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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야, 우리 같이 놀자!

이 책 한권! / 경산서부초 김지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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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안녕- 영재의 의자(고재현)

어린이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여러 번 다시 산다. 책을 읽어줄 때면 주인공이 되어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아이들과 함께 공감하며 마음을 시원하게 쏟아내게 해주는 동화를 찾았다. 바로 고재현 작가님의 『천천히 안녕』이라는 동화집이다.


그중에서도 '영재의 의자'라는 단편은 출간되었을 때부터 다양한 학년의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 요즘 어린이의 일상을 세심히 재현하면서도 판타지 요소를 적극 활용한 서사로 독자들에게 기묘한 짜릿함을 선사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저학년 아이들조차 학원 때문에 한숨을 푹푹 쉬며 힘들어한다. 학원 숙제로 인한 스트레스는 더 이상 고학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작품을 통해 공부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대신 전하는 또래처럼 실감 나게 읽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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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부터, 송구가 의자에서 쓱 나타난 영재라는 귀신을 마주하는 순간, 독자들은 순식간에 호기심 속에 빠져든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귀신이 되어 대사를 읽으면 평소 꾸벅꾸벅 졸던 아이들도 눈을 똥그랗게 뜨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송구는 숙제하기 싫고 놀고 싶은 4학년이다. 숙제를 덜 한 채로 학교에 갔는데 숙제를 펼쳐보니 다 완성되어 있다! 알고 보니, 재활용 가게에서 사 온 별무늬가 있는 의자의 원래 주인이 대신 숙제를 다 해 둔 것이었다. 그 친구 이름은 ‘영재’, 송구와 같은 4학년이다.


송구는 매일 영재에게 숙제를 맡기고 실컷 노는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심지어는 수학 단원평가까지 대신 보게 하고 ‘100점을 맞으면 엄마 아빠에게 인정받으리라.’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그 상상은 처참히 무너지고 오히려 평소보다 더 낮은 점수를 받게 되자 “거짓말쟁이 사기꾼!”하며 영재한테 따져 묻는다. 풀이 죽은 영재는 숙제를 해줘야 자신과 놀아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정말 가기 싫었던 수학 학원에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까지 고백한다. 영재의 소원은 학원도, 책상도, 의자도 아닌 다른 곳에서 친구들과 실컷 놀아보는 것을 원했는데 그 방법을 몰라 다시 의자로 돌아와 방법을 찾고 있던 것이었다.


미안해진 송구가 영재를 위해 노는 방법을 알려주는 장면이 있다. 이 부분에서 잠시 책을 덮고, “얘들아, 우리가 영재가 한을 풀 수 있게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알려주자!”라며 질문을 던졌다. “영재의 한을 풀어줄 신나는 놀이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노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핸드폰 게임 해요, 코인 노래방 가요, 다이소가요, 편의점에서 라면 먹어요. 4컷 사진 찍어요”


예상하지 못한 답변에 ‘이토록 현실적인 놀이가 지금 아이들의 놀이 방식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씁쓸함이 함께 따라왔다. 현재 아이들 놀이 문화가 이렇게 소비 중심으로 흐르게 된 배경에는, 시간적 여유의 절대적인 부족과 스마트폰의 일상적인 노출이 분명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결국 영재의 한도 한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 법’을 잃고 있는 건 아닌지 함께 고민해야 할 순간이다.


이 작품은 시험과 숙제에 짓눌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잘하는 건 칭찬 안 해줘. 못하는 것만 혼을 내. 못하는 걸 잘할 때까지, 모두 잘해서 1등을 할 때까지.”라는 영재의 대사가 있다. 국어도 잘하고 미술도 잘하는 영재는 잘 못하는 수학 때문에 늘 주눅 들어 있었다. 어울리는 친구도 없이 학원에 내몰린 영재는,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하는지 모르는 영재는 이 작품에만 있을까? 두 아이는 책 속에만 있는 아이들이 아니다. 교실 안에는 시험을 잘 봐서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싶은 송구 같은 아이들이 있고, 친구랑 어울려 노는 법을 알 기회를 잃은 영재 같은 아이도 있다.


이대로 책만 읽기 아까워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을 펼쳐보았다. 비경쟁 독서토론은 개인의 독서를 공동체의 독서로 만드는 자리다. 월드 카페처럼 여러 사람과 자리를 바꾸며 책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을 통해 작품을 해석하는 토론이다. 이 토론의 장에서 아이들이 영재와 송구를 통해 자기 모습을 보기 바랐다.


토론 자리에서는 영재가 놀지 못하고 떠난 것이 아쉬웠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영재가 한을 풀고 하늘에서 편하게 놀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비경쟁 독서토론에서는 자기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공부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할 때 서로가 공감해 주면서 위로받는 팀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공부하면, 엄마가 좋아해. 그래서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것이 공부하는 거야.”

“나도! 나도!”


아이가 사랑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하는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아이들이 느끼는 무게감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해져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나도 어린 시절에 사랑받기 위해 공부했던 때가 있었다고, 아직도 못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책하고 있다고 너희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단편 동화를 읽고 친구들과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속에서 독자들은 ‘나’를 발견한다. 한 시간이 넘는 토론 현장에서 말과 글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만든 명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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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살자

- 스스로 하는 거는 당연한 게 아니라 대단한거다.

- 노력 없는 결과는 값어치가 없다.

- 자신의 행복을 따라가라, 친구와 함께.


아이들이 책을 읽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며 서로 따뜻하게 연결되기를 바란다. 그 속에서 자기 모습을 바라보고, 위로받고, 공감받으며 그렇게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에필로그

‘영재의 의자’ 작품을 고민했던 지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죽음이라는 소재에 관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결말에서 영재가 송구와 놀지 못하고 떠나버리는 지점이었다. 고민하다가 고재현 작가님께 직접 연락을 드렸고, 정말 감사하게도 고민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아래는 고재현 작가님이 직접 남겨주신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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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론
2. 포럼&이슈
3. 특집
4. 수업 나누기 정보 더하기
5. 티처뷰
6. 전국NET 소식
7. 이 책 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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