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이형민(중등, 전남 순천)
여러 의견이 경험의 한계를 넘을 수는 없지만, 그것도 상황의 결과물이고 활동이 가지는 보편성이 있어 서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의문의 여지 없이 옳고 정당한 이야기만 나열한다면 질문과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논란의 여지나 부족한 점이 있다면 양해 부탁드립니다.
# 성찰과 전망
혁신학교로 대표되는 새로운 학교 운동이 10여 년을 넘겼다. 어떤 활동이든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출발 당시의 취지보다는 관행에 의존하는 경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목적이 다른 세력이 힘을 겨루는 일이 아니라면 실제 변화나 문제해결은 생각보다 통속적이고 일상적으로, 때로는 엉뚱한 방식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가끔 우리 스스로 만든 어떤 틀이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경향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정 시기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된 활동들이 시간이 지나 문서상의 집행 사안으로만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매년 비전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인 해결과제로 연결하는 과정 또한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스스로 교육적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자발적 활동으로 연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활동을 돌아보는 성찰의 과정이 필요하다. 새로운 학교 운동의 과제와 전망 또한 기존 활동과 단절될 수 없으며 지난 활동의 연장과 확장의 과정일 수 있다. 전망은 참신한 아이디어에 의존할 수도 있지만 자기 활동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게 생각하는 지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음 활동의 방향에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자기 활동이 중요한 정보가 되는 사람들은 매번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자주 성찰하고 서로 활동을 돌아보는 공유과정이 또 하나의 중요한 학습이자 혁신이며 창의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우연한 결과를 창의성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지속적인 시도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말을 한다. 가치나 방향은 외부의 자극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구체적인 과제 해결은 동료들과 서로의 활동을 공유하고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
# 변화는 여러 조건의 결과물
우리는 대개 결과나 성과에 주목하지만, 그 조건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거나 오히려 어떤 특정 조건만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관행이 중시되는 행정 문화의 특성상 새로운 시도는 존중받기 힘들다. 검증되고 안전하며 책임부담이 적은 것을 선호한다. 이는 사업화하기 수월한 사례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통상 변화라는 단어를 과정과 결과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기는 하지만 ‘작은 변화’를 어떤 ‘작은 것’ 하나만 바꾸면 되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규모와 상관없이 변화는 결과물에 가깝다. 물론 작은 변화가 조건이 되어 영향을 주는 경우도 많지만 아무리 작은 변화라도 실제로는 여러 조건이 성립되었을 때 나타나는 마지막 과정에 가깝다.
작물도 특정 요소가 과하면 성장에 문제가 생기듯이 아이들이 보여주는 성적도 가정환경, 정서적 조건, 교우관계, 부모와 관계 등 내외적으로 여러 조건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인위적인 하나의 변인으로 나머지 다른 조건이 바뀌는 게 아니다. 오히려 무리하게 빚어낸 결과물이 내적 힘을 파괴하는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를 재구조화하지 않으면 이뤄지기 어려운 다양한 주제나 과제들이 많다. 기존의 학교구조는 그대로인 채 변화의 결과물만 강요받는 상황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학교 변화의 여러 주제나 지향은 수많은 여러 조건과 협력적 '재구조화' 과정을 거친 결과물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거꾸로 전혀 다른 조건의 학교에서 그런 비슷한 결과물을 산출하기 위해 헌신과 노력을 짜낸다고 혹은 공문서의 문구만으로 다른 문제들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결과물 중심의 사례 공유가 가져온 부작용의 일면이라고 생각한다.
혁신학교의 출발
# 변화, 자기문제를 해결하는 협력적 과정의 결과물
혁신학교의 출발은 변화의 동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외부의 권위 있는 누군가가 특정 사업이나 과제를 던져주지 않았다. 저마다 가진 문제로부터 출발하였고 그 과정에서 협력이 일어났다. 자신들의 교육적 욕구를 확인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해 한 해 시도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거쳤다. 그런 과정에서 학교와 교육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형성되었다.
학교 변화는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적 과정이다. 변화는 문제해결 과정의 부산물이며 협력이 곧 확장과 확산이다.
