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처뷰 / 경남새넷_대감초 박순걸 교장선생님
안녕하세요. 요즘 선생님의 현재 근황은 어떠신지요?
작년 9월에 대감초등학교 교장으로 왔는데 교감이 없는 작은 학교입니다. 교감이 없는 학교에 근무해 본 게 참 오랜만이라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원래 저는 이제 교감을 하면서도 선생님들 업무를 안 드리거든요. 남한산초를 통해 공부하면서 가장 감동이었던 이유가 선생님들이 온전히 교육과정에 충실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당시에는 엄청난 놀라움이었어요. 우리 모두 선생님으로서 하고 싶은 꿈이 있고 아이들을 잘 가르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그걸 왜 못 했을까? 생각하니 그게 과도한 행정업무 때문이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교감이 되면 업무 전문성을 갖고 선생님들 업무를 좀 드러내는 일들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꿈으로 쓴 책이 「학교 내부자들」이란 책이었어요.
대감초에 와보니 교무부장님이 교감 인사에 각종 업무도 하면서 6학년 담임까지 하고 계시더라고요. 선생님 대부분이 의욕도 없고 업무에 다 치어계셔서 제일 먼저 했던 일은 교무부장이 하고 있던 교감 업무를 다 들어내어 제가 맡고, 선생님은 교육과정에 관한 업무 중 1~2가지 정도만 나누어서 하자고 제안하니 참 좋아하시더라고요.
작년에 와서 교육 비전과 철학을 세우고 우리 학교에서 필요한 교육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을 워크숍으로 하면서 올해는 행정업무 전담지원팀을 구성하여 교육과정 중심으로 충실하게 돌아가다 보니 교육활동 하나하나에 의미가 부여되더라고요. 저도 수업을 지원하면서 수학여행이나 현장 체험학습에 대한 고민도 나누다 보니 교장인 제가 먼저 함께 할 거고, 거기에 대한 어떤 책임도 선생님들에게 묻지 않을 거고, 혹시나 책임이 있더라도 내가 더 많이 지겠다가 하니까 올해는 더 재미있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시자마자 바로 그렇게 큰 변화를 이끄시니 선생님들 반응이 정말 대단하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이런저런 제약들이 많았어요. 처음 반년 동안은 저하고 신뢰를 쌓는 과정이었죠. 교장이 일을 잘하고 인성이 좋고 품성이 좋은 것도 중요하지만 교장, 교감도 아이들을 챙기고 사랑하고 존중하고 교육하는 선생님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학부모들도 교육과정을 세우는 작업에 같이 동참하고 선생님들이 이미 교육과정 역량들을 다 갖고 계시기 때문에 저는 시스템을 그려주는 역할들을 한 거죠.
생태운동장 이야기를 빠뜨릴 수가 없는데요.
대부분 학교가 일제식 조경이거든요. 학교 건물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일조권도 없고 조망권도 없고 교문에서 학교를 바라봤을 때 얼마나 예쁘냐, 결국 손님들을 위한 조경이죠. 특히 초등학교는 이순신, 세종대왕, 이승복 같은 위인들 동상에 각종 동물 조형물을 시멘트로 떡칠해놓은 게 대부분인데, 저는 건물 안에 사는 우리 교육 가족들과 학생들이 좋은 일조권과 좋은 조망권, 좋은 풍경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운동장 같은 경우에도 어찌 보면 가장 남녀평등이 되지 않는 공간이 바로 학교 운동장이거든요. 운동을 못하거나 1학년이나 유치원 아이들, 여학생들, 도움반 아이들처럼 약자들에게는 사실상 공간 주권이 없고 운동을 잘하는 일부 6학년 남학생들이나 중학교도 3학년 남학생들같이 축구하는 아이들 위주죠. 누구에게나 똑같이 n분의 1의 혜택을 주자는 철학을 가지고 시작을 했던 거예요. 해외 연수를 가보니까 운동장이 특정 권력에 부여되지 않고 모두가 다 운동장의 주권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보고 저도 그런 것을 구현해보고 싶어서 밀주초에서 처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밀주초는 영화 밀양의 주 무대가 됐던 아주 낙후된 완전 구도심의 학교예요. 