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럼 / 새로운학교지원센터
5월 15일, 스승의 날,
매년 이맘때는 교사에 대한 사회의 다양한 시각과 접근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질 때다. 2023년 5월 15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언제나처럼 조용히 길을 찾아가는 선생님들이 계시다. 새로운학교충북네트워크가 주관한 제2회 새넷 학습터에서 ‘다음소희’의 정주리 감독과 선생님, 청소년들이 만났다. 저녁 7시쯤 준비를 시작하더니 밤 10시까지 긴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충북새넷에서 제천 전교조지회와 함께 준비한 이번 행사의 안내는 다음과 같다.
“정주리 감독과 <다음 소희>를 만나다”
정주리 감독과 함께 지금 우리 교육을 돌아보고 다음 시대 교육을 함께 상상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일시: 5월 15일.(월) 19시 30분
1부(19:30~20:30) 정주리 감독에게 듣는 ‘다음 소희’ 이야기
2부(20:30~21:30) 교사와 학생에게 듣는 특성화고 이야기
주관: 새로운학교충북네트워크
너무나도 슬픈 이야기를 담담히 정주리 감독이 풀어내 주었다. 영화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때로는 교육 이야기, 삶의 이야기 그리고 청소년의 희망을 듣고 용기를 내어보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다음 소희’를 보며 선생님들이 궁금해하는 것과 정주리 감독이 선생님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질문과 답, 대담을 그대로를 풀고자 한다.
처음 새넷학습터 문을 열자 전국의 50여분의 선생님들이 접속했다. 먼저 충북새넷에서 선생님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모아 묻고 정주리 감독님이 답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다음 소희’, 이 영화를 왜 찍었는지, 찍게 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거에요. 고등학생이 왜 이런 일을 겪는지,
성인도 하기 힘든 일이 왜 고등학생이 하고 있는지, 학교가 보냈다면 공적인 시스템에서 이렇게 보낸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저 스스로 납득을 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스스로 납득되지 않는다고 해서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투입되는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오히려 너무 늦게 알았다! 그것이 저 스스로 자책감을 가지게 되었어요. 처음엔 저와 상관없거나, 저 주변의 일이 아닌, 영역 바깥의 일이라고 생각되었어요. 알면 알수록 나도 전체 속에 속해있는 사람이니 일부러 알아보지 않았을 수도 있고, 일부러 거리감을 두고 있었구나. 나도 책임이 있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꼭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었어요.”
오히려 너무 늦게 알았다. 왜 ‘다음 소희’와 같은 일이 빈번하게 우리 곁에서 계속 일어날까?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우연을 가장하고 계속 일어나는 이유를 단번에 정주리 감독이 이야기했다. 모두 영역 바깥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일부러 거리감을 두고 있는,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것. ‘다음 소희’로 정주리 감독이 우리 사회와 교육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메시지임을 이야기했다. 아마도 그 때문에 지극히 현실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정주리 감독도 그렇게 말한다.
“현실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굉장히 처음부터 끝까지 지극히 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영화는 영화지만, 허구는 허구의 이야기지만
우리 곁의 현실과 견주어서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아서
처음 시작했을 때의 그 마음을 공유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정주리 감독이 제작사 트윈플러스파트너스㈜로부터 2017년 1월 전주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의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았으면 한다는 제안을 받은 것은 2020년 말이었다. 당시 이 사건에 관한 어렴풋한 기억만 갖고 있던 정주리 감독은 2017년 3월에 방영했던 SBS 시사 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통신회사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5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학생 사건’의 전말을 접했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충격적이었던 것은 ‘왜 고등학생이 이런 곳에서 일을 하지?’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야 했다. 무엇보다 이해하고 싶었다” ‘왜?’라는 질문은 정주리 감독의 마음 한구석에 의구심으로 남아있던 다른 일들에 대한 기억을 깨워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가, 생수 공장에서 일하다가 스러진 어린 영혼들. 장소와 하는 일만 바뀌었을 뿐 사건의 본질은 동일했고, 이 모든 일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정주리 감독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참혹한 사건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왜?’라는 질문에 좀처럼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 영화의 이야기를 쓰고 완성해가는 과정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던 일을 내가 이해하고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모습을 파악해가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도달한 온전한 이해의 끝에는 아무 상관없는 것 같았던 내가 실은 이러한 일들을 반복해서 일어나게 하는 전체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이 남았다.”