"처음에는 교사의 수업 방법과 기술을 고민하다 학생들의 ‘활동’을 보장해주는 일이 수업의 중요한 목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의 활동과 참여를 고민하면서 관계를 포함한 정서적 요인의 영향이 통제나 관리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판단에 이르러 학생-학생, 학생-교사가 서로 들어주는 관계를 형성하고 정서적 결핍이 없도록 돌보는 것이 학생활동의 또 다른 조건이며 수업과 생활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교과 지식이 그들의 삶으로 연결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정말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고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객체가 아닌 구성원으로서 경험이 필요하다는 자연스러운 요구와 함께 학급자치와 학생자치를 넘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데 무엇이 필요한지, 마을과 지역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새로운 교육적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나아가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 고민이 교과서와 교실을 넘어 마을과 지역으로 확장되어 삶과 연계된 교육과정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지역과 연계하는 교육활동과 체험에서 출발하였으나 지역과 함께하는 공동의 경험을 통해 ‘교육자원으로서 마을’을 대했던 입장이 ‘지역자원으로서 학교’의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학교의 힘만으로 해결될 수 없었던 지역의 문제들이 더 효과적으로 해결되는 과정 또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 운동, 활동, 자발성
구성원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힘을 자발성이라고 말한다. 활동이나 운동은 자발성의 또 다른 표현이다. 보상이나 관리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는 힘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점은 자발성을 태도나 성향의 문제로 보고 특정 대상이나 개인의 변화를 목적으로 도덕적 당위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상황이나 문화적 의존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국의 적지 않은 학교들이 소통과 협력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학교가 소통과 협력을 어렵고 힘든 점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특별히 소통과 협력을 반대하는 누군가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 협력의 조건
전국적으로 수많은 기관이나 조직이 존재하지만, 실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낸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주목할 사실은 문제나 위협요인이 분명할 때 합의가 더 수월하게 일어나고 협력과 참여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타인에게 전가하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며 논쟁하는 활동 방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가까운 예로 코로나 이후 원격수업 대응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유사 이래 최대의 협력이 일어났다. 물론 나름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2~3주 만에 어느 정도 준비를 마쳤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위협적인 환경이었다. 연수원에서는 단 한 시간의 연수도 없었고 상급 기관의 지침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흔한 관리자들의 훈화나 임장 지도도 없었다. 편차는 있지만 분주하게 자발적인 협력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젊은 선생님들이 학교 교육활동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해결 과정에서 자발적인 참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그들이 경험했던 참여는 특별한 교육적 질문 없이 관행에 따라 도입되거나 누군가의 의도대로 동원되는 방식에 가까웠다.
그러나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역할로 기여하는 경험이 일어났다. 공적 기여의 경험이 내적 변화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우리는 참여의 의미를 ‘문제해결 과정에서 구체적인 역할로 기여하는 과정’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 능력과 역량, 상황의 반영물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생각을 나눌 필요가 있다.
먼저, 능력과 역량이란 문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다시 말하면 구체적인 역할과 실천의 영역이다. 그 대상이 학생이든 성인이든 도덕적 주입이나 당위를 앞세우기보다 문제 상황을 충분히 공유하는 과정이 설계되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능력과 역량이 상황이나 맥락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최근 연구처럼 연간 계획 중 많은 회의와 교육활동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능력과 역량, 이를 위한 역할과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자기 활동 대상의 처지와 여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상황이다. 서민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가를 능력 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기 힘들다. 수업과 교육과정의 변화는 인터넷과 연수원에 떠도는 수많은 기법과 이론 지식도 필요하지만, 학생들 곁에서 그들의 처지와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교사들의 몫이었다. 새로운 학교 운동을 이끌어가는 리더 교사들 또한 동료 교사들이 언제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하는지, 그들의 감정과 정서를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하면 자기 역할이 벅찰 수밖에 없다.
전문적 학습공동체, 협의 문화, 민주적 학교 운영, 공동체와 같은 지향이 ‘결정 사항을 집행하고 점검’하는 수단을 넘어 자기 활동 대상의 구체적인 처지와 상황을 나누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 타인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
다음으로 그 대상이 학생이든 성인이든 우리 안에 타인을 의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교육, 역량 강화, 양성, 강연, 포럼 등 이름은 다양하지만, 이념적 성향과 무관하게 주입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으며 각자의 활동과 삶을 끌어내고 자기 문제를 찾는 기회를 할애하는 데 인색하다.
