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하나. 무죄와 부증죄
유력인사에 대한 형사재판 중에 다소 석연치 않게 무죄판결로 종결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무죄 판결에는 죄가 되지 않는 경우 (범죄의 요건에 처음부터 해당하지 않거나, 요건에는 해당하나 허용되는 경우)뿐 아니라, 결정적인 물증이 없어 범죄를 증명할 수 없는 경우도 포함됩니다. 말하자면, 부증죄(죄를 증명할 수 없음)라는 용어는 따로 없고, 모두 무죄로 통칭합니다. 물론,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한다는 원칙도 있고, 정말 억울하게 범죄 혐의를 받는 경우도 있으므로 함부로 의심의 시선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직장이든 사회든 혐의를 받는 자가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한 중요한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사회 구성원의 의식 속에서는 무죄와 부증죄를 엄정히 구별해 보아야 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생각 둘. 마음속의 죄
누더기를 입고 있으면 커다란 악이 옷 사이로 드러나지만, 법복이나 털가죽 옷을 입고 있으면 모든 것이 가려진다.
–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중에서
다른 사람의 죄를 비난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완벽한 성인의 기품을 가진 사람이 전혀 없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세상이 규정하는 죄를 짓는 사람과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악을 실행에 옮기느냐, 그렇지 않고 그저 마음에 머무르게 하느냐의 차이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외부로 나타난 결과가 아닌 마음속의 잘못된 생각, 그 자체를 죄라고 세상이 규정한다면, 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봅니다. 범죄자를 대할 때 징벌만큼 교육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을 비난할 자격이 없는 사회일지라도 정의를 바로 세우고,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그들에게 엄정한 제재를 가하고 죄를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육을 생각할 겨를도 없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경미한 죄를 지은 모든 사람들을 사회의 규율을 준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동떨어진 부류로 일축하기보다는, 그들을 보통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사람으로 먼저 인식하고, 마음속에서의 온갖 추하고 살벌한 생각이 외부의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자제하는 힘을 길러주거나 회복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들은 지은 죄에 부합하는 고통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들에게도 따뜻한 빛이 필요하다는 마음이 근저에 깔려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글을 쓰지만, 누군가 나에게 경미한 죄를 짓는다면 내가 위에서 쓴 것과 같은 마음상태를 유지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 셋. 욕설죄
공연하게 타인을 모욕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모욕죄는 형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공연성이 없는 욕설과 폭언을 처벌하는 규정은 없습니다. 직장 내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욕설과 폭언이 끊이지 않고 보도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직원의 인격을 파괴하고 신성한 노동의 권리를 욕보이며, 해당 직장의 건전한 일하는 문화를 전반적으로 저해할 뿐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이 동료와 선후배를 향해 상처를 재생산하여 피해의 파장을 키워갈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좋지 않은 악행입니다. 그 직장의 직원들뿐만 아니라, 그런 소식을 접해야 하는, 피해자와 비슷한 사회적 처지에 있는 많은 국민에게 허탈감, 무력감, 분노를 일으키는 등 그 피해는 막심할 수 있습니다.
물건의 절취와 인격의 파괴 중에 무엇이 더 나쁜 행위일까요? 도둑이 물건을 훔치는 범죄가 사소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절도 행위보다 그런 욕설 행위가 끼치는 피해가 훨씬 심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둑질하면 형사처벌을 받지만, 지위를 이용한 욕설은 명예훼손죄나 모욕죄 등에 해당하지 않는 한 사회적 비난을 받을지언정 형사처벌은 받지 않습니다. 물론, 법은 도덕을 강제할 수 없고, 필요 최소한의 제약에 그쳐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와 벌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비록, 법의 한계로 인해 그러한 행위를 처벌하기는 어렵겠지만, 한 가지만은 말하고 싶습니다. 지위를 이용하여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도 도둑을 경멸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일개 도둑이 끼치는 것과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해를 사회에 끼쳤습니다. 어쩌면 절도범죄 수천 건보다 더 해로운 사회적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 넷. 형법의 존재이유
국가의 형법이나 조직의 징계규정의 존재 이유는, 어려운 말을 할 필요 없이,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피해자든 용의자든….
생각 다섯. 천사의 얼굴
태어날 때는 누구나 천사였습니다.
방송에서 범죄 소식을 접할 때마다, ‘피해자는 너무 안되었다. 가해자도 안되었다. 보고 듣는 우리도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흉악무도한 범죄자의 비정한 현재의 얼굴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에는 천사와 같은 순진무구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갓난아이 때의 모습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 아이가 지금과 같은 인면수심의 존재가 되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저 깨끗하고 아름다운 존재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그 무언가에 대한 야속함마저 생깁니다. 그러한 범죄의 근원적인 원인을 파고들어 가면, 결국에는 그의 인격이 형성되는 유소년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애를 체화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사회에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범죄에 대한 예방적 효과를 거두겠다는 취지의 강력한 형벌 집행이나 범죄자에 대한 철저한 재범방지 교육, 범죄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경찰력의 제고 등이 중요한 형사정책이겠으나,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형사정책은 잠재적 범죄자를 양산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사랑이 결핍된 가정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그것이 범법행위로써 노출되기 전에는 타인의 가정에까지 간섭할 권리도, 여유도 갖지 못합니다. 설령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이미 인간에 대한 애정이 체화되지 않은 채 자라서 성인이 되어버린 부모 아래서 똑같은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는 악순환을 막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악순환 구조 때문에 가정에서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당연히 받아야 하는 애정을 받지는 못했을지언정, 어린이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가정 밖의 지역사회에서라도 결핍된 애정을 보완해 줄 수 있다면, 그 아이는 궤도를 벗어나지 않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보육 및 교육 등 아이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을 성심껏 보듬을 수 있는 어른들이 많아지고 이들을 통해 지식뿐만 아니라 인간애를 갖춘 사회구성원을 길러내는 것이 기초적인 형사정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논리의 비약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또 어느 시점이 되면,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어느 이웃의 기막힌 범죄 소식을 접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저 남의 일이고 사회에는 일정한 범죄가 불가피하며, 그러한 범죄자는 어쩔 수 없는 인격파탄자이거나 정신질환자라는 생각에 어느덧 익숙해지기보다는 범죄 없는 사회라는 불가능한 꿈을 위해 모두가 작은 힘을 보태 나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