-‘다음소희’ 안내글
“영화 속에는 유진이 그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그게 끝나는 걸로 되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끝내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유진 같은 인물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만약 그걸 관객이 납득한다면, 그럼 영화는 그렇게 끝나지만 바깥에서 다르게 시작될 수 있을 거라는 바람이 있어요.”
그렇지만 그 현실 안에서도 정주리 감독은 다른 시작을 바라고 있다. 극영화에서 당연히 이어지는 전개 정도로 받아들였던 관객에게 정주리 감독의 절절함이 무심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관객으로 앉아있는 우리 선생님에게는 무심히 다가오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구성원이고, 공적 시스템 안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넷학습터에 참가한 선생님들의 안타까움과 고개 숙임, 깊은 생각이 화면으로 그대로 전해졌다. 살짝 궁금함도 이어졌다. 외려 문제를 직접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직선으로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정말 사실대로 만들어보길 원했다면 다큐멘터리로 만들 생각은 안 했을까? 정주리 감독과 같은 분은 극영화로 작업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을 기대했을까?
저는 전라북도 교육청에 근무하고 있는 특성화고 교사입니다. 전라북도 교육청 모습도 그렇고 ‘정말 사실적으로 그렸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좀 더 사실대로 만들어보길 원했다면 다큐멘터리로 만들 생각은 안 하셨는지요?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출발점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가 있었어요. 그 형식은 다큐의 입장이에요. 그리고 저는 처음부터 극영화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영화와 소설이 다르듯이 극영화와 다큐는 접근하는 방식, 풀어가는 방식이 서로 다릅니다. 다큐의 취재 결과를 재료를 해서 허구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극영화 작가로서, 전혀 다른 접근방식이지만 그래도 극영화가 갖는 힘이 대단해요. 저는 영화를 믿는 사람이어서, 허구의 이야기가 될지라도 관객이 2시간의 여정을 함께 하신다면 살아있는 인물이 될 것이다. 소희가 실제 인물이 아니지만 영화 속에 살아가는 인물, 관객분들 마음속에 오랫동안 기억되는 인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것이 극영화가 갖는 힘이에요. 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정주리 감독은 소희가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가길 바란다. 진실을 담고 진심을 전하면 관객의 마음속에 살아간다고, 그래서 소희를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의 제목도 이렇게 정해지지 않았을까? 우리 선생님들에게도 ‘소희’는 계속 살아남아 많이 기억될 것이다. ‘다음소희’가 정주리 감독의 의지의 결과물이라도 우리 교육에 진심을 담고 있는 선생님이 호응하여 오래도록 기억되고, 우리 교육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박광태 선생님께서 잔잔하게 특성화고 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저는 특성화고에 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다음소희의 전반부 소희의 감정에 이입되었습니다. 관객들이 우리 교육과 청소년의 삶을 맥락 속에서 보지 못할까 우려되었습니다. 다행히 형사인 유진이가 관찰자 입장에서 보니까 맥락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아이들의 개별적 삶에 접근하다 보면 우리 교육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이명박정부의 마이스터고, 박근혜정부의 도제교육처럼 정부는 좋은 말로 아이들을 속여왔습니다. 독일의 도제교육에서 말을 따왔지만, 독일처럼 직업인으로 충분히 성장시키는 시스템이 아니라 산업현장의 요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체제입니다. 이 체제는 계속 똑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사람을 찍어내듯 기르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유진이 한계를 느끼는데 특성화고 교사로서 마찬가지 한계를 느끼고 있는데, 이 영화가 오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작이길 바랍니다.
교육부 한 개의 과에서 전부를 담당하고 있는 우리나라 직업계고, 교육청도 한 팀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국가적으로 충분히 다루어야 할 것임에도 너무나 미흡하다는 것을 이야기한지 오래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더 많이 소개되고, 청소년의 현실이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 박광태선생님의 말씀에 대해 정주리 감독은 더 많은 것을 담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했다. 본인이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부분만 담았기에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알고 있는 것을 넘어서 지 못했음을 고백했다. 그렇지만 영화로 건넨 이 이야기에 각계각층의 많은 분이 자신의 자리에서 많은 말씀을 해주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이번 새넷학습터는 청소년의 삶이 더해졌다.