평화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확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보겠다는 활동 또한 근본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보고 언제든지 그들을 바꿀 수 있다는 관계 방식을 벗어나는 일이었으며 하향식으로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학교 내의 구성원들을 개조 대상으로 접근했던 방식을 탈피해보자는 운동이었다.
전국적으로 의미 있게 소개되는 학교들의 결과물은 각자 다르지만 그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구성원 간 관계 방식의 변화를 위해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것이다.
# 문제상황, 방법부재? & 공유부재?
우리는 보통 문제가 발생하면 방법이나 대책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문제를 감지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적극적으로 자기 역할을 활성화한다. 그러나 가끔 어떤 묘안을 내놓더라도 실제 집행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소재를 찾고 또다시 태도나 성향의 문제로 회귀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사실 ‘방법’보다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인식의 차이가 실행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방법이나 대책은 주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면 아무리 좋은 방법을 제시하더라도 그 상황을 심각한 문제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대책으로 보일 리가 없다. 아무리 회의에서 좋은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것과 상황인식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상황에서 회의는 결정을 관철하는 수단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럴 때일수록 머리를 맞대고 문제 상황이 충분히 공유되었는지 걱정되거나 우려하는 점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새로운 학교 운동의 의미
새로운 학교 운동은 교육 운동 측면에서 개인과 교실 단위의 실천이 학교 단위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활동 영역의 확장은 자연스럽게 사고의 확장도 불러왔다. 교사들의 일상으로서 학교 자체가 활동과 성장의 장이 되었고 그 결과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학생, 수업, 교육과정, 학교 그리고 그 이면의 소통, 협력, 참여, 공동체 등 자기 공간에 대한 능동적 해석이 활발해졌다.
# 학교 변화의 목적, 개인 업무구조와 협력적 지향
새로운 학교 변화의 근본 지향은 고립된 개인 업무구조를 탈피하는 것이다. 학교가 분주하고 힘들어질수록 함께 머리를 맞대는 일을 불필요한 일로 여기고 주어진 일을 개별 능력으로 제때 처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학교의 문제는 협력 없이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 그리 많지 않다. 필요성과 원인을 함께 찾고 역할을 찾는 데 상호조력이 필요하다. 함께 하지 않으면 중요한 문제들은 누적되기 마련이다. 결국, 혼자서 책임지는 구조가 교사 소진을 가속화 한다. 심할 경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방치된 공간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연결되지 않은 개인의 업무구조는 학교의 공적 대응력을 약화하는 결과만 초래하게 된다. 그것이 학교 교육력이다.
# 학교의 활동적 특성
학교는 특이하게 업무적 특성과 활동적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사업이나 업무’는 ‘매뉴얼이나 지침’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방법이나 지침은 주입이나 전달로도 비교적 해결이 가능하다. 이런 업무방식은 주로 행정조직에서 관행적으로 효율이 높은 하향식(Top down) 지침에 의존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변화나 새로운 시도는 매뉴얼이나 지침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활동이나 운동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자발성이 필요하며 사람의 ‘가치나 신념’에 따라 ‘관계 방식’에 따라 지역마다 ‘조건’이 다양하다. 또한 가치나 신념은 활동과 경험을 통해 강화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서로 다른 가치나 신념은 방침보다는 상호 ‘공유’하는 방식이 적합하다. 이를 통해 활동 당사자의 자기 사고와 판단을 유도해야 자기 방식으로 지속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활동이 가지는 약간의 보편성은 있지만, 워낙 그 조건이 다양해서 상향식(Bottom up) 활동이 더 적합할 수밖에 없다.
학교의 공적 대응력과 문제해결력 즉 교육력은 업무를 집행하는 기능 보다 활동을 공유하는 과정을 중시할 때 강화될 수 있다.
# 활동 방식과 구성원의 성장
구성원의 성장은 참여 과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책임을 추궁하고 주장을 통해 요구・관철하는 활동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실제 문제해결에 효과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을 민원성 요구자로 만들어 성장과 확산에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학교 운동은 구체적인 역할로 기여하는 참여 과정을 통해 진행되었다.
