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하나. 먼 곳의 그들은 비켜 지나온 그들일지도
눈앞에 가로선 이웃은 비켜 세우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듬으며 살겠노라
다짐하진 않았던가
곁을 스치는 고단한 이웃은 외면하면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리라
다짐하진 않았던가
내 발치에 쓰러진 이웃은 일으키지 않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안위를 위해
내 삶의 고단함을 기꺼이 감수하리라
다짐하진 않았던가
먼 곳을 바라보다가 정작 가까운 곳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곳을 지나쳐 한참 동안 길을 걸었을 때, 그래서 그곳이 먼 곳이 되었을 때 비로소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먼 곳에서 만나려고 했던 사람들이 실은 떠나온 곳에, 비켜 지나온 곳에 있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빈 나무에도
홀로 쉬는 새에게도
두루 찾아가는 저 햇볕처럼
생각 둘. 단체의 장단점
조직체가 개인보다 강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머릿수가 많거나, 업무분담이 가능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가운데, 서로의 장점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좋은 영향은 일방적으로만 전달되지 않고, 양방향으로 전달됩니다. 말 그대로 상호작용입니다. 이렇게 각자의 좋은 점을 서로 닮아갈 수 있다면, 그 조직체는 엄청난 힘을 축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조직체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의 좋지 못한 모습에 스며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장점을 부각하기보다 단점만을 끄집어내고 그러면서도 어느새 자신도 그러한 단점을 따라 합니다.
가정과 직장, 더 나아가서 사회와 국가, 우리의 단체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생각 셋. 사회 속의 개인
하루라도 면도하지 않으면 지저분하게 될 정도로 턱수염이 잘 자라는 남성들, 특히 머리숱이 많지 않은 남성들은 가끔 면도하면서 재밌는 생각을 해볼 것도 같습니다. 왜 굳이 없어도 되는 턱에는 털이 이렇게 잘 자라고,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정수리에서는 그리 털이 잘 빠질까. 성가신 턱수염이 아닌 한 올이 아쉬운 정수리 털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생각 넷. 좋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 1
가끔 소외되는 사람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마치 성자라도 된 듯이 안타까워하고 침통해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씁쓸하게 생각했던 어느 가해자의 마음을 나 자신이 품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논외로 하고, 가끔 이웃을 소외시키고 상처를 주는 마음을 스스로 품는 것을 나 자신이 들여다봅니다. 한 가지 느낀 점은 세상을 고치려고 거창하게 애를 쓰는 것보다 나 자신이라도 고칠 수 있다면 이는 분명히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힘을 보태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뉴스의 보도처럼 좋지 않은 일들이 끊이지 않는 세상이지만, 내가 세상을 품는 만큼 세상은 그 본래의 좋은 모습을 내게 보여줄 것입니다. 미국의 시인 디킨슨은 그녀의 시에서 “사랑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이고, 그 사랑을 우리는 자기의 그릇만큼 밖에 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드는 방법은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습니다.
생각 다섯. 좋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 2
거창한 밑그림을 그리다가 지쳐 색칠도 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아주 작은 그림을 정성스럽게 색칠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만 하는 사람보다, 동네 놀이터의 미끄럼틀과 그네 주변에 가끔씩 보이는 유리병 깨진 조각을 줍는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쌩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는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눈이 아닌 육신의 두 눈으로 ‘살펴야 할 삶’이 우리 주위에는 있습니다.
생각 여섯. 어느 곳에 있든지
중심에선 고개를 돌려
주변을 향하고
주변에선 허리를 숙여
낮은 곳을 향하고
생각 일곱. 어둠 속의 눈빛
조그마한 피자집을 운영하는 청년이 있습니다. 앳된 얼굴로 보아 이제 갓 삶의 전선에 투입된 젊은이처럼 보였습니다. 장사가 어느 정도 되는지 상기된 표정과 청아한 목소리에 생기가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조그만 가게가 활기차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습니다. 그 청년이 많은 재물을 모으지는 못할지라도, 언제까지라도 그 활기찬 표정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록 그 밝은 표정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가볍지 않은 것은 그 청년의 활력이 그저 열 명 중 한두 명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세간의 이야기들 때문일 것입니다. 생기 넘치는 저 청년 뒤에 고개를 숙인 아홉 명의 청년이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그래도 아들을 위해 피자 한 판을 살 수 있는 여유라도 있으니, 그런대로 형편이 나쁘지 않은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나도 금전 문제 때문에 골치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벼랑 끝에 거의 이르러서도 계속 뒤로 발이 밀리고 있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요….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나오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나,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라는 역설적인 말처럼, 균등한 기회가 보장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아직 더 노력해야 하고, 설령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어도 그것이 균등한 성공으로 연결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조그만 피자집 청년의 숨길 수 없는 미소가 세상에 점차 번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는 날이 쉽게 오진 않을 것이고, 어쩌면 너무나 아득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고, 각자 모두 감당해야 할 조그만 사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퇴근길을 걸으며 즐비해 있는 작은 가게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려 합니다. 어제보다는 더 많은 사람의, 그리고 언젠가는 많은 사람의 표정에 그 청년과 같은 숨길 수 없는 삶의 기운이 생동하기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늦은 밤에 가게 문을 내리며 뒤돌아서는 어느 청년의 눈빛,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반짝이는 눈빛과 또 한 번 마주치고 싶습니다.