제가 2020년 9월에 갔는데 민원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왔던 학교였거든요. 전교생 120명 중 보육원 아이들이 29명, 도움반 아이들이 13명,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등 취약계층 저소득층 아이들이 전체의 66% 정도로 나오더라고요. 11월에 43명이 취학 통지서를 받았는데 전부 이사 가거나 신도시로 가버리고 겨우 16명밖에 입학을 안 해서 그 학부모들을 모아서 물어봤더니, 그분들이 그렇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나는 돈도 없고 연줄도 없고 그래서 밀주초에 보낼 수밖에 없는데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이사 가버리고 밀주초에 애를 보낸다고 하면 주위에서 막 욕을 한다, 질 떨어지는 밀주초에 아이를 왜 보내냐, 그 말이 너무 자존심도 상하고 상처받아서 애가 입학을 해도 밀주초에 다닌다는 말을 못 한다. 그래서 내 아이가 밀주초에 다닌다, 이 말만 밀양 사람들에게 좀 할 수 있게 해 달라, 그게 소원이다”라면서 우시는 거예요. 그 말씀을 들으니 막 사명감이 불타오르잖아요. 그때 다행히 공간 혁신 사업으로 본관에 한 3억 정도 들여서 공사를 하는데 진행이 안 되고 있더라고요. 교장 선생님이 예산을 따왔는데 선생님들이 영혼 없이 업무를 하려니까 힘들잖아요. 그때 제가 그 업무들을 다 가져와서 교실 리모델링하고 생태운동장까지 한 3억 정도 예산을 추가로 받아 진행했죠. 나중에는 그린 스마트 스쿨까지 하게 됐는데 그 업무도 제가 다 가져와서 이렇게 다 하게 됐어요.
중앙 1층이 제일 따뜻하고 밝은 곳이잖아요. 그 중앙 현관에 교실 네 칸 반이 있었는데 거기에 교장, 교사들, 행정실 직원 등 겨우 어른 7명이 상주하고 있더라고요. 교장실, 교무실, 행정실을 1칸으로 만들어 전부 한곳으로 모으고, 중앙 현관을 복합 문화 도서관으로 만들어서 모든 길은 1층에 중앙 현관 도서관으로 통할 수 있도록 공간 혁신을 했죠. 유럽에 있는 학교들은 다 중앙 도서관을 통과하게 돼 있더라고요.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서 학교 중앙현관을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돌려줘야 하겠더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지금은 밀주초 공간을 보러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세 팀 정도 전국에서 옵니다. 우리가 혁신학교 초기에 남한산초에 가듯이 밀주초에도 방문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학급수도 한 11학급까지 늘었고 선생님들도 2지망, 3지망으로 튕겨서 오는 학교였는데 지금은 선생님들이 1지망으로 원해서 오시는 학교가 된 거죠.
대감초도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나요?
대감초는 폐교하려는 학교이다 보니 예산지원도 안 되어 예산도 적고 그래서 선생님들과 교육 예산에 대한 회의를 거치고 선생님들과 밀주초와 생태공원이 잘 조성된 학교로 연수를 함께 가면서 학교가 이렇게 바뀔 수도 있다는 걸 보여드렸어요. 학교 예산을 다 끌어모으니 3천만 원 정도 되었는데 이걸로 뭘 할 수 있겠나 의문을 가지셨죠. 제가 어느 정도 경험이 있어서 학교에 있는 자연석이라든지. 나무라든지 뭐 작은 시설 하나라든지 하는 것을 모아서 조경하고 방치되어 썩어 있는 지하수를 복구하는 데에 예산을 우선하여 사용하는 것에 동의받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만족도가 한 300%일 정도로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중앙 현관에 생태운동장을 조경한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선생님께서 교사로 계실 때의 모습도 궁금합니다. 그때도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으셨을까요?
