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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Apr 22. 2023

공교육은 나 같은 휴직 백수나 만학도에게도 열려 있구나

제25화

[이 글은 현재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를 연대기로 정리하는 시리즈 글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편 문법책은 생각보다 기억나는 것들도 많고 재미있었다. 


노란색 형광펜과 삼색펜을 준비해 밑줄을 치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예제 문제를 푼 뒤 빨간색 펜으로 동그라미를 시원하게 치는 건 꽤나 자기 효능감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 


좀 헷갈리는 개념들은 표시를 해 두고 EBS 강의를 듣기로 했다. 


초등학교 때 TV로 방학생활을 시청하던 EBS. 


중고등학생이나 사용하는 줄 알았던 EBS. 


이 홈페이지에 내가 접속하다니. 


공교육은 나 같은 휴직 백수나 만학도에게도 열려 있구나. 




EBS에 접속하려니 휴면 계정으로 전환된 ID를 다시 찾는 걸 먼저 해야 했다. 


발랄하고 경쾌한 음악이 먼저 내 귀를 솔깃하게 하더니 이내 초록색 칠판을 배경 삼아 선생님이 나타났다. 


동기부여를 하는 멘트로 수업을 활기차게 시작한 EBS 선생님. 


꼼꼼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목소리에 맞추어 딱딱거리는 분필과 칠판의 마찰 소리가 나를 90년대로 돌아가게 했다. 


무더운 날씨,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뜨거운 교실. 


천장 네 곳과 양쪽 벽에 각각 한 곳을 차지하고 쉴 새 없이 탈탈거리며 돌아가던 선풍기. 


열어둔 창문으로 벌이나 새가 가끔 날아 들어오면 꺅꺅거리며 도망 다니는 같은 반 친구들과 엉망이 되는 책상. 


학창 시절의 향수에 빠진 내 방은 더웠지만 마음은 오히려 산뜻했다. 


화상을 입었던 팔도 이제 붕대를 떼고 거즈만 붙인 뒤 투비패스트라는 토시처럼 생긴 잘 늘어나는 얇은 고정용 붕대만 착용하면 되었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이런 느낌이 든 게 언제였더라. 




옛 생각부터 현재 내 처지까지 이어진 생각에서 빠져나와, YES24에서 몇 개의 중학교 과정 독해책을 더 샀다. 


공부하는 동안 다른 골치 아픈 생각을 안 하게 되니 안 살 이유가 없었다. 


다음 상담 때는 의사 선생님께 공부를 하니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시리즈 초반부터 보기>


1화 영어 이름으로 제니퍼를 정했는데 철자를 모르겠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199

2화 내가 수업 시간에 최초로 ‘외운’ 영어 문장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1

3화 별스럽지 않은 날의 퉁퉁 불은 오뎅꼬지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4

4화 문제는, 나는 그들과 비슷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6

5화 나는 동그라미 모양인데 그 회사는 별 모양이라서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7

6화 경력직으로 입사한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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