생각 여덟 . 가을 숲이 아름답다면
지켜온 색깔들
변화된 색깔들
그 모두를 품고 있으니
생각 아홉. 슬픈 뜰에도 피는 꽃
이 세상을 아름다운 곳으로 노래하는 시들을 보면 아름다움과 더불어 왠지 모를 연민이 함께 느껴집니다. 아마도 그 시인들은 슬픈 뜰에도 외면할 수 없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밤하늘을 보면, 보일 듯 말 듯 한 조그만 별이 빛을 냅니다. 그 별에 혹시라도 눈을 가진 생명체가 있다면, 우리의 지구도 아마 그렇게 하나의 빛나는 점으로 보일 것입니다. 진공 속에서 1초에 30만 km를 진행한다는 빛이 1년 동안 진행한 거리를 1광년이라고 할 때, 천문학자들은 어떤 은하는 134억 광년의 거리에도 있다고 합니다. 134억 광년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1광년만으로도 이미 영원처럼 느껴지는 우주의 크기입니다. 온 우주를 놓고 보면 티끌의 크기조차도 되지 않는 지구라는 별에서만 생명이 탄생하고, 오늘날까지 번성해 왔다는 것은 나의 유한한 생각에 잘 와 닿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지구는 정말 축복받은 특별한 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축복받은 별에서 생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과연 축복의 삶을 모두 누리고 있는 것인가요…. 그 티끌 속에서 우주만 한 고민과 아픔으로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의 모습을 저 어느 별의 눈동자가 들여다본다면, 감당하기 힘든 상판을 천형처럼 떠받치고 괴로워도 말하지 못하는 듯한 낡은 기둥을 바라보듯 애잔하게 느낄 것 같습니다. 티끌 속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얽히고,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고단한 경쟁을 펼치기도 합니다. 때로는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모습도 보입니다. 낭만은 어느 별의 이야기일 뿐, 견디기 버거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 실은 알지 못한 채 무기를 드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하지만 지구별이 언제나 비운인 것은 아닙니다. 한 편에는 아름다운 장면도 있습니다. 피어나는 봄꽃은 어김없이 만물을 깨우고, 햇살 아래 우거진 초여름의 숲길은 만물을 또다시 풍성하게 합니다. 여름이 지나갈 때 미처 사그라지지 못하고 남은 정열이 잦아드는 것처럼 떨어지는 가을 잎사귀는 만물을 차분해지게 하고, 이윽고 제 모습을 드러낸 가지는 만물을 겸손해지게 합니다. 하얗게 세상을 덮은 겨울의 지구를 저 먼 별에서 보면 한 송이 눈꽃처럼 반짝일 거라는 상상도 해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실은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게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습니다. 다른 생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숭고한 마음도 있습니다.
아들의 방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조그만 지구본을 봅니다. 그리고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는 모자이크 같은 나라들의 조각을 봅니다. 오늘도 이 작은 별에서는 억조창생의 비탄과 고뇌와 방황이 명멸해야 한다니…. 그러면서도 한 송이 꽃은 약속처럼 피어난다니….
생각 열. 길 위의 나라
보행자가 지나가면 3m 전방에서 차를 멈추기보다 보행자의 무릎 30cm 금방까지 머리를 들이대는 차들을 보거나, 고개를 돌리면 옆 사람의 얼굴과 맞닿을 것 같은 빽빽한 전철 안에서, 그래도 모두 꿋꿋이 서로의 어깨 위에, 관자놀이 근처에 스마트폰을 대고 있는 풍경을 보면, –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쉽지 않은 콩나물 전철에 서 있다 보면, 유명한 화두인 ‘이 뭣꼬’가 가끔 머릿속을 맴돕니다 - 좁은 땅에서 치열한 경쟁과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고단한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잿더미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군 불사조의 나라답게, 제2의 기적을 앞둔 차세대 선도국가답게, 누구에게나 살아가는 환경은 그만큼 녹록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곳을 떠나 이국의 드넓은 평원에서의 삶을 꿈꾸어 보았을 것 같습니다. 내 나라가 그렇게 늘 포근한 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두 발을 지탱해 준 것은 내 나라의 땅입니다. 비록 오가는 거리는 그렇게 고단했지만, 집으로 향하는 어귀에서는 고생했다며 시원한 바람 한 줄기를 늘 보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