!
회사를 다니며 몸도 마음도 지쳐서 output만을 만들어내느라 온통 소진된 느낌이었는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채워서 input을 넣자는 생각을 하니 살짝 마음이 설렜다.
게다가 왠지 공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책의 표지와 디자인.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내 어깨는 더 이상 오그라들지 않고 자신감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