구성원의 활동 방식이 중요한 이유는 성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교육 관련 서적 중 교사들의 기록을 담은 책들이 이전보다 많아진 것은 출판기술 때문만은 아니다. 참여의 경험으로 인해 공유해야 할 자기 활동 정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요구가 있다. 사전적 개념과 별개로 전문가란 지식소비자로서 이식된 지식의 양보다 자기 활동이 공유할 만한 정보가 되는 정보생산자에 가깝다.
교사들에게 활동은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적 경험이다. 공유된 임상 정보가 없다면 질병에 대한 사회적 대응력이 떨어지듯 자기 활동의 부재는 공유 부재로 이어지고 공유 부재는 학교의 공적 대응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 공유과정으로 학습 개념의 확장
학교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다양한 협력을 통해 학습의 개념을 자기 활동을 공유하는 과정으로 확장하여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교 밖 다른 전문가들의 성장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 활동이 없는 특정 시기는 지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할 수 있지만, 정점에 이르기까지 가르쳐 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진 않는다.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의 활동을 공유하면서 자기 전문성을 확보해나가는 방식으로 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학습의 본질을 자기 활동을 ‘공유’하는 과정으로 넓게 바라봐야 한다. 학습은 근본적으로 지적영역이라기보다는 ‘실천과 활동’의 영역이다. 결국, 모든 지식과 정보는 활동의 결과물이며 최고의 학습교재는 자기 활동이며 활동을 위한 최적의 공간은 바로 학교이다.
우리가 강조하는 전문적 학습공동체는 실천기반 공유구조(Practice based professional learning community)이며 학교를 협력적으로 재구조화하자는 지향이다. 서로의 교육적 의도와 실천을 공유하고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일상의 협력적 과정을 말한다. 단순한 교사 동아리나 독서클럽 혹은 외부지식에 의존하는 연수구조로 접근하는 경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학교가 가진 여러 소통구조 이면에 자기 활동이나 사고를 공유할 기회와 장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 교사 소진, 업무절대량과 정서적 요인
앞선 경험을 통해 교사 소진의 원인 또한 업무절대량보다는 정서적 요인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기 활동의 교육적 의미를 찾는 것과 개인 간 고립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 중요한 정서적 여건이다. 교사 소진에 대한 최근 연구 또한 정서적 요인, 학습공동체 그리고 참여 과정을 해결과제로 제시하였다. 유사한 맥락이다.
일례로 업무 정상화 정책이 실제 업무경감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청으로 업무를 단순 이관하고 추가 인력 배치로 이어져 지역교육청의 몸집만 불리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지역청 본연의 역할과 거리가 있는 물리적 업무 대행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체감도는 낮다.
그러나 학교 내부를 들여다보면 업무와 활동의 경계가 모호하다. 학교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향하는지 공유된 방향이 없다는 게 더 근본적인 어려움이다. 그로 인해 각자가 느끼는 문제에 대한 우선순위나 공감대 형성도 어려워져 문제해결은 더뎌지고 만다. 상호 책임 공방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과도한 비유라고 생각되지만, 검사의 기소 편의가 사회적 정의로 연결되지 않았던 것처럼 학교의 업무 편의가 사회적 요구나 공공성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가 지향하는 방향은 충분히 공유되어야 한다. 구성원들은 요구하는 방식을 벗어나, 구체적인 역할로 기여할 수 있도록 상호조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교육적 선택이 가능하고 문제해결로 이어질 수 있다.
# 관계를 포함한 정서적 요인, 학력과 내적 변화(인성)
학생들 또한 관계를 포함한 정서적 요인이 인성뿐만 아니라 학습력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확인하였다.
