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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받지 않는 교육을 꿈꾸며...

시론 / 새로운학교네트워크_정책위원장 유재

촛불 정부에서도 교육은 찬밥 신세

12·3 비상계엄은 온 국민에게 과거 독재 트라우마를 일깨우며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대한민국은 늘 그래 왔듯 수백만의 촛불이 모여 위기를 해결했다. 그 과정에서 젊은 남성의 우경화가 대두되며 일부에서는 교육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같은 교육을 받은 젊은 여성이 촛불의 주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잃었다. 이렇게 혼란의 시기에는 늘 교육에서 원인을 찾으며 사회의 모든 문제를 교육 탓으로 돌리려는 자들이 나타나며 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근대 국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난 진보 정부라 해서 교육이 크게 달라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든 보수든 정치권은 언제나 교육을 계륵(鷄肋)으로도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표 계산이 최우선인 정치인과 그 언저리에 머무는 자들에게 교육은 잘 못 건드리면 폭탄이 되는 골치 아픈 존재일 뿐이다.


촛불로 들어선 새 정부지만 난 두 가지 측면에서 앞서 우려했던 현상을 발견한다. 우선 대선공약에서 교육 공약의 내용과 질이 형편없으며 우리를 기만하는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두 번째로 교육부 장관 인선과 낙마에서 알 수 있듯이 유‧초‧중등 교육은 안중에도 없으며 교육 분야는 능력과 경력이 아니라 여성 할당에 해당하는 분야일 뿐이라는 것이다.


8대 교육공약 vs 선거공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후 선관위) 홈페이지에 탑재된 선거공보에는 4가지(‘선거공약서’, ‘책자형 선거공보’, ‘전단형 선거공보’, ‘10대 공약’)가 있다.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언제나 찾아볼 수 있는 내용으로 선관위에 공식적으로 제출한 문건이다. 선거 과정에서는 이러한 공약 이외에도 직능별, 분야별 타겟을 정해 공약을 발표하기도 한다. 교육계를 타겟으로 한 공약은 당시 이재명 후보가 스승의 날에 발표한 ‘8대 교육 공약’이 있다. 그리고 그 ‘8대 교육 공약’은 민주당에서 운영하는 네이버 블로그에 탑재되어 있었고, 선거가 끝나고 한 달여 만에 그 블로그는 볼 수 없는 상태(비공개인지 삭제인지 알 수 없음)가 되었다.


우선 선관위 홈페이지에 있는 교육 공약 내용을 살펴보면 선거공약서에는 ‘복지 강국’이란 주제 아래 ‘온 동네 초등돌봄 체계 구축’, ‘교육 강국’이란 주제 아래 ‘민주주의 교육 강화’와 ‘교권 보호 및 민주적 학교 운영 기반 마련’이란 내용만이 있고, 10대 공약에는 ‘내란 극복’ 주제 아래 ‘역사교육 강화’, ‘국토 균형발전’ 주제 아래 ‘서울대 10개 만들기’, ‘생활 안정으로 모두가 잘 사는 나라’ 주제 아래 ‘온 동네 초등돌봄 체계 구축’과 ‘기초학력 학습 안전망 지원 확대 및 자기주도학습센터 운영’,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함께 돌보는 국가’ 라는 주제 아래 ‘지자체 협력형 초등돌봄 추진’과 ‘초등학교 방과후학교 수업료 지원 확대’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책자형 선거공보에는 ‘수학‧과학‧공학‧기술 교육 강화’만 있고, 전단형 선거공보에는 교육 공약이 없었다. 선거공약서는 선관위에서 페이지 수를 제안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별다른 내용이 없다. 그래서 새학교넷 회원을 대상으로 8대 교육 공약의 내용 중 우선하여 추진했으면 하는 공약과 우려스러운 공약에 대해 설문했고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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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정리하면 8대 교육 공약 내용 중 극히 일부만 선거공보에 포함되었고 선거공보에 포함된 내용도 대부분이 우려스럽거나 관심 없는 공약임을 확인할 수 있다.


교육이 천대받지 않기 위해선

교육이 이렇게 천대받는 이유는 교원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힘이 없는 이유는 새로운 교원단체를 설립할 수도 없고, 정치기본권마저 없기 때문이다. 교육기본법 제15조 제1항은 “교원은 상호 협동하여 교육의 진흥과 문화의 창달에 노력하며, 교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향상하기 위하여 각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에 교원단체를 조직할 수 있다”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제2항에 “제1항에 따른 교원단체의 조직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라고 되어있다. 이 법은 1997년 12월 제정되어 다음 해 3월 시행되었는데 28년이 지난 현재까지 교육부는 대통령령을 만들고 있지 않다. 다만 부칙에 구 교육법 제80조에 규정된 ‘교육회’를 본 법에서 규정한 ‘교원단체’로 한다고 명시하여 교총만이 유일한 교원단체가 되었다. 교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결사체는 노조나 교원단체의 형태를 취해야 정부나 교육청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노동조건보다 교육에 좀 더 초점을 맞춘 다양한 교원단체들이 현존함에도 교육부의 노골적인 태만으로 인해 정식 교원단체로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교원에게는 정치기본권이 없다. 지난 새학교넷 웹진에 실었던 “‘교원의 정치적 중립’의 시작과 왜곡” 글에 나와 있듯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본래 의미는 행정 권력이 교육에 부당한 개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권위주의 정부가 지속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정권의 입맛에 맞게 교원이 정치에 개입할 수 없는 의미로 변질하고 왜곡된 것이다.


이렇듯 교원은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결사체인 교원단체를 설립할 수도 없고, 일과 이후에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정치적 기본권마저 박탈당한 채 정치인과 그 언저리에 있는 자들로부터 천대받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선진국 중에서 대한민국만이 유일하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대부분의 OECD 회원국은 업무시간 외에 정치기본권이 보장되어 있고 정당 가입과 휴직 상태에서 선거 출마 등이 자유로운 경우도 많다. 이런 나라들의 특징은 교원들이 소리높여 정치권에 무엇인가를 해달라고 하지 않아도 정치권에서 먼저 교원단체를 찾아와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교권을 바로 세우고 싶다면 각종 민원으로부터 면책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응당 시행했어야 할 교원단체 시행령을 제정하고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교원에게도 보장하도록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마치며

새 정부는 수백만의 촛불 시민에게 큰 빚을 졌지만, 그 고마움을 언제까지 지니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역사는 시민에게 늘 깨어있으라 경고한다. 국정기획위원회에서 교육과 관련해 어떤 발표를 할지 지켜봐야겠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에겐 꼭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다. 새학교넷이 교원단체로 우뚝 서서 학교 변화를 선도하며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쌓고, 교원의 정치기본권이 보장되어 학교 변화로부터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며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통해 얻어낸 성과를 정치인과 그 언저리에 있는 자들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학교를 바꾸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교육이 우대받는 세상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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