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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백일의 썸머 Jul 21. 2020

4.[충칭,重庆]중국 근대 역사가 살아숨쉰다

50일 중국여행의 기록_충칭


대륙의 객잔 e23

중국 근대 역사가 살아숨쉰다


충징 중심을 가로지르는 세계에서 3번째로 긴 장강长江




중국 근대 역사의 중심지


충칭은 중국식 발음이고, 이 도시이름을 한자 그대로 우리식 발음으로 옮겨놓으면 중경이다. 90년 중반에 개봉하여 한국에서 크게 사랑을 받았던 영화 '중경삼림'과 중국 서부의 중심도시 '중경'이 같은 곳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듯 하지만, 전혀 상관이 없는 별개의 도시임을 먼저 밝혀둔다. 참고로, 영화 중경삼림의 배경은 홍콩이다.


앞서 발행했던 포스팅에서도 밝혀두었지만, 충칭을 이번 중국도시여행의 한 곳으로 계획한 것은 청두와 가깝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고, 사실 충칭에 대해 별로 들어본 바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 기대를 한 곳은 아니였다. 다만 충칭은 친한 중국인 친구의 가장 좋아하는 도시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약간의 흥미가 생긴 곳이였다. 도대체 충칭은 어떤 곳이길래 내 중국인 친구는 이 곳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일까?


충칭이 중국의 다른 도시들과도 확연하게 다른 특징이 있다는 것은 추후에 따로 포스팅할 예정이지만, 잠시 언급하자면 이 곳에 도착하자마자 이 곳만이 가진 독특한 매력을 바로 알 수가 있다. 사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불편하게 보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난 이것을 '매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충칭의 독특한 도시외관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닐 것이며,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 것은 그 자체로써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독특한 도시미학과는 다르게, 충칭은 중국의 근대역사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현재는 중국의 4대 직할시(베이징, 상하이, 텐진) 중에, 유일하게 중국내륙에 위치해 있으며 또한 중국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고있는 서부지역 개발의 중심지이기도 해서, 경제적으로도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자면,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임시수도로 쓰였던 곳이여서 일본군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기도 한 경험이 있어 아픈 역사를 간직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충칭 중심가에는 높다란 탑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해방비'라고 불린다. 중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해방비


도심 중심에 다른 나라의 침략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건축물이 놓여져 있다는 것은, 충칭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주된 정서가 어떤 것임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해방비 이외에도 도시 곳곳에는 중국 근대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 여전히 남아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일전쟁 당시에 형성되었던 외국인을 위한 마을이다. 중국 국민당의 임시정부가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충칭에 있었던 만큼, 중국과 관계하고 있던 여러 나라의 외국인들이 이 곳에 머물렀을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지금은 현지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변모했지만, 'international village'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도 흥미로운 곳임은 틀림없다.


사진에서 보듯이, 이 곳은 긴 길이에 계단을 이용해야 할 만큼의 높이로 빽빽하고 미로같이 형성된 곳인데, 중일전쟁 당시의 긴박한 상황에서 이렇게 좁고 높게 지어진 마을은 전략전 선택의 결과였다고 한다. 좁다란 계단을 따라 가다보면 마을의 깊숙한 안쪽에는 미국 기자단을 위한 건물, 우체국, 그리고 한 때는 시끌벅적하게 전쟁의 두려움과 고단함을 잊게 해줬을 클럽으로 이용되었던 건물까지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의 긴박함속에도 젊은 외국군인들로 활기로 넘쳤을 이 곳을 상상하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 한, 묘한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다.


중일전쟁 당시에 형성되었던 외국인들을 위한 마을


그리고 외국인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상아빛의 오래된 건물 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 곳은 바로 중일전쟁 당시 미국대사관이였다고 한다. 원래는 충칭에는 영사관이 있었지만, 중국 국민당의 임시정부가 이 곳으로 옮겨지면서 미국의 대사관도 함께 이전한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는 중일전쟁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일본군들이 충칭에서 한 무자비함을 영상으로도 볼 수 있는데, 이번 여행에서 큰 기대하지 않았던 충칭은 생각보다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아주 중요한 도시라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나라가 해방되기 바로 직전까지, 3년동안 대한민국의 임시정부 청사가 있었던 곳도 바로 이 곳 충칭이였으니, 중국 근대 역사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도시임은 틀림없다.


중국 국민당 임시정부가 있었던 충칭에 세워졌던 미국대사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를 생각하면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상하이'일 것이다. 나 역시 상하이 임시정부만 알고 있었는데, 임시정부 청사가 남아있는 곳은 상하이, 항주, 그리고 충칭으로 중국 세 군데 지역에 있다. 상하이에는 어학연수를 한다고 일년동안 머물렀으니, 상하이 임시정부에 당연히 가 볼 기회가 있었는데, 상하이에서도 아주 비싼 중심 지역에 자리잡고 있어 접근성이 아주 좋아서 그냥 지나칠 기회도 많았다.


사실 그렇게 비싸고 도심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지만, 상하이에서 태어나서 자란 중국인 친구들은 가보지 않았다고 하니 중국인들에게는 전혀 관심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막상 상하이 임시정부를 방문해보면,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한국인 관광객들이였다.


비록 중국인들에게는 관심이 대상이 되지 못한 상하이 임시정부이지만, 그래도 번화가에 자리잡아 우리네 역사를 기억하고 싶은 한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에 반해서 충칭 임시정부는 도시 중심가에서도 비교적 벗어나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드문해서 그 곳을 도착해 느낀 감정은 무엇보다 쓸쓸함이였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역사의 번영과 영화를 기리기 위한 곳도 아닐뿐더러, 더군다나 남의 나라의 독립역사를 기리기 위한 곳이니 현지인들의 방문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사실 충칭이라는 도시는 한국인들에게 관광지로써도 큰 인기가 있는 곳은 아니니 계속적인 한국인들의 방문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또한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어 사람의 인적이 드문드문하니, 이 곳을 방문했던 날도 손에 꼽을 정도의 관람객만 있었을 뿐이였다.


이렇게 인적이 드문드문한 곳이지만,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국빈방문을 해서 마지막 일정으로 돌아본 곳이여서 한 때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임시정부 안으로 들어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를 한 눈에 들여다보았다. 맹목적인 애국자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상하이 임시정부에서는 김구선생의 말씀에 눈물이 찔끔났고, 충칭 임시정부에서는 상하이에서 시작해 여러 도시를 거쳐 충칭까지 그 거점을 옮겨 온, 사람들의 험난함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그 과정의 지난함속에 독립이라는 국가적 사명이외에 개인적으로는 무엇을 지키고 싶었을까? 무엇 하나 작심삼일도 지키기 힘든 나를 반성해본다.



중국 근대 역사를 보기 위해서는 베이징, 상하이와 같은 거대도시도 좋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광복이 되기 이전까지 있었던 충칭 역시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근대의 시간들을 여전히 목격할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독특한 매력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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