94년도에 첫 발령이었는데 제 정체성은 솔직히 전교조에서 조합원으로 살았던 그 정체성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비합법이었고 힘든 시기였고 특히 조합원으로 사는 걸 다 두려워하던 시기였는데, 저는 좀 사연이 좀 깊었죠. 고등학교 때 정말 고마웠던 선생님이 계셨는데, 오재석 선생님이라고 나중에 알고 보니 전교조 경남지부의 사립 위원장을 하신 분이에요. 근데 고등학교 다닐 때는 몰랐어요. 나중에 우리 선생님이 왜 그렇게 학교와 싸우면서 뜨겁게 사셨는지 궁금했었죠. 그런 영향들이 저한테는 좀 많이 남아있었죠. 나중에 은사님께 어떻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요? 하니까 그때 하셨던 말씀이 아이들에게 갚으라는 말씀이셨어요. 아이들에게 갚을 수 있는 길은 좋은 교사로서 참교육을 해야 하는 꿈이 있었지만, 그때는 너무 가난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에 대학 생활 내내 막노동하고 저녁마다 목욕탕 청소에 도서관 아르바이트에.. 이렇게 온갖 잡다한 일들을 다 했어요. 그래서 솔직히 학생운동 근처에도 안 갔는데 대학교 4학년 때 광주교대 이경동, 한상룡 열사가 분신하고 돌아가시는 일이 있었거든요. 그분들도 졸업만 하면 발령이 날 텐데 말이죠. 너무 충격이 컸어요. 왜 목숨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었을까 궁금했는데 그때 망월동에 묘역에 가서 광주를 처음 알게 된 거죠. 그때 처음 광주에 가게 되었는데, 솔직히 경상도에서는 광주는 빨갱이들이 사는 도시인 줄 알고 있었거든요. 너무 충격이었고 돌아와서 결심하게 된 거죠. 그 열사들의 못다 이룬 꿈은 교사로 올바로 사는 거고, 제가 참교육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발령 나자마자 지회 사무실을 찾아갔죠. 조합원 활동을 하면서 아내도 만나게 됐고 선생님들 연구회 모임도 하게 되고 조합원이 아니었으면 만나지 못하는 인연들을 많이 만나게 됐죠. 그런데 관리자들하고 너무 많이 부딪치고 싸우는 경험을 하면서 일단 조합원이라면 안 좋은 시각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보니, 한 10년째 넘어가니까 승진해서 이런 것을 바꿔야 하겠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막상 승진 점수를 모으는 것들이 조합원으로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고 혼란스럽고 그 과정도 너무 힘들었고 ‘이거는 진짜 아니다, 이걸 바꿔야겠다’ 했는데 몇 번이나 이렇게 싸우다가 접었다가 그런 과정들이 많았어요.
막바지에 접어드니까 너무 비참해지는 경험들이 있어서 이것을 알려야 되겠다 싶어서 교감이 되자마자 쓴 책이 「학교 내부자들」이었어요. 교사에서 교감으로 가는 승진 제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이고 비합리적인지 이것을 바꿔야겠다는 이야기들을 알리게 된 거죠. 교감이 되면서 관리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가야 하는지를 실천하면서 또 썼고 저는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교감에서 교장이 되는 제도는 더 비합리적이고 잘못된 제도더라고요. 교사에서 교감이 되는 것은 교감에서 교장이 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교육청이 교감들을 어떻게 이용하고 어떻게 손아귀에 쥐고 흔드는지 아주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이 많아서 이것을 알려야 하겠다고 해서 쓴 책이 「학교 외부자들」입니다.
그 와중에 새로운 학교 네트워크를 만나셨던데 새넷은 어떻게 만나신 걸까요?
