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하나. 자유 - 완전해야 하면서도 속박당해야 하는
- 완전해야 하는 자유
천지 만물의 주관자께서는 그 전지전능한 힘으로 이 세상의 악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게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태초와 같은 평화로운 세상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을 것입니다.
가끔 어리석은 의문을 가져봅니다. 왜 신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신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의 피조물인 사람에게 고귀한 자유를 온전하게 부여하는 순간, 이 세상에 악이 들어서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물론 악한 생각에 대한 자유만은 억제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면 그것은 온전한 자유가 아닙니다. 신은 인간을 그의 종속물이 아닌 주체적인 개체로 지으셨습니다.
자유, 그것은 비극적인 혼돈, 그리고 끝없는 시련과 맞바꿀 만큼 고귀한 것인가 봅니다.
- 속박당해야 하는 자유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 것이 자유”라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거리낌 없이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음에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자제력에서 나온다는 뜻으로도 이해합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바로 이러한 자율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에 구속된 존재가 아니라, ‘자율’을 가진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 그것이 사회의 보편적인 규범이든, 자신이 세운 가치관이든 - 자신을 무언가에 속박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생각 둘. 파란 하늘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문은 비바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고 쉴 수 있게 해주지만, 우리가 항상 문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기에 위로와 평안을 얻습니다. 문을 닫는 것은 아늑함이지만, 문에 갇히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어느 수용소의 문처럼 스스로 열 수 없는 문 안에서 천장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쇼생크 탈출의 포스터처럼 온몸을 뒤로 제쳐 장대비를 맞아보고 싶은 희망을 가슴속에 품고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을지라도, 그저 파란 하늘을 맘껏 올려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어떤 이들이 그토록 희구하는 행복한 삶일 수 있습니다.