저는 경기도의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안상임이라고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먹먹해졌습니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고 소희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 아니겠느냐.’라는 감독님 말씀이 많이 남았습니다. 또 두 청년의 엄마로서 이제 사회에 발 내딛는 우리 사회의 청년들에게 감독님께서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아~ 꼭 하고 싶은 말은 영화 속에서 하고 싶은 말과 같습니다. 제가 직접 하고 싶은 말을 누르고 꾹꾹 담아서 영화 속에서 표현했어요. 그런데 굳이 제가 한 번 더 입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이건 어찌 보면 저의 어린 시절,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한데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파도가 지나간 후에 살펴보면 내 잘못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렇게 제가 모자란 것도 아니고 그렇게 못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어깨에 짐을 짊어지고 있는지, 왜 이렇게 모자라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안타깝고 짠해요.
그래서 우리 모두 내 탓을 하기 전에 "내가 어쩔 수 없는 커다란 무언가가 바깥에 있을 수 있다. 내 힘을 다해도 할 없는 무언가가 있으니, 우리 함께 의논해보자. 일단 어른들은 더 많은 날을 살았으니 그 책임이 어른에게 더 많다. 어른에게 이게 맞냐 물어보고 따져보자. 절대 우리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거기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시작하자."라고 말하고 싶어요. ”
저는 충북비지니스고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는데 충북에서는 쉽게 다음소희를 볼 수 없어 아쉬웠어요. 제가 특성화고에 처음 발령 나서 3년인데, 올해 처음 담임했던 아이들이 이제 고 3이 되어 현장을 가요. 그래서 마음 아파 울면서 보았어요. 특성화고, 대학 진학이 목표인 세상에서 우리 특성화고 아이들에 주목해주어 고맙습니다.
질문을 드리자면, 이야기가 시작할 때 끝날 때 소희가 전부 춤을 추면서 시작하고 끝납니다. 저는 마음의 답답함을 느꼈어요. 감독님의 의도가 있는지요? 두 번째 질문은 다음소희가 관객들에게 어떤 영화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는지요?
마지막에 그 영화 소희의 춤추는 모습을 답답하게 보셨다는 것은 마음이 무겁고 어려움을 느꼈다는 것이겠지요. 소희가 춤을 연습하고 틀리지만 계속 춤을 추지만 마지막에는 유진이라는 또 다른 주인공을 통해 소희가 화면 속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두 번째 질문과 연관되는 것입니다. 영화를 통해 잊어버리지 못하는 인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내내 잔상으로 남아 오랫동안 새겨지기를, 소희가 없는 아이가 아니라 마음속에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서로의 마음이 오가는 동안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제천단양 전교조 지회장님인 금성초등학교 유정희 선생님이 상영회와 함께 새넷학습터를 함께 연 소감을 말해주었다. 기다렸던 영화, 보고 싶었던 영화를 제천에서 함께 보게 되어서 좋지만,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 무겁게 느끼게 되었고, 함께 할 일이 더 많이 생겼다고 말씀해주셨다.
새넷지원센터 박혜진 센터장은 ‘유진은 만난 적도 없는 소희 때문에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아마도 서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을 것이다. 소희에게 유진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소희의 삶은 다르지 않았을까?’라는 말로 마무리 인사를 했다. 어른의 죄책감과 책임을 이야기한 두 분의 말씀에 정주리 감독님의 마지막 약속이 더해졌다.
세상의 이런 마음들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로 나는 영화작업을 한다고, 오늘 여러 선생님들을 뵙게 되어서 좋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 두 청소년의 영화이야기도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고, 우리 시대 훌륭한 어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정주리 감독이 약속한 것처럼 4년 안에 다시 영화로 만나기를 바란다.
(이 글에 함께 안내된 사진은 모두 다음영화 ‘다음소희’안내에서 빌려 사용했습니다.)
2023 봄 호 목차
들어가는글_2023 새넷 봄
1. 시론
2. 특집
3. 이슈 & 포럼
4. 전국넷
5. 티처뷰
6. 이 책 한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