새넷을 알게 된 것은 2015년이었습니다. 2015년 참실 전교조 연수에서 서길원 선생님, 허승대 선생님께서 남한산초 이야기를 하실 때 일단 새로운 학교라는 이름 자체가 많이 와닿았죠. 전교조가 풀어내지 못하는 학교의 문화에 대한 것들, 수업만으로 학교를 바꿀 수가 없다, 학교의 문화가 바뀌고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고 제도가 바꿔야 하고 그것을 연대의 힘으로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학교 단위에서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그 연대를 학교의 교육과정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는 차에 새로운학교 네트워크를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아내와 바로 동시에 가입했어요. 그러면서 전국으로 새넷 연수를 계속 따라다녔죠. 당시에 제주도나 경주, 대전, 경기도를 계속 다니면서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혁신학교에 대한 것들에 대해 눈을 뜨면서 실체를 알게 되었어요. 전교조가 하지 못하는 것을 새로운학교가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를 알게 됐고 학교가 변하는 것도 직접 보게 되었어요.
제가 이번에 새넷 연수위원장을 쉽게 수락한 이유도 제가 이런 삶을 살아가게 만든 그 동력 중의 하나가 새로운학교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한 번은 그 은혜를 갚아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제안이 와서 흔쾌히 하게 됐고 지금 좀 침체하는 시기에 다시 새로운학교가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는 그런 역할도 좀 해 보고 싶어서 수락하게 된 거예요.
이번에 새넷 연수위원장님으로서 처음 준비하시는 “혁신 교육, 어떻게 무너지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이 눈길을 끄는데요, 연수를 소개해주세요.
경기도 서우철 교장 선생님과 부산의 전기홍 교감 선생님, 강원도 손상달 원장님을 섭외했는데 부산도 보수 교육감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무너졌는지 들을 수 있고, 지금 임태희 교육감이 내년에 재선될 가능성도 있기에 경기도 이야기를 꼭 듣고 싶었어요. 보수 교육감이 들어와서 혁신학교들을 무너뜨리고 또 혁신학교 예산을 줄여나가고 있는 상황이 저에게는 상당히 충격이 컸거든요. 제가 전국 연수위원장도 맡고 있지만 경남 연수위도 같이 맡고 있어서 연수위원들을 모아놓고 제안했었어요.
우리 경남도 내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경기도나 강원도에서 그래도 혁신학교 운동을 주도했던 학교들이 여전히 살아남아 어떻게 지켜내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무너뜨리려고 했는지를 들어보고 그럼에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었는지 그런 이야기를 듣고 경남 새넷도 각오를 새롭게 다져보자는 의미에서 연수를 준비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교육의 새로운 아젠다는 무엇일까요?
제가 새넷을 참 좋아하는 이유가 힘을 얻기 위해서 단체를 이용해 사람을 모집하고 무조건 확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숫자도 중요하지만 새넷은 그렇게 하지 않더라고요. 확장성보다는 방향성에 방점을 찍으면 선생님들도 제 생각에 동의해 주시더라고요. 지금의 가장 큰 확장성은 교권이잖아요. 대부분 교권에 집중하는데 저는 교육을 바로 세우는 것을 우리의 방향으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권이라는 것은 우리가 확보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잘 가르치고 우리 아이들이 잘 성장할 때 주어지는 그게 진정한 교권이라고 보거든요. 진정한 존경은 우리가 잘 가르칠 때 나오는 것이고 그것을 잘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고, 그런데 잘 가르치는 것은 교사 혼자 힘으로는 부족하거든요.
지금 상황에서는 지역과 연대해야 하고 학부모와 함께해야 하고 마을과 함께 가야 올바른 교육생태계를 세울 수 있듯이 그러려면 함께 손을 잡아야 하죠. 지금 교육이 무너지고 있는 이유는 다수의 학부모 때문이 아니잖아요. 소수의 학부모와 소수의 몰지각한 선생님들 때문에 교사 전체가 오해받고 있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다시 지역과 마을과 학부모와 닫힌 학교의 교문을 좀 더 열어서 같이 함께 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게 제 바람이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할 수 있지만, 지금은 학부모들이 우리를 존경해야 한다, 우리의 교권을 지켜달라 하는 것은 법적인 장치에 불과한 거고, 그것은 오히려 앞으로 교육을 악화시키고 교권을 더 추락시키는 것이라고 보거든요. 저는 오히려 불신과 감시만 더 팽배할 거라 봐요. 선생님 대부분은 잘 가르치고 싶고 존경받고 싶고 내 새끼도 아닌데 꼭 내 새끼 같고 아이들 보면 잘 키우고 싶고 이상하게 아이들 보면 좀 측은해 보이고 하는 그런 마음들이 있잖아요. 이거는 교사로 살아본 사람만 알거든요. 그런 마음들이 사그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잘 가르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선생님들이 하고 싶은 교육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예산과 시스템을 만들어 주고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가치가 뭔지 그런 것들이 끌어 나와서 학교가 만들어지면 학부모 만족도도 올라가지 않을까요?