우리는 학력을 위해 일방적으로 교과 투입량을 늘리는 접근방식이 실제 그들의 성적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몇몇 시도교육청에서 기초 기본이라는 이름으로 학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명시적으로는 학력이지만 성적을 강조할 때 오히려 학력 격차를 더 조장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수업 방법의 차이를 떠나 교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익숙한 학생들만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차별구조에 가깝다. 아직까지 학교는 학력 문제를 교실 활동 위주로 해결하는 경향을 벗어나기 힘들다. 학력이라는 이름으로 내려오는 예산은 학교 구성원들에게 수업량을 늘리는 것 외에 그들의 수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조건을 탐색하는 활동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전통적인 방식으로 수업투입량을 늘리기보다 일상의 학급자치를 통해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서로의 의도가 잘 공유될 때 수업과 일상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 능력과 사회화
우리가 가진 능력의 많은 부분은 사회화 과정의 결과물이라는 학자들의 지적이 있다. 학력과 인성 또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다. 학교가 선택한 사회화가 도덕적 순응을 학생들에게 부과하는 방식으로 실현되어서는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최근에 강조해왔던 ‘학생들의 선택, 관계와 협력, 활동과 표현’을 지원하는 일은 사회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것은 학생 입장에서 보장되어야 할 당연한 가치이며 권리이다. 우리가 경험한 새로운 학교 운동의 실천 또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수업 혁신이 개별교사의 능력개발이나 교수 기법에 머물러 있는 것 또한 수업의 외적 요인 특히 관계・정서적 여건을 간과한 결과일 수 있다. 수업 나눔과 협의회의 초점이 해당 수업 차시에만 초점이 맞춰질 때 기법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고, 의도하지 않게 교사들은 평가적 시선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수업 나눔과 협의의 목적은 해당 수업에 영향을 미치는 교실 안팎의 다양한 요인을 함께 찾고 해결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학교의 전반적인 가치와 문화, 학교의 교육적 의도, 학생과 교사들의 관계 방식, 학생-학생 간의 일상적인 갈등이나 문제해결 방식 등 여러 조건을 함께 탐색하는 과정으로 삼아야 한다.
수업과 교육과정을 포함한 학교 모든 일상은 ‘학생이 선택할 기회를 늘려주고, 관계를 맺고 협력할 수 있고, 자기 활동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이를 충족하기 위해 다양한 여건을 돌아보는 것이 수업과 교육과정 혁신의 중요한 지점이다.
# 수업, 관계 방식과 활동 방식 변화의 결과물
일상에서 교사들의 ‘관계 방식과 활동 방식’의 변화가 수업과 교육과정의 변화로 이어졌다. 외부의 자극이나 연수도 기여했지만, 학생 곁에서 그들의 처지와 상황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수업과 교육과정에서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을 배움의 주인으로 대하는 관계 방식의 변화 그리고 학생들의 ‘선택과 활동’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활동 방식이 변했을 때 나타난 결과이다.
정책으로 수업과 교육과정을 강조하지 않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교사들의 관계나 활동 방식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게다가 학생활동을 이전보다 더 강조했지만, 그것 또한 학생들에게 ‘책임’이라는 말로 의무사항처럼 부과하는 방식으로 해소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수업과 교육과정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과 관계를 맺고, 가까이에서 그들을 경험할 충분한 기회나 장이 학교계획에 포함되어야 한다.
# 교육과정에 대한 재해석
교육과정은 가르쳐야 할 내용과 계획 수립, 공유, 실행, 평가, 환류 단계 그리고 문화적 배경을 만들기 위한 보이지 않는 노력에 이르기까지 학교가 자기 의도를 갖는 모든 행위를 교육과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 재구성을 위한 과제 중의 하나는 내용 체계로서 학문적 정합성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구성원이 장단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교육적 의도나 욕구를 공유하는 과정이 없이 매년 학기를 맞이하는 관행을 극복하는 일이다.
최근 학부모와 학생들로 인한 어려움이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학부모들이 날카로운 민원인 역할에 머물러 있거나 학생들이 공격성을 보이는 횟수가 잦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 원인 또한 학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도나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보나 전달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이를 위해 사전에 학교가 합의한 가치나 방향이 있어야 한다.
공격성은 대개 익명성에 기초하고 있다. 익명성이란 인적 사항이 아니다. 학교 구성원으로서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는 매번 같은 이름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들의 감정과 욕구 상태, 무엇을 원하고 불편해하는지, 밤새 무슨 일은 없었는지 등 서로의 처지나 상황, 의도를 나누기 위해 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결과나 사업으로 학교를 평가하지만, 실제 보이지 않는 문화적 환경의 영향으로 변화는 촉발된다.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학교들은 학기가 시작되는 첫 주를 모든 구성원이 일 년을 함께 설계하고 서로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나누고 준비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우리는 교육과정을 가르쳐야 할 내용 체계로만 협소하게 바라보거나 형식으로서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 마을과 지역으로의 확장
가르치는 행위로서 좁은 의미의 교육을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과정으로 해석할 때 지역 내 협력으로 이어졌다. 이는 공공성 확보의 중요한 요소이다. 가르치는 행위로만 교육을 해석할 때 일부 주제를 제외하고 자격증을 가지거나 전문적 식견이 있다고 인정받는 소수만이 참여할 수 있는 획일성과 배타성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교육의 공공성과 부합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시민으로서 성장을 돕는 일은 다양한 자원들이 다양하게 기여할 수 있는 장을 필요로 하며 다양성과 민주성을 통해 근본적으로 공공성에 기여할 수 있다.
