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로운학교네트워크 Oct 27. 2022

국가와 교육

시론 / 황호영

  한국교육에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나타난 지 수십 년이 지났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교육개혁을 표방해 왔다. 특히 1995년에 시행된 5․31 교육개혁은 강력하고 광범위한 개혁 조치였다. 그러나 한국교육의 병폐와 모순은 여전하다. 왜 그럴까? 전면적 전환은 광범한 공감대 형성과 추진 동력, 그리고 치밀한 추진 계획을 필요로 하고, 교육 현장에 뿌리내려 효과를 보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혁신적인 정책을 수립하여 강력하게 추진하면 된다고 보는 것은 독재 정권에서나 가능한 얘기이다.


  새로운 교육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를 추진할 새로운 정책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강력한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이끌어가는 정책 시스템을 통해 중앙정부와 결합한 소수의 관료와 전문가가 정책을 좌우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설령 이런 시스템하에서 국가의 정책이 정해진다 한들 제대로 시행될 것이라는 기대를 걸기 어렵다. 그만큼 사회가 복잡해졌으며 구성원의 요구가 다양하고 모순과 갈등의 구조가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교육의 관계가 재정립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은 이제 자명한 현실이다. 중앙정부가 정한 국가 교육과정을 전국 모든 지역, 모든 학교에서 일률적으로 적용하여 판박이식 교육을 펼치는 시대는 지나갔다.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교육정책을 추진하고 이끌어가는 시대도 지나갔다. 교육 현장 주체와 시민사회의 참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어 현장 추진 동력을 확보한 교육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시대이다. 교육 현장 주체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정책 시스템은 지방 자치분권과 민관 교육 거버넌스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교육의 일대 전환을 가져오지 못한 채 대응 요법 차원에 머물렀다. 그러나 정책 시스템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물꼬를 튼 바는 있다. 바로 국가교육위원회의 설립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 현장 주체와 시민사회의 정책 참여를 촉진하고 지방 자치분권과 민관 교육 거버넌스를 강화하여 새로운 정책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가기구이다.


  따라서 국가교육위원회는 전문가와 관료 출신 위주로 구성된 타 위원회와는 달리 다양한 교육 주체들이 모인 합의제 행정위원회이며 특히 학생∙청년, 학부모 각 2명 이상씩 위원으로 참여하도록 한다. 또한 위원회가 21명으로 구성되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수백 명 단위로 구성하는 국민참여위원회를 산하 상설기구로 운영한다. 그리고 주요 정책 의제들을 사회적 협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로 이끌어 결정한다. 이런 국가교육위원회의 정책 시스템은 시도 단위, 시군구 단위로 확산하여 지방 자치분권과 결합한 교육 민관거버넌스를 강화하게 된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국가교육위원회의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국가위원회는 법률 통과 1년 후인 올해 7월 21일 설립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7월 21일 출범일을 훌쩍 넘긴 것은 물론 친일 미화·독재 옹호로 온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던 역사 국정교과서 주도 인물을 국가교육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세웠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직제와 예산이다.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제대로 갖추어지고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현 정부는 전혀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인다. 현 정부의 직제 안에 의하면 3개 과에 정원이 31명에 불과하다. 국가교육위원회처럼 대통령 소속으로 설치된 방송통신위원회는 3개국에 1개 운영지원과를 두고 있으며, 그 공무원 정원이 234명에 이른다. 대통령 자문기구였던 국가교육회의 정원이 41명이었는데, 그에도 못 미친다. 교육부의 공무원 정원이 무려 640명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5%에 불과한 인력으로는 국가교육위원회가 법에서 규정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는커녕“교육부의 들러리”에 머물 것이다.


  박순애 교육부 장관이 불쑥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을 내밀었다가 반발과 저항에 부딪혀 조기 사임하고, 설익고 일방적인 교육정책을 대통령이 언급하는 등의 사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은 현 정부가 새로운 정책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촛불 시민이라는 주체와 촛불에서 나타난 절실한 사회 전환의 요구를 제대로 발전시켜내지 못한 것이 지난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이었다. 국가교육위원 법률 추진도 시기가 너무 늦었으며 현장 교육 주체, 시민사회와 같이하지 못했다. 그 결과가 현재의 참담한 모습이다. 그러나 정부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현장 교육 주체와 시민사회가 본격적으로 새로운 교육에 대해 논의하고,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전면적인 교육의 전환을 꾀하는 흐름이 현장 교육 주체와 시민사회에서 강력하게 대두하고, 정부와 지자체, 교육청이 시민사회와 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하도록 압박하여 현장 교육 주체와 시민사회의 논의를 수렴해가도록 한다면 그것이 곧 한국교육의 전환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국가교육위원회를 살려내는 방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절망의 가지 끝에서 희망의 새싹을 발견해낸 것이 2008년의 상황이었음을 상기할 때이다.


2022 가을호 목차

들어가는 글_2022 새넷 가을
1. 시론
2. 이슈 & 포럼
3. 특집
4. 전국넷
5. 수업 나누기 & 정보 더하기
6. 티처뷰
7. 이 책 두 권!


매거진의 이전글 2022 새넷 여름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