여기에서 가장 큰 핵심이 저는 업무라고 보거든요. 교육부나 교육청은 도의회의 국회와 관련이 많잖아요. 전혀 현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폭 가산점 같은 정책을 만들어 내서 업무를 증가시키는데 실적으로 포장하고 이런 것들로부터 우리 학교를 지키고 교실을 지키고 선생님들 지켜주는 것, 그래서 과도한 행정업무에서 자유롭게 하고 이런 해방구들이 좀 많이 만들어져서 이 노력이 학교를 어떻게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지 자꾸 보여줘야 한다고 봅니다.
결국 가장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정치 기본권이라고 보거든요. 아무리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외치고 요구해도 안 되는 이유가 정치 기본권이 없어서 그들이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봐요. 그래서 저는 잘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은 교사가 정치 기본권을 획득하는 순간 교육의 환경이나 시스템이 많이 바뀔 것이다, 기본적인 민주 시민으로서의 기본권도 없이 사는 교사들에게 정치 기본권이 주어질 때 이런 환경도 저절로 만들어질 거라고 보고 있고 그쪽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제 자녀들과 대화했는데 충격을 받았어요. 왜냐하면, 엄마 아빠가 어느 정도의 진보적인 성향이고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정치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의 기대 수준만큼 생각이 올라오지 않더라고요. 지금 20대는 왜 이럴까 생각해보니, 민주시민교육을 할 때 정치적인 신념이나 관점이 드러나는 그런 토론이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서 학교에서 전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학교에서 이런 민주시민 교육이 이루어지려면 우리가 정치 기본권을 획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고 그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필요한데 이런 것이 아이들끼리 용납이 안 되잖아요. 많이 토론하고 격론도 해 보는 과정에서 교사가 중립을 지키면서 아이들이 경험하고 판단하는 그런 과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 교사가 자기 생각을 주입하는 건 아니잖아요.
교사로서, 현재는 교장 선생님으로, 또 작가로서 그리고 새넷 연수위원장님까지 여러 가지 역할들을 감당하고 계시는데 어느 역할이 가장 어렵고 또 어느 역할이 가장 애착이 갔는지 궁금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선생님이죠.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교장이 되었다고 해도 교실에 가서 다시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들이 다 있죠. 솔직히 이것이 나에게 맞는 옷인가 싶을 때도 많아요. 담임을 할 때만큼의 보람과 재미는 없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또 누군가 길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꼭 내가 꼭 그런 사명감으로 한 것만은 아니지만 그냥 그게 그렇게 살기 싫어서, 그냥 너무 맨날 싸우며 투쟁의 연속으로 살기 싫어서 그랬는데, 자꾸 강요하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참 외로운 자리거든요. 욕도 많이 듣고 교감 때부터 연수도 거의 혼자 다니고, 혼자 앉아 있다가 올 때도 많고 사실 잘 섞이지 못해요. 너만 교장이냐 이런 소리를 많이 듣다 보니 외로움도 많아요. 그래서 나한테 맞는 옷인가 싶기도 하고 근데 또 주위에서 사명감을 자꾸 부여하니까 또 책임감도 생기는 것 같고, 근데 교실에 아이들하고 있을 때만큼 행복하지는 않아요. 책임감과 사명감을 또 어떻게 또 감당해낼까 하는 그런 마음도 있죠.
선생님을 바라보며 응원하고 선생님의 모습에 감동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다는 거를 꼭 아셨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선생님이 정말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선생님들 곁에 남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시 이렇게 뜨거운 마음을 불러일으켜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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