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 / 새로운학교지원센터
가사 도우미 로봇 아니타가 자기는 기억을 잊지 않고, 화내지도 않으며 우울해하거나 취하지도 않는다고 말할 때 반박하지 못하는 엄마. 우리 반 누구에게는 약간의 짜증과 한숨을 감추며 “아까 선생님이 말했는데, ~” , “자, 잠깐만 다시 설명해줄게. 잘 들어.”라고 하는 나보다 로봇 선생님이 훨씬 좋은 선생님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해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AI 알파고가 이세돌을 4:1로 이겼다.
‘데이터교는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뤄져 있으며, 어떤 현상이나 실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시스템이 당신 자신보다 당신을 더 잘 알게 되면, 권위는 인간에게서 알고리즘으로 넘어갈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더 이상 고유한 영혼이나 자유의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 칩이라고? 아무리 유발 하라리라지만……. 비약이 심한 것 아닌가, 끝까지 읽기가 힘들었다.
OpenAI에서 개발한 인공지능(AI) 챗봇 ChatGPT는 2022년 11월 30일 출시 후 5일 만에 100만 명, 2개월 만에 월간활성사용자수 1억 명을 돌파했다. 챗GPT가 기반으로 하는 ‘생성 AI’는 자가학습 알고리즘으로 새로운 디지털 이미지, 영상, 음성, 텍스트, 코드 등을 ‘창조’해낼 수 있는 기술이란다. 그 겨울, 누구와 만나든 ChatGPT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교육부는 지난 2월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교육 비전으로 모두를 위한 맞춤 교육을 선포하고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맞춤형 학습 기회를 지원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을 포함한 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학습자료 및 학습지원 기능 등을 탑재한 교과서? 교과서? 그런데 교과서라고?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가 Z세대 구직자 1592명을 대상으로 ‘AI 활용 경험’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3%가 ‘실제 사람 대신 AI에게만 고민을 털어놓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영화 ‘Her’의 사만다를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떠오른다. 감정 교류형 AI ‘레플리카’의 유료 구독자는 50만 명 이상이며, 구독자 중 60%가 AI와 로맨틱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던데.
AI가 만들어내는 대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사실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던 때에는 두렵기도 했지만 기대되기도 했다. 산업계의 변화를 교육의 변화로 만들 여러 전망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팬데믹의 공포로 정부 지침에 모든 걸 맡겼던 3년여 동안 10년 넘게 축적해온 학교의 자율 역량을 야금야금 파먹었고, 보수 교육감이 선출된 지역의 혁신학교 정책이 폐기되었으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다. 눈과 귀를 의심할 비상식적인 일들이 계속되며 낭패감과 회의감, 무력감에 시달렸다. 모든 게 답답하기만 했음에도 코로나19를 겪으며 분명 달라진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회복을 위해 힘을 내던 즈음 서이초 사건은 교단을 검게 물들였다. 거기에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교과서 정책에 한숨과 분노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내란과 탄핵에 이르기까지 집단 우울증을 겪으며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대놓고 변명하며 상황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아무튼 지난 몇 년이 이렇게 흘렀다. 이제라도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기술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어떤 방향으로 사용하며 교실과 학교를 바꾸어나갈지 이야기 나누고, 비판하고 제안하며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
교사들이 AI에 거는 가장 큰 기대는 오랜 교육적 난제였던 교실 내 학습자 다양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AI가 학생 개개인의 학습 속도, 수준, 흥미에 맞춰 차별화된 학습 경로와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모든 학생에게 같은 교육을 제공하는 전통적 방식의 한계를 극복할 유용한 도구가 되기를 바랐다. 특히 기초학력 부진 학생이나 다문화 학생 등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AI가 지치지 않는 비판단적인 보조 교사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학습 결손을 보완하고 교육 소외 계층을 지원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이 존재했다. 또 AI가 결과 중심의 평가에서 벗어나 학생의 학습 과정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는 '과정중심평가'를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학습 결과에 대해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피드백을 제공하여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신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채점, 행정 서류 처리, 데이터 관리 등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업무를 AI가 자동화함으로써, 학생과의 인간적인 상호작용이나 수업 설계와 같은 본질적인 교육 활동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낙관적인 기대 이면에는 AI 도입이 가져올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깊은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 교사들의 우려는 기술 자체의 결함보다는 기술이 교육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 집중된다.
기술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정서적 유대와 공감을 저해할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을 넘어 공동체적 삶을 배우는 사회화의 장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AI 중심 교육이 이러한 인간적 관계 형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불안은 매우 근본적인 것이다. 위의 기사에서 보았듯이 AI는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친구와 가족의 역할에 파고들고 있고, 의존도가 높은 사용자들의 사회적 관계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인지적·윤리적 위험에 대한 우려가 크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AI가 제공하는 즉각적인 답에 의존하게 되어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소위 'AI 의존성'이 심화될 것을 걱정한다. 이는 비판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알고리즘의 편향성, AI 기반 평가의 공정성 시비, 학생 데이터의 프라이버시 침해 등 심각한 윤리적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우려 사항으로 지적된다.
디지털 정보 격차의 심화 가능성이 높다. AI가 교육 격차를 해소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정반대로, 부적절한 도입은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디지털 기기에 대한 접근성, 가정의 지원 수준, 디지털 리터러시 능력의 차이가 새로운 교육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AI도구 사용료에 따라 제공하는 정보의 질에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성적으로 드러난다는 보도도 있었다.
경쟁과 효율, 속도를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의 특징으로 꼽는 우리나라에서 AI 도구는 어떤 방향으로 우리 아이들의 삶을 바꿀지 예측하기 어렵다. 모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된다는 결과 중심의 태도, 선진국의 기술 모방으로 이룬 경제 발전의 경험이 내재화된 사회는 이 성능 좋은 AI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까. 교실과 아이들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심각하게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동료와의 협력을 시간과 노력, 관계 맺기의 에너지가 적게 드는 AI 도구와의 협력으로 대체하고 있는 현실, 내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목도한 편향과 혐오 현상 역시 매우 걱정스럽다.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철학적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기술 수용의 당위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나 교육 현장에서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직관 사이에서의 분열은 모든 교사가 겪는 갈등이다. 산업혁명 당시 장인들이 자기 기술을 보조하는 새로운 도구는 받아들였지만, 자기 기술과 판단을 대체하는 기계에는 저항했다고 한다. 교사들이 느끼고 있는 불길하고 불편한 감각, 또는 교육적 가능성과 성과는 측정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렇기에 각자 다른 관점과 경험으로 시끄러워질 담론의 장이 필요하다. 2024년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문화부가 인공지능 활용 권장안의 초안을 마련한 뒤 다양한 교육이해관계자로부터 피드백을 받았을 때도 현직 교원들의 피드백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었다고 한다는데, 우리는 이 중요한 시기를 허비했다.
시대착오적인 교과서 논쟁으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엉뚱한 곳에 사용하는 게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하는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교육 전문가로서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는 건강한 사회를 바란다. 변화 적응의 실패자가 될까 하는 불안보다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예측하며 교육 철학을 다시 세우며 우리 아이들을 위해 AI를 배워서 써먹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새넷교사는 보고 겪고 있는 일, 전망과 대안을 나누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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