학생 성장의 여건을 함께 해결하는 일은 관계나 정서적 결핍이 없도록 돌보는 일과 선택과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지역의 다양한 자원을 연결하고 관계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학교 밖 일상의 여건이 학교 교육력에 직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역 교육력 회복이다.
건강한 시민으로 자랄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우선 지역교육의 비전을 공유하는 과정과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시민으로서 성장을 지원한다는 비전이 없다면 자칫 우리 아이들을 더 분주하게 만들어 자기 시간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내용으로서 마을과 지역을 교육과정에 연결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더 많이 가르쳐주는 게 전부는 아니다. 지역연계 활동 또한 학생들의 선택, 활동, 관계 그리고 그들만의 공간을 지원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한다.
지역교육의 여건을 해결하는 데 학교의 역할이 필요하다. 지역과 마을에서 교육적 의도를 나누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성적과 경쟁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요구가 왜곡되고 그것이 다시 학교 교육활동을 특정 영역으로 기능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학교 안에서 분주함과 무관하게 지역사회에 대한 교육적 영향력이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 성찰이 필요하다.
변화에 대한 성찰
# 서로 다른 철학과 가치 혹은 상
정해진 계획을 실행하는 일이 아닌 이상 우리는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종종 새로운 방식으로 머리를 맞대는 일이 잦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경험의 차이, 서로의 위치에 따른 입장의 차이를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의 가치나 추구하는 상이 다르다는 어려움에 직면한다. 그로 인해 서로 지치거나 무용론에 빠지기도 한다. 머리로는 어떤 상을 합의한 후에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 생각을 변화시키거나 합의한 후에 일을 시작하겠다는 것은 그렇지 않을 경우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우리가 서로 머리를 맞대는 이유는 생각을 통일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도를 공유하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함이다. 차이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작은 일이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더 빠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 위상과 역할 논란
새로운 일이나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활동 내용에 알맞은 외형적 틀로 기구나 조직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종종 ‘위상과 역할’ 논란에 빠진다.
한편, 아무리 정교하게 위상과 역할을 정하더라도 상황의 요구에 따라 다양하게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다양한 ‘역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찾지 못했을 때 위상과 역할 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았다면 장황한 합의 과정에 빠지기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사람들이 그에 걸 맞는 역할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자칫 할 일을 찾기도 전에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먼저 정하자는 공허한 논쟁이 될 수도 있다.
# 조직화의 대상, 사람 & 역할
새로운 시도나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동력은 사람이다. 그럴 때 우리는 조직화한다는 말을 사용한다. 통상 우리는 사람을 조직한다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들의 역할을 조직하는 것이다.
여기서 흔하게 범하는 실수가 있다. 일단 역할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생각이 비슷한 동조자 그룹을 모으게 되면 기대와 다르게 무엇을 할 것인지 역할을 찾다 시기를 놓치거나 오히려 틀이 깨지는 일이 더 많다. 동조자 그룹의 담합이 예상보다 구체적인 역할로 기여하고 지속성을 가지는 데 어려움이 많다. 설사 기구나 조직이 만들어지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확산의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동조자 그룹에 지나치게 의존할 때 제한된 시각과 정보의 함정에 빠질 우려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매번 이질적인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을 기꺼이 환영해야 한다. 수많은 질문에 직면할 수 있고 그것이 확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성향이나 태도와 생각의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보다 상황에 맞는 역할을 찾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들어가는 글_2022 새넷 가을
1. 시론
2. 이슈 & 포럼
3. 특집
4. 전국넷
5. 수업 나누기 & 정보 더하기
6. 티처뷰
7. 이 책 두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