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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Jul 23. 2017

그 여行자의 집 (26)

2017년 가을, 서른셋 재현의 그 해. #26

26. 

 언제부터였을까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설레고 무한한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그녀가 편안함, 안전감을 지나 듬직한 의지의 대상이 되었던 건.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가 참 잔인한 놈이다. 처음에는 내가 생전 짊어져 본 적 없는 가족이라는 무거운 짐을 늘 업보인 냥 짊어지고 그로 인한 제약에 한숨지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그녀를 보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져 어떻게든 돕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무던히도 그 역할을 감내해내는 그녈 보며 나 역시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내가 또 하나의 짐이 되어 그녀의 어깨 위에 올라탔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였는지 나는 그녀에 대한 존경심과 별것도 아닌 듯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양면의 감정을 마음에 담고 필요에 따라 꺼내 쓰며 나는 그녀 곁에 머물렀다. 


 졸업을 하도고 글을 쓴단 핑계로 직장을 잡지 않은 채 썩 긴 세월을 보냈다. 의사 매형이 차려 준 누나의 카페에 가서 가끔씩 알바를 하고 용돈벌이를 했다. 가족들은 나를 답답하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금전적 후원을 끊지는 않았다. 졸업 후 5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나는 두 권의 책을 냈지만 둘 다 백만 원 돈의 인세가 전부였을 뿐이었다. 내가 알려 준 사람들 외에는 내 책이 세상에 나왔는지 아는 사람도 없는 듯했다. 나는 그렇게 무명작가의 얇고 긴 세월 속에 살고 있었고, 그녀라는 안식처가 있었기에 삶은 허무했지만 외롭진 않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떠나보냈다. 그 발단은 집이었다. 
「나도 집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녀가 이야기를 꺼낸 건 그녀의 집, 식탁에서였다. 

「너 집 있잖아. 여기가 네 집 아냐.」

「아니, 이런 집 말고.」
「아파트? 큰 집? 자가?」

나는 따뜻한 된장찌개를 후후 불어 목구멍으로 넘기며 그녀의 무심하게 말을 받았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순간 머릿속에 그녀가 우리 집을 이야기하는 건가, 결혼을 이야기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그녀는 바라보니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어떤 집?」

「아니야.」

「아니, 말해줘. 궁금해서 그래.」

「그냥, 사람 사는 거 같은 집.」

「흠, 그래? 나는 여기에 오면 살 것 같고 좋은데.」

「정말? 난 뭔가 지금의 삶이 가짜 같아. 임시 같고. 그래서 진짜 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녀가 원한 것이 결혼과 신혼집이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아니 그냥 별게 아닌 막연한 욕구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난 그녀의 작은 자취방을 둘러보며 내게 밥상을 차려주는 그녈 보며 그렇게 받아들였다. 지금의 삶이 임시 같아서 진짜 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혼기 꽉 찬 여자 친구의 말을 달리 받아들일 만큼 나는 눈치가 없지 않았고, 상상력이 풍부하진 못했다. 그 무언의 압박이 모든 것을 망쳤다. 나는 결국 도망쳤고, 그녀를 잃었다. 그리고 나서야 그녀가 내게 긴 시간 안전과 따뜻함을 주는 집이 되어주고 있었음을 알았고, 그 반대로 그녀는 나를 통해 그러한 것들을 얻지는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스럽지만 떠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이다. 아니 옆에 있었더라고 그녀에게 원하는 걸 줄 수 있진 않았을 것이다. 그녀 밖에서 나는 조금 더 독하고 강해질 수 있었으므로 차라리 잘 된 일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더 열심히 글을 쓸 수밖에, 번역일이라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프로젝트 여행자의 집, 네 번째 이야기 中 :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는 글 참고 

그 여行자의 집 : 1장, 단아의 이야기  |  2장, 경재의 이야기 | 3장, 민주의 이야기 | 4장, 재현의 이야기

이전 25화 그 여行자의 집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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